“백제 그리고 음악” 저자 이종구 한양대음대 명예교수 문화사 강좌 | 30강 | 흑치상지 고향 중국 광서에서 발견한 백제금동대항로의 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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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명예교수 이종구 있니다 중국의 서남쪽
베트남과 인접한 곳에 광서 장족
자치구는 성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행정 단위로 따지면 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이 성의 수도는
영이며 그곳에는 강이라는 강이 서에서
동쪽으로 관통하고
남영시 온강 군은 아마도이 강에서
이름이 연유한 것으로
보였습니다이 영군은 남영시 소속이기
때문에 당연히 큰 도시가 형성하고
있으리라 생각을 했습니다마는
북쪽의 일부에만 도시가 형성이 되고
남쪽은 농촌지역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을 합해서
남북으로 약 50km 정도이 구구는
아주 넓은 곳이
구였다 먼 중국 당이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에서도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이 남영시
옥구 백제 향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옥구 도심으로부터 난방 약
4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자 여기가 백지향
입니다 이곳이 바로 백제 장수인 흑치
상제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이에요 백제 향은 남영에서 출발하는
기차도 없고 직행 버스도 다 찾는
곳이었습니다 먼 길이었지만 마을
버스를 타야만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매표소 직원이 중국
사람이었는데 백제 즉 중국말로 빠
있지라고 말하는데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한자로
백제라는 비로소 아 박자라고 말하는
것
었어요 그들 장족의 언어로 백제는
박자이라고 하는 것었습니다 마치 일본
사람들이 한자로 백제라는 구다라 읽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다라 부여의 구두라는 그 그
지명이에요
과거 백제의 영역을 실어나르던
나루토의 중심 지죠 한쪽의 말
파이지는 광서 자치구의 박자가 훨씬
더 우리말 백제에 가까워서 정감이
있었습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가면서 약 한시간 이상을
달렸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광서 장족 자치구는 벼농사를 짓는
풍경이 많이 보였습니다
나지막한 산자락을 따라서 자연 모습
그대로 눈쪽을 만들어서 논농사를 짓던
6 70년 전의 한국의 천수답 풍경
그대로였습니다 과거 백제인들이 한국과
비슷한 곳을 찾아서 정착해 논농사를
짓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상념이
스쳐갔습니다 그런데 박자에 점점
다가오면서 박해 풍경은 다른 분위기로
바뀌
차창 밖에는 사탕수수 밭이나 바나나
밭이 계속
펼쳐졌죠 이런 저희 상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덜컹 그리던 버스가
조금씩 언덕로 올라가나 싶더니
반갑게도 눈앞에 백제라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그 언덕이 바로
제허였습니다 언덕에 올라가자 과거
우리네 옛 마을처럼 커다란 고목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마치 선황당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렇게 늙은 나무라면
도대체 수령이 어느 정도일까 저는
어렸을 적에 이렇게 큰 나무밑에서
놀았던 일이 있기 때문에 매우 낮이
익었습니다 내 고양이는 당시 내
아름으로 아홉 발이나 되는 큰 나무가
있었죠 800년이 넘었다는
나무였습니다 입니다 다시 광족
자치구의 얘기로 들어가서 저 나무들은
대체 몇 년쯤 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천 년일 아니면 백제와 맞닿은
1500년 이런 생각이 잠겨 있을 때
버스는 또 다른 고목나무 앞에 나를
내려놓고
떠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 고향
회나무 다 훨씬 더 오래돼
보였습니다 이 거대한 나무는 마을
어기와 버스 정류장 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정문 시장입구 공산당 사무소
등 동네 중요한 곳에 어김없이 있어서
못해도 한 스무 그루가 넘어
보였습니다 백제 허라 부르는이 작은
도시는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의 그
시장을 형성하고 그 위에 마을 있는
좀 아늑한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주택가에는 관청이나
학교들이
있었어요 백제향 수산 충목 낙 조합
백제향 고등기술학교 백제향 중국공산당
위원회 백재 인민정부 백재 인민대표
주석단 백재 기율 감사위원회 백제
재정 소반 복소 백제 이동통신 백제
연통 통신 등 간판이 온통 백제라는
이름으로 돼 있어서 마치 공주나
부여에서 해마다 열리는 백제 축제에
온듯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삼국시대의 백제와의 연관성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백제와이 지역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상의 기록도 없죠
다만 흑치상지의 묘 에 몇 글자
연관성이 있는듯한 그런 글자만 있을
뿐인데요 백제가 사라진지 벌써
14년이
지났습니다 백제의 유민들이 만약
이곳에 와서 살았다 하더라도 이곳
토박이인 장족 동화되기 충분한 시간이
흘렀죠 그렇다면 백제의 흔적이 장족
문화 속에 혹시 남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장종 문화도
유심히 살펴
장족 민속 공연단이 박물관 또는 민속
학자들도 찾아봤어요 그리고 장족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의 문화도 아울러
찾아봤습니다 이곳은 장족 비롯해서
여족 백족 이족 묘족 등의
소수민족들이 같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나에게 고하기를 보호되어야
할 모든 문화 여사는이 백제 향보다는
그 수도인 남영 시에 잘 보존되고
있으니 그리로 가보라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백제 상은
다시 하겠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백제
향에서는 더 이상 시원한 답을 얻을
길이 없어서 이틀간에 답사를 뒤로
하고 다시 남영시
돌아갔습니다 장족 주로 현악기를
즐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현악기 종류도 다양해서 2현 3현
4현 등 긋는 악기와 뜯는 악기들
모두를 즐겨 연주하는
듯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보급된
악기는
사연이었습니다 뜯는 종류의 악기도
사면이 많았었지만 울림 통에 기둥을
받고 줄을 매 활로 연주하는 해금
악기도 역시
사연이었습니다 해금 악기는 대체로 두
줄을 갖는 것이 흔한 일인데 장족
이런
악기조율 악사들 거리의 악사도 모두
사면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번 여행 중에 남영시 그
광서 장족자치구
박물관에서 3현 월급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의회의
성과였습니다 3층 전시장 맨 끝에
오래된 월금이
있었습니다이 월금이라는 이름은 악기의
울림통이 보름달처럼 둥글 다가서
생겨진
이름이죠 다시 보고 또 다시 봐도
세개의 줄감개를 가지고 있는 사면이
틀림없었습니다 못 고은
악기로는 월급이나 완남 등 두 종류가
있는데 모두 먹줄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백제금동 대학로
주학 조사상의 중앙 학사도 역시
석줄기 넉줄 아기인 완함이라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잘못된
것이에요 그래서이 도상 자체가 넉
줄인데 석 줄로 잘못 묘사됐다
주장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엄연히
보이는 저 광사 자 치구의 삼연
학기를 우리 국악계에서 눈여겨 봤다면
이런 해프닝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래 도상학 그래는 실을 그대로로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에 어설픈 해석 때문에
백제금동 대학로의 실체가 속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중림 출연의 완함이 어떠니 일본 동
대사의 비파가 어떠니 하면서 사면을
사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광서 자체의 장조가
악기에 백제금동 대장로의 도상 학기와
같은 사면 악기가 있기에 두 지역에
역사와 문화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이 광서 자구에
오기 전에 중국 해남도를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여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가진 악기도 역시 연고 더욱
백제 금동 대학로의 악기와 닮아
있었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곳 적을 남쪽
오랑캐라 부르면서 멸시
했었는데요이 지방의 악기와 한반도의
백제 면과는 대체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학의 보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KBS 방송팀이 한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서 베트남
인접지역인
광서 장자 를
탐방했다 그곳에는 백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전라남도에서 보이는 독특한
맷돌 이것입니다
저것은 백제 허에 있는
것이죠이 도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리고 선당 문화의 흔적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장족의 민속을 때는 군들이
둥근 원을 그린 가운데 춤을 이끄는
남자가 연금으로 반주를 하면 그 밖에
사람들은 박자에 따라서 노래도 하고
춤을
추면서 줄이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면서 긴 소매자락을 내는다
이춤은 중국 역사책 삼국지 동전에
한전에 나오는 강광 순례와 비슷한
것이다이 기사를 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반도와 직선 거리로 3천여 km
떨어진 곳이 바로이 백제 향입니다
무슨 연구가 있지 않고서야 백제라는
이름을 천년이나 쓰면서 살아
왔겠습니까
지명서 백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든지 또 한자로 백자라고 쓰고
박자이라고 읽는다든지
문화적으로 백제 금동 대학로의 악기를
닮은 사면 학기를 쓴다든지 또 사면
춤과 외다리 방화 등 한국의 풍속과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이 백제의 주민들이 우리 국사에서
말하는 대륙 백제의 후손이다 말하고
싶었지만 중공 치아에서 산지도
80년이나
되고 중국 남방의 여러 민족과 섞여
산지도 이미 천년이나 됐으니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 한다도 정신병자로 오해
받기가 쉽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이
사실을 두고 말하지 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답답했습니다 게다가 식민사관에 기초한
한국의 사학자들이 가장 꺼리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바로이 대륙백제이기
때문에 참으로 여행 내내 심란했는데
자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지금까지 한양대학교 학대학 명예교수
이종구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