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공격? 백두산 폭발? 고구려를 계승한 강대국 발해가 멸망한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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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어떻게 멸망했을까?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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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우리
한국 사속 왕조들 가운데 가장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
발해 발해의 비중이 크게 인식되고
있지 못하고 또 바레 영토 상당수가
오늘날에 중국 러시아 북한인만큼
연구가 왕성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지만 엄연히 발해 역시 우리 한국
역사의 한 챕터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국가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서 강력한 강대국으로 존재했던
바였다만큼 후대의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국가가 바레인 그렇다면
발레는 어떻게 멸망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발레는 926년 거한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거란족은 요하는 강
부근에서 흥기 유목민족으로 크게 여덟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중
지랄의 야율 아보기 96년 거란의 타
부족들을 모두 통합하고 스스로 카가의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916 야유
라보기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유목국가
거란 국을 건설했습니다 수도는 오느
날 내몽골 자치구 자우 다몽이
곳이었죠 야유 라보기 황제에 오르고
난 뒤 몽골 초원까지 원정에 나섰으며
서역이라고 불리던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진출했습니다 몽골 초원과 서약 원정을
끝마친 뒤 야유라 보기는 이제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발레를 공격해서
멸망시켰던 거죠 기록에 의하면 야유
라보기 925년 12월에 군대를
동원해 발레로 진격했고 926년 1월
최두 달도 안 되어 발해를 매명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저술한 바레
고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926년
정월 기일에 흰 기운이 태양을
관통하였다 경신 일에 부여성이
함락되었고 성을 지키던 장수는
전사하였다 요나라가 따로 발의 동평로
공격해 격파하였다 병인 일에 늙은
재상이 이끄는 발의 군대가 패하였다
이날 밤에 요나라 태자 야율 배
대원수 야율 요골 남부 재상 야율 소
북원 이익은 야유 사열 남원 이익은
야율 진리 등이 상경성 포위하였다
기사 일에 왕이 항복을 청하였다 경호
일에 요나라 임금이 상경성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신미래 왕이 소복을
입고 새끼줄로 몸을 묶고 양을 끌고
가서 신하 3천여 명과 함께 나와서
항복하였다 요 임금이 이들을 예우한
뒤에 돌려보냈다 병자 일에요 임금이
측근 신나인 강말 딸 등 133명으로
하여금 경성에 들어가 병기를 수색하고
했는데 발의 순라군 이들을 살해했다
정축일 발의 왕이 다시 성을 수비하다
사활적 등이 공격하여 격파하고 요나라
임금이 성으로 들어갔다 왕이 그의 말
앞에서 죄를 청하였고요 임금은 왕과
왕족을 병사로 호이시 성을 나았다
뭔가 의아하지 않으신가요 한때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동아시아 최강대국
중 하나였던 발해가 고작 두 달 도
안대와 멸망했다는게 말이죠 중국 측
기록 요사에 의하면 거한이 발해의
민심이 멀어진 틈을 타 군사를 움직여
싸우지 않고 이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발해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었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
거란족이 손쉽게 발해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멸망 직전 바레 후기 역사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발레는 1대
대조영에서 터 2대 무왕 3대 문항에
걸쳐 전진적으로 공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하지만 4에서 9대왕
사이에 발해는 왕이 계승 쟁탈전으로
심각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발해의
4구 대왕 시기에 해당하는
793부터 818 아지 약 25년간
단 한 명의 왕도 정상적으로 지게하고
않았습니다 이러한 발레의 어수선한
내분을 수습한 왕이 10대왕 선왕이
있습니다 선왕은 빠르게 국력을
회복하고 대회 원정에 나서서 바레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넓혔으며
발레의 최전성기를 이룩하였고 발레의
전성기 시절을 일컫는 말인 해동
성국이 용어도 선왕 재위기
탄생했답니다 830년 선왕이 죽고
11대왕 대이진 터는 앞으로 쭉 바해
왕들의 왕호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왕 문항 선왕 이런 식으로 시호
없이 그저 본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심지어 공백으로 아예 누락된 시기도
있어서 몇 명의 왕들이 존재했는지조차
모르죠 그리고 선왕 사 후 또다시
발에는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왕권은
약화되고 귀족들의 권력 쟁탈전이
격해지는 심지어 자세한 기력도 없으며
왕들의 생물 연도는 물론이고 직위
연도까지도 명확하게 알기 어렵죠
확실한 건 발레가 그 어느 때보다
쇠퇴하고 있었으며 그 원인은 귀족들
간의 경쟁과 왕이 개승 분쟁이었다
해석하고 있습니다 발해에 복속되어
있던 여러 소수민족 부족들도 발레를
이탈하기 시작했죠 발레의 마지막 왕은
대인 선입니다 그의 제위 초에
거란족의 야유 라보기 거란족을
통합하고 황제에 등극하였고 야유
라보기 국가를 건국한 지역이 발해
영토였고 때문에 요나라의 건국 자체가
이미 발레와 싸움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간 발레는 만성적인 내분으로 인해
국력이 약해져 있었고 그 와중에
거란이 아는 거대한 강적의 등장은
바라의 앞날이 그림자를 들이었죠
대인선의 경우 나름 왕권 을 회복하며
발해의 국력을 다시 중하기 위해
내부적 노력도 많이 했으며 여러
국가들과 교류하며 외교적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레 멸망 2년
전이었던 924 대인사이 군대를
이끌고 요동으로 진격해 요동 전투에서
거란군을 무찔러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발레의 마지막 왕인 대인선이
그의 제위 이전 발레의 혼란기를 어느
정도 잘 수습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는 왜
두 달도 안 되어 멸망하고 말았을까요
첫 번째 해석은 아무리 대인선이 그의
재위기에 여러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근본적인 개혁이나 해결책은 없었고
여전히 내부는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사례입니다 유득공의 발해고 기록에서는
발해의 지방분이 발레의 수도 상경성
구원하러 왔다는 기록이 없죠 요사
기록인 거란군이 거의 싸우지 않고
발레의 수도 상경성 갔다는 것만 봐도
당시 발해의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관점이 두 번째
해석은 발해의 내부는 대인선 재기에
상당이 많이 개선되어 있었으며 발해의
내분이 발해 멸망에 큰 영향을 깨치지
않았다는 해석입니다 발의 멸망의
원인을 군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는데요이 거란군은 발의 각 지방의
여러 지역이나 성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 가며 진격하지 않고 곧바로
발해의 수도 상경성 진격했습니다
유목민족의 주특기가 기동성이 그들은
곧바로 수도부 포위해 버렸고 지방군은
손 쓸 수도 없이 발해의 왕 대인선이
항복해 버렸던 거죠이 해석을 뒷받침
않는 주장은 훗날 고려와 요나라의
전쟁 고려 거한 전쟁 당시를 보면
설득이 됩니다 고려 거한 전쟁 당시
거한의 요나라는 기동 성을 극대화하여
어떻게도 수도 개경으로 공하고
했습니다 2차 고려 거란 전쟁 당시
그렇게 했다가 양기와 김수 장군에게
그토록 당했으면서도 거란 전쟁 때 또
수도 개경으로 집공하는 방식을
고집했고 이로 말미암아 거란군의 가장
기본적인 전술은 일단 적국의 수도부
바로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죠
그게 바에게 먹혔고 고려에게 먹히지
않았던 거고요 한때이 발의 국력
세태의 원인이 백두산 폭발 때문이라는
설이 유행했었습니다 발 방 직전에
백두산에서 엄청난 대분화 있었고 이로
인해 발해의 국력이 크게 쇠퇴했다
것이죠 오늘 날 지질학자들의 화산
쇄설류 퇴적층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10세기 때 백두산에서 엄청난 대분화
있었다고 합니다 백두산 대폭발은 문헌
상에도 기록되어 있는데요 때는 바로
946년 있니다 고려 사에는 하늘에서
거대한 북소리가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측 기록에서는 하얀 재가
눈처럼 흩어져 내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백두선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일본까지
흘러 갔던 것이죠 946년 백두산
대폭발의 화산 폭발 지수는 6에서
7.4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이는
폼페이를 뒤덮어 버린 배수 비호 화산
폭발에 40에서 50배의 달하는
위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백두산 폭발로 인한 발의 국력의 쇠퇴
설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방금 설명드린 백조상대
분화는
946년 일로 발해 멸망으로부터
20년 이후의 일입니다 일부
학자들은이 정도 대규모 대분화
일어나려면 그 전에 몇 년 주 로
분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발해
멸망 직전인
946년대 분화를 예고하는 정도의
백두산 폭발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이 발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이는 어디까지나 추론일뿐입니다
하지만 분명 발의 멸망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고 미심인 부분이 있는 건
맞습니다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발의
멸망 이전부터 수차례 발의 사람들이
고려로 망명을 왔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발해 멸망 1년 전인
925년 발해 장군 신덕 등
500명의 고려로 들어왔으며 발해
예부 대화기 이 100호의 백성을
이끌고 고려로 들어왔고 좌수의 소장
모두 간 등이 천호의 백성을 이끌고
투항하였다 그의 전쟁을 피해 고려로
들어온 것이 아니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거란의 야율 아보기 군대를
일으킨 건 925년 12월입니다 물론
거란과의 전쟁 이후 망명 오는
집단들도 많았지만 거란과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도 수많은 발리인들은
고로로 들어왔다는 것이며 요사에
기록된 것처럼 거란의 야유 아 보기가
그 시점에 군대를 일으킨 이유는
발해의 민심이 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거한의 공격 이전에 이미 발해는
모종의 문제가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해지는
기록이 매우 빈약하여 알 수가 없죠
그렇게 발해는 멸망까지 미지로 남아
있답니다 그럼 역서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