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부대는 어디일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최강의 기병부대 TOP24 통합본

역사돋보기
152 팔로워
채널에 가입하여 혜택을 누려보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vsJc7Xq0m_TdSs-YGfPg1Q/join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류역사상 최강의 기병부대 TOP 24 [24위~1위]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통합본
#몰아보기
#전쟁
#부대
#기병대
#기병부대
#세계사
#역사
#역사이야기
#역사다큐멘터리
도서 리뷰 및 기타 협업 제의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email protected]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도보입니다 아직 기갑
전차가 등장하기 전 인류 역사에선 그
기능을 하던 부대가 바로
기병대였다 시기엔 기병대가 마치 전차
부대와 같았고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기병대는 정예 병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최강의 기병대로 어떤 기병대대
있었는지 탑 24를 뽑아보겠습니다
24위 삼국지 공손찬의 백마의
종입니다 공손찬 자체가 개인 무력만
놓고 봤을 때 삼국지 세계관에서 급에
해당하는 인물로 그의 이름만들어도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벌벌 떨거나
도망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손찬과
일부 그의 부하 기병창 그이 하얀
말을 타고 다녀서 그 기병대를 백마
의종이 불렀죠 공손찬은이 백마 의종을
이끄며 한때 한 나라의 북방네 개주
전체를 거렸답니다 참고로 좋은 즉
조자룡이이 백마의종 출신이기도 합니다
23위 오스만 제국의 시파이 기병대
있니다 오스만 제국의 부대라고 하면
예니체리가 가장 유명한데요 이에니
체리는 보병 중심이었고 오스만 제국의
3대 술탄이 있던 무라트 1세가
상비군 개념 로 창설한 부대가 시파이
기병대 있니다 무라트는이 시파이
기병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오느 날
터키가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를
확실하게 평정하고 발칸반도 정복
전쟁에 나서 오스만의 영토를 발칸
반도까지 넓혀 놓았죠 파이 기병대
중에서도 최정의 부대가 신라
그타르라고 있었는데 신라 타르는
오스만 군대 무술이 매우 뛰어나거나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신라 타르가 수행했던
작전들 전시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작전들이 있죠 화약성
성이 커지면서 시파이 기병대 군벌로
확정하였고 마찬가지로 군벌에 되었던
예니체리가 경쟁하면서 19세기
오스만의 30대 술탄 마흐무트 이세가
예니체리를 해산할 때 시파이 기병대를
대해 세웠습니다 하지만 시파이
기병대로 예니 체리처럼 강력한 군벌로
성장할 것을 우려했던 마흐무트 이세는
시파이 기병대로 해체해 버리죠 22위
고트족 기병대 있니다 고트족의
게르만족이 분파로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으로 대이동을 할 때 역시 고트족
내려와 로마 제국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고트 족은 게르만족
중에서도 유독 기병대가 발달했던
민족들이 있습니다 코트 쪽에 로마
제국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둔
기념비적인 전투가 378의
아드리아노플 전투입니다 이때 승리를
거둔 고트족의 비장의 무기가 바로
고트족 기병대였다 아드리아 오플
전투에서 로마군은 고트족 기병대에게
무려 4 5만 명이 쓸려 나가
버리는데요 로마도 운영하던 기병대가
있었습니다 다만 로마의 기병대는
창으로 싸우는 근접용 위주였고 고트족
기병대는 활이나 투척 무기 등
원거리용 위주였습니다 고트족 기병대의
원거리 공격과 신속한 기동력에
로마군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 던
거죠 이에 충격을 받은 로마 군도
본격적으로 기병대를 원거리 용으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또 적군의 원거리
용에 방어하기 위해 기병대대 중무장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군사
전문가분들은 서양 전쟁사에서 보병
위주의 군대가 기병 위주의 군대로
전환되었던 그 시점이 로마군이 고트
족에게 참패한 아드리아노플 전투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고트 족은 훗날
지금의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했던 서고트 왕국과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했던 동구 왕국으로
나뉘는데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 바로 동구 왕국 국이었습니다
21이 삼국지 여포가 이끌었던 기병대
함진영 있니다 함진영 지휘관은
소설에선 다수 다운그레이드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고순 이니다 정사
삼국지를 깊이 읽으신 분 중에선 여포
휘하에서 진짜 용맹과 지략과 충성을
모두 갖춘 장수로 장료다는 고순은
뽑는 사람도 많습니다 고순이 데리고
다니던 부대명 함진 영은 적 진영을
반드시 함락시킨다 뜻으로 정말 부수지
못하는 진영이 없었다고 합니다 조조의
하후돈이 고수의 함진영과 싸우다가
제대로 깨지죠 소설에선 이때 패배한
하우돈이 한쪽 눈을 먹는 걸로
나오고요 능력만큼 충성심도 고수는
남달랐는데 정적 여포조차 고수의
함진영 부대를 두려워해 고수는 어느
생각 멀리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고수는
끝까지 여포를 지켰고 여포가 합의성
전투에서 조조에게 패배할 때 여포
진군과 함께 처형됩니다 22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 기병대 있니다
로마 공화 정식이 가장 유명한 전쟁은
로마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가 세
차례에 걸쳐 싸웠던 포인이 전쟁일
겁니다 무역으로 막대한 국가 수익을
내던 북아프리카의 카르 하고는
상비군을 운영하기 보다는 용병단을
고용하는 형태로 전쟁에 임했는데 이때
육지 쪽에서 가장 크게 의지했던
용병이 북아프리카 알제리아 튀니지에
걸쳐 있던 누미디아 기병 되었습니다
그덕에 1차 포인이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2차 포인이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로 쳐들어오고
스키피오가 반대로 한니발이 본진이
있던 오느 날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로 쳐들어가 원정에 나설 때
스키피오의 가장 큰 적은 사실상
카르타고에서 고용한 누미디아 기병
대였습니다 스페인은 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본국인
북아프리카로 넘어가는데 북아프리카로
넘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누미디아
기병대 포섭하는 일이었습니다
스키피오의 로마가 누미디아 기병대를
포섭한 카르타고에 승기가 더 이상
없었고 기원전 202년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드림미 치였던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가 승리하면서 2차 포인이
전쟁을 로마가 승리하여 1차 포인이
전쟁의 패전을 제대로 설욕할 수
있었죠 19위 삼국지 조조의 호표기
있니다 호표기 조조의 친이 기병대
습니다 삼국지 일보의 주인공은 누가
모래도 조조조 미약한 작은 군벌로
시작했던 조조가 여포 원술 원소 등을
물리치고 중국 북방 전체를 통일할 수
있었던 조조의 자랑이 바로 호표기
있습니다 호표기 기병대의 용맹함이
호랑이와 표범 같다고 해서 붙여진
부대명 있니다 조조가 중국 북방의
패권을 두고 원소와 장을 괴롭던 관도
대전에서 원소가 패배한 후 얼마 안
있어서 원소가 사망하 그 거대했던
원소의 세력은 원소 아들들이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키며 다
말아먹었는데 이때 조조가 원소의
아들들을 토벌 킨 부대가 호표기
있으며 유비가 조조를 피해 10만의
달하는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는
행렬에서 기습을 받아 정말 질한
순간까지 갔던 그 사건을 일으킨
부대도 바로 조조의 호표기 있습니다
그런데 적벽대전 당시 호표기
지휘관이었던 조인의 동생 조순이
전사하는 조조는 따로 후임을 뽑지
않고 본인이 직접 호표기 지휘했습니다
나중에 조조가 죽고 조비 조의 정권
때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진구
조슈이 호표기 출신들이었다 2 돌궐
기병대 입니다 돌골 적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트루크 계열 유목민족으로
몽골 초원지대로 진출하여 6에서
7세기까지 돌골 제국을 7에서 8세기
경엔 돌궐의 이재국이란 유목 제국을
건설했던 민족입니다 당연히 유목
민족인만큼 기병이 특화되어 있죠이
돌거인 이전까지 몽골 초원의 자리
잡고 있던 동호 계열 유연 족을
몰아내고 몽골 초원을 차지하였고
중국측 기록에 의하면 돌궐 제국은
서쪽으로는 에프터를 격파하고
동쪽으로는 거란을 패주시켰다
변방에 모두 든 나라를 복속시켰다
나와 있습니다 중국의 수나라 수
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고구라
침공한 것도 고구려가 돌골 아 연합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그만큼 중국에게
돌궐의 존재는 위협적이었던 비록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수양제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는 돌걸 기병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언급했다고 하죠 당나라가 언급되고는
돌궐이 당나라의 지원 요청으로 군대를
파병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돌궐
기병대가 투입됐습니다 돌궐 제국은
당태종 이세민 때 잠깐 당나라에
복속되었다 태종사 후 당나라의 고구라
멸망전에서 돌궐 기병대가
투입되었습니다 이후 7세기 말 돌궐
제 이재국 회복시켰습니다 696
당나라의 영주에서 이진충 손만영 등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당나라의 요구로 당시 돌궐 제 이재국
칸이었던 묵철 가안이 돌궐 기병을
투입해 거란족의 반란을 진압해 준 바
있습니다 묵철 가안을 거란족 진압을
도와준 대가로 다량의 물자 공급
당나라 황실 공주와의 혼인 동맹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섭정 였던
당나라의 측천 무후는 일단은 들어
달라는 거 다 들어주려고 했는데 축천
무후가 보내준 황실 공주가 황제의
친딸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분노한
묵철 가하는 역시 기병대를 당나라로
침공시 대규모 약탈을 삼았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터 몽골에 이르는
수많은 중소 유목민족들이 묵철 가에게
털린 당나라를 얕보고 돌궐에
붙었는데이 당시 돌궐의 병력이 무려
40만에 육박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 터 몽골 초원을 좌지우지
하였죠 17위 위그루 기병대 있니다
돌골 체 이재국 무너뜨리고 몽골
초원의 새로운 주인이 된 민족이
위구루 있습니다 위구르 역시 돌골 럼
트루크 계열 유목 민족이며 몽골
초원과 트루크 계열을 통합한 위구르는
744 위구루 제국을 건국했습니다
한편 당나라에 755년 안사이
난이라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는데요
안사이 난 주동자였던 안록산은 사명과
함께 755년 군대를 일으켜 수도
낙양과 장한을 점령했습니다 당나라
황제 현종은 수도를 탈출해 피난을
가야만 했죠 당 나라에선 영혼까지
병력을 끌어모아 반란군과 싸웠으나
하명 전투에서 사상 무려 4만 명을
내면서 당나라가 대패를 해버렸습니다
도저히 당나라 정부의 자체 힘만으로는
안녹산 사사 명을 진압할 수 있는
능력도 안 되고 하명 전투에서 패배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도 없었습니다
당나라 정보는 외세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구원을 요청한 것이 위구루
있습니다 발란지나 프 막대한 양의
보상금과 황실 공주와의 혼인을
약속으로 구원을 요청했고 위구르는이
당나라의 내전의 개입 군사력을 보태
주었습니다 위고에 기병 6천 정도로
지원해 주었는데 당나라가 어떻게 해도
진압하지 못한 반란군이 것만 위구르
기병 6천이 757년 9월 장한을
수복했다 수복하였습니다 다만 낙양
함락 후 위고르 병사들이 낙양을
대규모로 약탈해 버렸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위구르의 약탈이 부담스러워
이후부터 당나라 자체 힘으로 안사이
난 잔당 세력과 싸우지만 위구루
기병이 빠지자마자 다시 또 반란군에게
신나게 털리고 낙장까지 도로 빼앗기지
762년 당나라는 별수 없이 다시
위구루게 지원 요청을 했고 위구르는
고자 기병 4천으로 낙양을 재탈 나며
안사이 나는 763년 공식적으로
끝이납니다 16이 거한의 기병대
있니다 거란족은 요하는 강 지역에서
흥기와 동호 계열의 유목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10세기 경에 세운
국가 이름도요 나라인 거죠 당연히
유목 민족이기에 그들의 기병대는
강력했고 10세기경요 나라라는
거란족의 제국을 세운 장본인은 야유로
복이었습니다 96년 야유 보기는
거란족의 타 부족 장들을 모두
복속시키고 스스로 카관의 등극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16 KN 야유
보기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유목
국가를 건설했다 보기는 황제에 오르고
나서도 몽골 초원까지 원정에 나섰으며
서역이라고 불리던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야유 보기가 요나라를
통합하고 저멀리 차클 막한 사막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전면에 내세운
병력이 요나라의 철기 있습니다 요나라
군의 철기는 도끼 철퇴 등 타격
무기와 삭이라는 장창을 애용하며 그
기동력이 매우 빠르고 공격력도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겐 기분
나쁘지만 요나라 군 철기가 그 위력을
제대로 선보였던 전쟁이 926년 바해
전이었습니다 요나라 군 철기의 작전은
국경지대에서 적국의 수도까지 최단
루트로 매우 빠르게 집공 우선 수도부
함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발해가 그렇게
멸망했던 수도로 집공하는 건 후방과
보급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정확성과
속도가 생명이 것만 거한의 철기은
그걸 충분히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다만 거란족은이 철기의
전술에 지나치게 맹신하여 기병이
활약하기 적합하지 않은 지형에서도이
전수를 고집했고 그래서 고려를
침공했던 고려 2차 전쟁과 3차 전쟁
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15위
당나라 기병대 있니다 흔히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오합지졸이 아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이건 당나라 후기에는
적용될뿐 당나라의 2대 황제 당태종
이세민 때까지 당나라 군은 세계 최강
중 하나였습니다 실제 당나라 군의
기병대를 창설한 것도 황자 시절의
이세민이 있습니다 당나라의 건국자
당고조 2연은 상징적인 존재였을뿐
수나라 멸망 후 이리저리 찢어진
군벌들을 모조리 진압한 건 이세민이
직접 기운 기병 되었죠 이연 이세민
가문의 근거지가 산서성의 태 이라는
곳이어서 이세민의 기병대를 태원
기병대 아고 불렀으며 태원 기병대는
당나라 건국 후 그대로 당나라
기병대로 전환되자 이세민은 당
태종으로 지휘한 이후 기병대 양성에
더 열을 올렸고 당나라 기병대
중에서도 기마술 궁술의능한 자들을
뽑아 별도로 월기 아는 정애 기병대를
또 조직했던 더군다나 중국 전쟁사에
있어서도 당나라 기병대가 중요한 것이
본격적으로 중국 왕조의 기병대가
경기병 위주로 전환되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중장기병은 방어력과 공격력이
강할 수 있어도 기동성이 다섯
떨어지죠 당태종 이세민이 개혁한
당나라 경기병들 기동력을 강화하여
특히 유무 민족들과 싸우는데 대해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630년 당태종
이세미는 동 돌궐을 멸망시켰고
640년 오느 날 신장 위구르 제치고
했던 나라 고창국 멸망시켰고 서역에
거의 모든 유목 민족들이 당나라에게
복속되었다 14위 고구려의 개마무사
있니다 고구려의 개마무사 최정의 중장
기병대로 고구려의 중장 기병들은 말도
철제 무장화 했는데이 무장화 말을
개말라 했으며 개마을 탄 기병부대 를
개마 무사라고 불렀습니다 지휘관들은
직급이나 신분에 따라 투구의 뿔 장식
등을 넣기도 했습니다 고그의 개마
무사는 보병들이 쓰는 창보다 긴
장창을 사용했으며 고구려 병사들은 말
위에서 화를 쏘는 배사 이른바
파르티안 샷을 구사했습니다 파르티안
샷은 고도로 숙련된 기마 소이 없으면
구사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개마 무사들이 싸우는 방식은 영락
없는 유목민족들이 싸운 방식이죠
고구려가 그토록 군사력이 강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엔 개마무사의
활약이 컸고 광교 토 대왕의 정복
전쟁 장수왕의 정복 전쟁 그리고
고구려 후기 수나라와 전쟁이나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도 항상 전면에
나섰던 정애의 기병 되었습니다 13위
러시아의 카자크 있니다 카자크의
우크라이나 인으로 구성된 기병대였다
이나는 한대 리투아니아 공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17세기경 우크라이나의 영웅
보흐단 흐멜니츠키 등장해 현
우크라이나 지키 조상들이 할 수 있는
농노들을 규합해 자포로제 카자크
구성하며 독립전쟁에 나섰습니다 이때
러시아가 자포로제 카자크의 독립을
지원해 주었는데 전쟁의 결과 현
우크라이나 땅은 는 드네프르 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러시아가 서쪽은
리투아니아가 같이 가기로 했죠 결국
자포로제 카자크은 러시아로 편입된
거랍니다 하지만 카자크 내에서도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세력과 차라리
러시아의 편입되지 않는 쪽으로
나뉘는데 자포로제 카자크은 계속
독립을 하려고 했고 러시아의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카자크을 돈
카자크 아고 부릅니다 러시아는이
카자크을 부려 먹었는데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는 시베리아 대륙 확장할
때 춥고 척박하고 힘든 곳이니까
카자크로 김명대 만들고 시베리아
확장에 맨 먼저 내세우게 했습니다
그러니깐 유럽에 한정되어 있던
러시아가 오늘 날 시베리아까지 영토를
확장시킨 장본인들은 실은이 카자크인
들이었던 거죠 12위 흉노 김명대
있니다 흉노족의 발령지는 고비 사망
남부와 현 중국의 북부로 몽골
초원지대의 최초로 유목 제국을 건국한
유모 민족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았던
흉노족은 중국의 왕조들을 공격하면서
약탈로 필요한 경제 생활을 충당했는데
유모 민족으로서 당연히 흉노족
대다수는 기병 위주였고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춘추 전국 시대로 보병
위주였습니다 보병 중심의 춘추
전국시대의 중국에서 김아 전수를
사용하는 흉노족의 병사들을 당해내기가
버거웠습니다 중국의 전국 치홍 중
조나라의 조 무령왕은 이른바 호복
기사라고 차라리 저 유목 민족들로부터
배울 건 배우자에 유목민족들의 기하
전수를 도입했습니다 조나라가 호복
기사로 강력한 기병대를 보유하 나머지
전국 용들도 기병 전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중국의 기병 병력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흉노는 묵특 선후에
이르러 흉노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이때가 막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로 로 중국을 통일했던
시점이었습니다 한고조 유방의 자신감이
하늘의 찌를 떼었는데 한고조 유방이
흉노족 토벌하러 갔다가 백등산
전투에서 데려 당하고 옵니다 한고조
유방은 묵특 선우의 아내에게 가은
로비를 하면서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올 수 있었죠 한 나라도
기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 기병
수십기 흉노 기병 세 기한 전멸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흉노 기병은
강력했고 11위 최초의 유목민족
스키타이 족입니다 스키타이의 원주제
시베리아 남부 현 중앙아시아의 북부
쪽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점차 중군동
쪽으로 이동하며 흑해와 카스피에
부분에 정착했던 가장 오래된 기록들을
보면 스키타이 족들은 중동의 민족들
예컨데 아시리아 등과 접촉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스키 타이를 비롯한
유모 민족들의 기병대는 말 위에서
화를 쏘는 매우 어려운 기술을
구사했습니다 스키 타이라 이름 자체가
그리스 쪽에서 이들을 부르는 이름
스콜로 2에서 유래했는데 뜻은 궁수는
뜻입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스키타이 족을
샤카라 불렀습니다 한자 변방 세계
색도 스키타이 족을 가리키는 샤카의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
기병대에 대해 그들은 내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들은 도시도 성벽도 없고 집을
수레에 싣고 다니고 말을 타고
활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묘사 있죠 하지만
스키타이 족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황제의 원정에 밀려 시베리아
북방 초원으로 이주한 하면 2 1대의
유목 문화를 퍼뜨립니다 12 한나라의
기병대 있니다 정확하게는 한 무죄 때
한나라의 기병대 있니다 한나라는
언제나 흉노 제국에게 시달리기 man
했는데이 위계를 뒤집어 엎은게
한나라의 7대 황제 한 무죄였다
men 가장 유명한게 흉노 원정이 한
무제는 위청 곽거병 등을 동경해 일곱
차례에 걸쳐 흉노를 초토화시켜
놓았습니다 흉노 3차 완정 때 위청일
한나라 구는 3만의 병력으로 고비
사막에서 1만 명을 살상했다
소화 양등 가축 1만 들어 노획했다
원정 때는 위청일 한나라 군이
우현왕이라는 흉노의 부족장을 죽이고
남녀 1 5,000여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위청일 흉노
원장에 같이 참여하던 위청일 조카
곽거병이 아고 있었는데 곽거병은 겨우
살이었을 때 딱 800명 man
데리고 흉노 부족들을 개박살 했다고
합니다 다른 부대들은 고전을 면치
못할 때 각과장의 부대만이 기련산
수급 3만을 배며 전세를 역전시킨
적도 있었죠 곽거병이 활약이 워낙
두드 진니 곽거병은 젊은 나이의 고속
승진을 해서 3촌 위청 이은 한나라
군부 2인자가 됩니다 기원전 119년
마지막 7차 원장이었던 막북 전투에선
5만의 군대를 이끌고 무려 2천 리를
행군 고비 사막을 뚫고 러시아 바이칼
호수까지 올라갑니다이 사이에 셀 수
없을 정도의 흉노 부족장들이 투항했다
무려 흉노 중 7만 명을 참소합니다
한 무제의 흉노 원정에 위청 곽거병의
주로 운영했던 부대가 기병대였다
한나라가 이토로 강력한 기병대로
진화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흉노족의
기병 전수를 그대로 카피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곽가의 막북 전투에선
그렇게 북진하는 동안 현지 흉노족을
약탈해서 보급을 졸아 다했는데이는
전형적인 흉노족의 전술이 그든 또 한
무제는 흉노 원정에 앞서 서역에
존재하던 명마 한혈마 3천 피를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뜻의 한혈마 품종은
투르크메니스탄 아할테케 아는 품종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명마로
불리는 품종이죠이 한혈마 흉노족이
타던 말보다 훨씬 수준급의 말이었고
9위 인도의 고르라 사르다르 있니다
인도의 무굴 제국이 군림하고 있던
시절 이슬람을 종교로 채택했던 무굴
제국으로부터 벗어나 현지 종교 중
하나였던 시크교의 교도들 그리 오늘날
파키스탄이 있는 펀잡 지역에 시크
왕국을 세웠습니다 19세기 한 50년
정도 존속했던 나라인데 그 짧은
50년간 시크 왕국은 기병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기병대의 이름은 고르라
사르다르 고르라는 기마르 듯하고
사르다르 군 지휘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철제 사슬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고 주로 장창을 사용하던 창
병과 총기를 사용하는 총기 병이
있었죠 고르 그라 사르다르 시크
왕국을 건국한 란지트 싱이 가장 먼저
조직한 상비군이 있습니다 이들의 무장
상태는 색깔이 다양해서 굉장히
화려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서양인들은
프랑스 기사단과 비유를 했다고 하죠
하지만 질적으로는 훨씬 더 우수
했고요 실제로 프랑스 기병대 출신의
고문단 그이 고르 그라 사르다르
창설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경 영국이이 지역으로
진출하자 영국이 인도로 가기 위해서는
펀잡 지하방에 있는이 시크 왕국을
물리칠 수밖에 없었고 19 19세기
중반 영국 시크 전쟁이 발발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영국군이 고르 그라
사르다르게 밀립니다 영국 시크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은 고르 그라 사르
다르를 악마처럼 거칠고 매서웠다
그렇게 용감한 전사들을 본 적이 없다
세계 최강의 기병대라고 묘사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고르 그라
사르다르 내분으로 와해되어 최종
결과는 영국의 승리였던 승리 후
영국은 바로 고르라 사르다르 기병대
출신들을 영국군으로 편입시켜 인도를
지배하는데 앞장 세웠죠 8위 이집트의
만루 기병대 있니다 맘루크 부대는
아랍인들의 이슬람 왕조였던 아바스
왕조에서 트루크 계열 노예들로 구성한
부대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아바스 왕실이
맘루크 부대에 의지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맘루크 부대의 권한과 위상이
치솟더니 맘루크의 군부 실력자들이
이제는 아바스 왕실 칼리프 계승에
개입할 정도로 군벌로 성장합니다
그러다 시리아 쿠드 족의 살라딘이
북아프리카에서 시리아까지 이르는
아이유브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때가
유럽 크리스트교 연합과의 십자군
전쟁의 한창이었는데 아이유브 왕조는
3차 5차 6차 7차 십자군을 모두
몰아냅니다이 십자군 전쟁에서 아이유브
왕조가 내세운 정의 기병대가 이집트
근거지의 맘루크 기병대였다 맘루크
기병대는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매우
출중한 최정의 기병대가 되어 십자군
전쟁 때 활약하면서 그 입지가 더
강해집니다 결국 1250년 맘루크
기병대가 반란을 일으켜 아이유브
왕조를 장악했습니다 기병대 대장이었던
아이바크 아이오브 왕조의 술탄을
교체하거나 꼭두각시로 세우는 등 자기
멋대로 술탄을 좌지우지 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술탄에 오르면서 아이오브
왕조를 멸망시키고 고 맘루크 왕조를
세웠습니다 단 맘루크 왕조에게 최대의
적이 나타나니 바로 몽골 군이었다
제국에서 훌라구 가는 아랍 원정군이
이라크와 시리아까지 진출하였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 맘루크
기병대를 조직해 반격에 나섰습니다
다만 몽골에서 대칸 몽케칸이 죽으면서
사령관이었던 훌라구 귀국하고 그의
부장이었던 키트부카 남아 있었는데
맘루크 기병대가 키트부카 몽골군을
상대로 1260년 팔레스타인 남부의
계곡 아인 살루트의 유인 매복전
대승리를 거둡니다 맘루크 기병대는
천하의 몽골 기병대를 상대로 승리한
전적이 있는 기병대였다 몽골이 이집트
진출은 좌절되었고 전통적으로 이슬람
왕조들이 다스리던 중동 이라크 이란의
영토를 몽고 구령에 빼앗았지만 맘루크
왕조는 이집트와 이슬람의 시발지
아라비아 반도만은 사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7위 독일의 흑기병 있니다
흑기 병은 갑보 단의 검은색 옷을
입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블랙 라이더라고 하죠
중세시대의 유럽은 기사들이 어마어마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아주
화려하고 아주 무거운 갑옷들을 입은
것으로 유명하 그중에 물론 활약했던
기사단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영치를
두고 봤을 때 중무장한 중세시대의
기사단이 그렇게
막강했던 아니랍니다 아니나 다리가
화기들이 나타나면서 기병대는 더더욱
쓸모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는데이 중에
어떤 리더들은 쓸모 없어진 기병대를
쓸모 있게 바꾸어 나갔습니다
기병대에게 전시 말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총을 쥐여 준 건데요 그 시작은
1484년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가 100명의
흑기 병을 창설하면서 붙어 있습니다
중세시대 중무장한 기병들이 총을 진
병과를 퀴레시어 아고 부르며
번역하자면 흉갑 기병이 뜻입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흑기병 점차 조직이
커졌고 16에서 17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그 수많은 전쟁에 거의 모두
참전하면서 유럽 전쟁사의 판도를
뒤바꾸어 특히 구교와 신교 간의 종교
전쟁이었던 30년 전쟁 중 신성로마
제국군에 그나마 활약했던게 흑기병
이었죠 총을 쏘는 중장기병 흑기 병이
창설된 일에 유럽 각국에서도 똑같은
퀴레시어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6이
스웨덴의 하카 필리트 있니다
생소하시죠 하지만 기병 역사에서
스웨덴의 하카 필리트 2는 굉장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카
필리트 2는 17세기 스웨덴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당시 스웨덴에 지배를 받던
핀란드 인과 핀란드산 말들로 창설한
기병 되었습니다이 시기는 냉병기
화기가 공존했던 시기로 아직까지
기사단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유럽에서는 중무장한 기사가 총을 들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중무장을 냉병기로
싸우기엔 적합해 총을 들고 싸우기에는
신체제 게 많았고 구스타프이 아돌프는
과감하게 총을 들고 싸우는 기병들을
경무장 시켰죠 더불어 그간 유럽의
기병 전술은 기병대가 대열 별로 총을
쏘고 치고 빠지는 전수를 사용했습니다
중무장을 하다 보니 움직임과 이동량이
크면 분리했던 거죠 하지만 스웨덴의
하카 파리트 경무 장한 덕분에
움직임이 자유로워 치고 빠지기가
아니라 그대로 돌격할 수가 있었고
상대측에서 여전히 치고 빠지기 전수를
쓰던 바람에 그 틈에 스웨덴의
기병대가 뚫고 지나면 적의 대화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었 있었습니다
신교와 구교가 싸웠던 종교 전쟁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의 신규
팬이었는데 스웨덴 군이 연전 연승을
거두면서 30년 전쟁의 전세가 신교식
기울었습니다 그만큼 30년 전쟁에서
스웨덴의 역할이 대단했는데 그
중심에는 기병대 하카펠리타 2가
있었던 겁니다 스웨덴 하카펠리타 2의
경부전 기병대의 등장한 일에 유럽의
여러 기사단들이 경 무장화 하였고
7위에서 말씀드렸던 흑기 병들도 흉갑
qu 투구만 착용하며 경무장
전환합니다 5위 나폴레옹의 기병대장
미라 기병대 있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호령하는데 있어 여러 병가가
활약하였지만 당연하게도 정북 전쟁에선
기병의 중요성이 클 수밖에 없겠죠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에서 기병대를
이끌던 사령관이 미라 있습니다 미라가
지휘하는 기병대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죠 특히 프랑스가 영국과
러시아의 공격을 동시에 받고 영국
전선에서 트라팔가 해전으로지고 있을
때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싸움이었던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선
미라의 기병대가 대활약을 하여
나폴레옹의 승리를 거두며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의 발달에
따라 아무리 총을 쏘는 기명 되어도
곧 소멸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포병과 보병의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여전히 기병 대들은 강력하다는
걸 입증해 보였죠 하지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후 미라는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립니다 이후
미라가 지휘하는 기병대가 아닌
기병대는 라이프치 전투와 워털루
전투에서 모두 패전했다면 몰락합니다
그만큼 미라가 지휘하는 기병대의
공백이 컸던 거죠 4위 동유럽의
후사르 있니다 중세시대서 유럽에선
중무장한 기사단들이 거의 전부였지만
동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경기병 중요하게
운영 중이었습니다 15세기 중후반
헝가리 왕국에서 구왕 친위 부대로
경기병의 조직했는데이 부대 이름이
후사르 있습니다 심지어 상비군이 있죠
확실히 경기병이만큼 기병의 장점인
기동성을 10분 살릴 수가 있었고
헝가리 왕국이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이 후사르
덕이 컸죠 후사르 경기병 분화는 인근
동유럽에 퍼져 폴란드에서는 후사르
기병대를 더 발전시켜 윙드 후사르는
기병대를 만들어냅니다이 기병대대 는
등에 날개 장식을 달아서 윙드
후사르는 이름을 가졌죠 동유럽은
확실히서 유럽보다는 기마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높았는데 오스만
제국이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멸망시키면 멸망한 국가 출신의 기병대
그이 대거 폴란드로 몰려들었고
폴란드는 이들을 인적 정원으로 삼아
윙드 후사로 창설했고 윙드 후사로
중국인은 장창이 있습니다 돌격에
특화된 부대였던 그래서 유럽 최후의
창기 병이라고도 불립니다 총을 쓰는
적군을 상대로 총을 쓰지 않고이
장창으로 돌격한다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아직 스웨덴이 경기병 개혁을
이루기 전이었던 1605년 고작
2,500명의 윙드 후사르가 스웨덴
1 2,000명을 아작을 냈으며
1683년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수십만의 오스만 병력에 포위 됐을 때
오스트리아와 함께 싸웠던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 1,000의 병력이 빈을
포위한 오스만 군을 개 박살내
버립니다 이때 윙드 후사의 돌격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이
평가한다 하지만 화기가 발달하 에
따라 윙드 후사로 자연스러 도태되어
갑니다 3위 청나라의 기병대 있니다
청나라를 건국한 민족은 만주족
만주족은 유무 민족이라서 농경대
활발이 했던 반농 반목의 민족인데
그럼에도 농경 민족들에 비해서 기하
문화가 월등하게 발달해 있었고 청나라
전성기 때 기병대는 말 그대로 세계
최강이었던 2에선 누루 아치가 신들린
기병술로 약 10만 가량의 조명
연합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아
만주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 때는 몽골
족까 통합하면서 기병대가 더
막강해진다 청나라의 군사 조직 및
행정 조직을 팔기군이라고 하죠
청나라의 대왕제 강희재 때는 팔기군
중국 남부 지방에서 한족 군벌들을
일으킨 3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정벌하고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을
저지시키고 최후의 유목 제국이라고
하는 서몽골 준가르 제국의 건설자
갈단 칸을 물리쳐 중가르 복수시
있습니다 청나라의 육대 왕제 걸제
중가로 완전히 멸망시킨 후 위구루
편입시켰고 티베트에서 장족의 반란을
일으키자 를 진압한 뒤 네팔까지
진출했으며 미안마 원정에 나서기도 또
베트남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다만
지배층이 아니하므로 팔기군 더
강화되지 못하고 나중엔 오합 지절
기병대로 전락하자 이위 알렉산더
대왕의 기병대 헤타이 로이입니다
서양은 기병의 시작이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보병
중심이었고 고대 그리스 말기부터
서서히 기병대를 운영하는데 서양
전쟁사에서 본격적으로 기병대가
활약하기 시작한 건 알렉산더
대왕부동산 대왕이 끈 마케도니아의
기병대를 헤타이로이고 부르는데요
헤타이로이 기병대를 처음 창설한 건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였다 2세는 헤타이로이 기병대
사령관에 자신의 아들 알렉산더를
임명했는데 그동안 최빈국이 최 약소국
중 하나였던 마케도니아가 고대
그리스의 최강국이었던 태배 격파했던
기원전 338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알렉산더가 이끄는 헤타로 김명대
엄청난 활력을 하였죠 이후 왕으로
등극한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에
나섭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표적인
전투가 레시의 황제 다리우스 3세와
싸운 기원전 333년 이소스 전투와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
그리고 인도에서 싸운 히다스페스 강
전투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전술은
항성 거의 동일했습니다 본진과 본진이
붙을 때 알렉산더 대왕은 히타이 로이
기병대를 직접 이끌면서 적진의 측면을
탱크 마냥 뚫고 지나가 적진의
사령관이 있는 곳까지 깊숙히 무모하게
돌진해 적의 사건부터 노리는
것이었는데요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작전이 알렉산더 대형이 이끄는 히타로
기병대는 항상이 작전에 성공해 아무리
전세가 분리해도 사령관이 도망쳐
버리니 항상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를
거두었던 거죠 1위 아마 너무 뻔한
결과일 텐데 몽골 제국의 기병대
있니다 몽골 기병대를 분석한 연구만
그 양이 어마어마한데요 징기스칸이
만들어 놓은 몽골 제국은 징기스칸
이후로 유라시아 대륙을 재패했다 대한
징기스칸 때는 몽골 초원에서 터 중앙
아시아까지 진출했으며 2대 대한
오고타이 칸트는 바투의 유럽 원정이라
하여 동유럽까지 진출하였고 4대 대카
몽케칸 때는 훌라구 아랍 원정이라
하여 중동까지 진출하였고 오대 대칸
쿠빌라이 카는 대칸이 되기 전 남성을
멸망시켜 중국 대륙을 차지하였습니다
비록 몽골 제국이 일본 동남아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 서유럽으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그들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몽골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몽골
제국으로 인해 그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는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몽골군이
이토록 뛰어난 기동력을 보이며 압도적
파괴력 아지 갖춘 건 전술도
전술이지만 무기의 활용도도 높았던
덕분 이죠 가장 많이 사용했던 무기는
활로 몽골족이 사용한 활 각궁은
유럽인들의 활과 성능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전 거리가 길었습니다
칼은 직도다는 국도를 사용하여 기병이
말을 타면서 살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했으며 같은 맥락으로 도끼와 철태도
애용했습니다 방패는 칼 칸이라 하여
작은 원형 방패로 휴대하기 편하도록
하며 기동과 공격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죠 말은 거세
말을 최대한 활용했고 마구는 가벼움을
추구했습니다 기마 무기도 기마
무기지만 공성 무기가 덕도 크게
받습니다 몽골족은 중국인 한쪽부터
아랍인 페르시아인 아르메니아인 등
공성 능력이 출중한 민족으로 공병대를
만들어 각종 공성 무기 그리고 각종
도로와 교각 공사 등에 있어서도
공병대가 맹활약을 했죠 공병대만큼이나
몽골군이 잘 운영했던 부대는 정보
부대와 탐색 부대였습니다 몽골군이
그토록 연전 연승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엔 지향에 대한 남다른
이해도가 큰 몫을 했는데이 실크로드
상인들을 포섭해 전투전 철저한 탐색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4개의
기병대대 소개해 드렸는데 제가 빠뜨린
기병대가 있다면 댓글 로고 공유해
주세요 그럼 역사 돋보기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