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전투는 어떤 전투일까? 시간순으로 보는 역사를 바꿔버린 가장 위대한 50가지 전투 1 ~ 25번째 통합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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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가장 위대한 전투 TOP50 1~25 통합본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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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대규모 전쟁에선
역사적 의의가 굉장히 중요한 전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골라봤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 탑 50 시대 순서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기원전 480년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연합이 페르시아
제국의 공격을 막아낸 해전이 세계
4대 해전 중 최초로 일어났던
살라미스 회전입니다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만들었던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은 서양의 그리스 문명
위협했습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8대 황제였던 크세르크세스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해 영화
300에 나오듯이 스파르타 군을 먼저
무찌르고 아테네까지 함락하다 다행히
아테네 함락전 아테네의 집정관
테미스토 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살라미스 섬으로 대피시켜 놓았죠
그리스의 다른 도시 국가들이 아테네를
포기하자고 할 때 태밀 스토
클래스만이 살라미스 앞바다에 싸우자고
고집했고 뱀의 혀라 불리던 별명대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게 거짓 항복을
하여 속이고 일부러 페르시아 군을
좁은 헤어를 유인 아테네 전남
3척으로 천 척의 페르시아 전함과
싸워 대승리를 거둡니다 두 번째
기원전 331년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삼세를 최종적으로 물리친
가우가멜라 전투입니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에
꿈을 품고 아시아로 넘어가 페르시아
제국과 맞붙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황제는 16대 황제 다리우스
세였습니다 매우 빠던 알렉산더 대왕을
상대로 이소스 전투에서 먼저
회전했을 재정비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어마어마한 대군을 모으곤 오느
날 메소포타미아 지방 티그리스강
근처에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전차
부대를 앞서 싸우지만 알렉산더 대형이
이끄는 최강 기병대의 돌격전 패전하고
맙니다 다리우스 3세는 살아
도망치지만 가우가멜라 전투가 사실상
마지막 전투였고 이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자 세 번째 기원전
260년 중국 춘추전국 시대 중 전국
시대에 일어났었던 장평 대전입니다
수백여개의 제후국들이 경쟁했던 춘추
시대를지나 전국 시대는 일곱 개의
나라들로 정리가 됩니다이 중 훗날
춘추 전국 시대를 통일하게 되는
진나라에서 아직은 진시황이 등장하기
전이 진나라의 소양 왕이 명장
100기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조나라에서 명장 염파를 보내 진나라와
조나라가 장평에서 맞붙은 전투가 장평
대전입니다 2년간 치열한 격전이
오갔지만 결국 진나라가 승리했어
전쟁이 끝난 후 진나라의 백기가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
장해 버립니다이 백기의 생매장
사건으로 장평 대전을 춘추 전국 시대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한 답니다네 번째
기원전 202년 고대 로마 공화정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맞붙었던
포인이 전쟁 중 두 명장의 드림
매치였다 자마 전투입니다 포인이
전쟁의 두 명장이라함은 카르타고의
한니발과 로마의 스키피 오겠죠 알프스
선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온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칸나이 전투에서
4면 포위하는 압도적인 전수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포위 선자는
한니발의 주특기가 되는 요 로마의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스페인 식민지로
넘어가서 그곳에서 한니발과 똑같은
포위 선전으로 카르타고의 스페인
식민지를 정복했습니다 이후 부가 레카
카르타고 본국으로 쳐들어가는데 놀란
한니발은 곧바로 카르타고를 귀국
오늘날 부가 그레카 튀니지의 자마라
곳에서 두 명장의 드림매치가 일어났고
스키피오가 지휘하는 로마군이 먼저
카르타고 군을 포위하는 성공해
스키피오가 원작자인 한 니바를 상대로
승리했어 다섯 번째 기원전 119년
중국 한나라 의 정복군주 한 무제의
흉노 원정 중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막북 전투입니다 중국 북방의
흉노족은 언제나 중국을 괴롭혔는데
이에 한나라의 7대 왕제 한 무제는
아주 작정하고 약 15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대흉 dist 원정에
나섰습니다 그중 마지막 전투가 막북
전투로 한 무죄의 흉노 원정을
수행했던 사령관은 위천 qu 그의
조카 곽거병이 있습니다 막북 전투 때
위청동 큰 활약을 했지만 곽거병은이
천리를 행군 고비 사막을 뚫고 바이카
호수까지 진격합니다 흉노족 무려 7만
명이 전사 있고 흉노족 전체가
고비사막 이북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흉노족을 고비사막 북쪽으로 쫓아냈다고
해서 막북 전투라고 부르죠 여섯 번째
기원전 31년 로마 공화적 말기
로마가 이집트를 상대로 싸운 악티움
회전입니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는 2차
3두 정치라고 해서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세 사람이 로마를
좌지우지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히데의 라이벌이었고
안토니우스 스는 이집트와 동방 속주를
다스렸는데 이때 그가 홀딱 빠져
있었던 이집트의 여성 파로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해 동방 속주의
세력을 확장했고 끝내 그리스 반도의
서쪽 끝자락 티움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 해전이 발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원로원으로
존엄한 자라는 뜻에 아우구스투스는
칭호를 얻었고 그렇게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최초의 황조를 등극하며 로마
공화정은 바야흐로 로마 제국이 됩니다
번째는 서기 208년 중국 삼국지에서
첫 번째 분수령이 되는 적벽
대전입니다 본뒤 중국 북방을 제패했던
군벌은 원소 있지만 조조가 원소와
그의 아들들까지 세력을 토벌하여 중국
북방을 차지한 뒤 이제 남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중국 남방을 차지하기
위해선 중부 지역인 형주를 장악해야
했죠 조조의 남진을 맡고자 유비 손권
연합군이 저지한 전쟁이 적벽
대전입니다 다만 적벽대전은 지나치게
신화화된 감이 있죠 조조의 패전
원인이 화공이 있다고 하지만 실적 는
화공의 효과는 미비했고 전염병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설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제갈량이 아니라
주유가 모든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여덟
번째는 서기 378 로마 제국이
게르만 족에게 완전히 압도된
기점이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입니다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 혹은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라고 부르는데이
4세기경부터 유럽 북부 지방에 있던
게르만 족이 유럽 중부 지방 더 나가
남부 지방까지 내려오는 게르만의
대이동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때로는 게르만족을 포섭해 게르만
족으로 게르만족을 방어하는 등이
우위를 확실히 점했지만 로마 제국의
발렌스 황제가 게르만족 계열에 고트
족을 진압하던 중 발칸반도에서 터키로
이어지는 아디레 아노플라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의
패전으로 로마 제국은 부활할 수 없을
정도로 쇠퇴했고 유럽 내 게르만족의
입지가 매우 높아졌죠 그리고 약
20년 후 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완전히 분열됩니다
아홉 번째는 서기 383 중국 남북조
시대의 가장 큰 전투였던 비수
대전입니다 중국은 북조의 다섯 개의
민족들이 총 16개의 나라를 세운
5호 16국 시대와 남조의 정통
한족들이 세운 국가가 이어진 남북조
시대라는 분열 시대를 겪었습니다 이때
북조의 경우 티베트 계열에 저조의
세운 전진이라는 나라가 일시적으로
통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진의 대왕제
부견은 남조지아 목적으로 383 무려
100만 대군을 동원해 남조의 국가
동 원정에 나섰습니다 이때 부견의
직속 부대가 80만 가량 됐는데 다른
부대와 긴밀한 협조가 되질 못했고 또
지휘계통이 엉망이 되는 바람에 동진의
부대 8만으로 비수는 강에서 80만
부대가 괴멸된 열 번째는 612년
고구려가 수나라의 침공을 막아냈던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 있니다 중국
수나라의 2대 황제 수양제는 이후
1차 세계대전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의
병력 113만 일 동안에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요동성 하나를 함락하지
못하죠 수양제는 우중문에게 30만
발동 대리를 주고 모든 성들을 우회해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으로 집공하는
하지만 조급한 나머지 보급 부대를
없애고 점투 부대에게 보급 임무까지
줘버린 채 미친 무게의 군장과 미친
속도의 진군로 30만 발동되는 평양성
거의 다 와서 지쳐버린 겁니다
병사들이 오면서 보급품을 전부 버려
보급도 없고 타령 병들도 워낙 많아
평양성을 공격할 수도 없었고 수나라의
우 중문은 벨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퇴하는 도중 청천강
살수에 이르렀을 때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30만 중
2700명만이 살아 돌아갔죠 번째는
732년 이슬람이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려 던 것을 저지했던 트루프
아티의 전투입니다 7세기 초 형성된
이슬람은 금세 중동 전체의 세력을
확장했고 8세기 초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는 오느 날 스페인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며 유럽
세계를 위협했습니다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십대 칼리프 히샴 시절
이베리아 반도에서이 시렌의 선맥을
넘어 유럽 내륙 지방으로 진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럽 중부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로스 마르텔리 피레네 산맥을 넘은
이슬람 군을 저지한 전투가 트루프
아티의 전투입니다 만약이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이 졌으면 지금쯤 유럽은
싹다 이슬람이 있겠죠 트루 프티의
전투의 영웅인 카를루스 마르텔의
손자가 바로 프랑크 왕국의 최대 성군
카를루스 대제 이고요 12 번째는
서기 751년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이슬람과 중국 당나라가 맞붙은
탈라스 전투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대로 7세기 초 형성된 이슬람은 금세
중동 전체의 세력을 확장했고
8세기부터 동쪽으로이 중앙 아시아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당 나라에서도 서역 원정이라 해
중앙아시아 진출을 꾀하고 있었고 양
세력이 붙은 곳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 사이의 탈라스 있습니다
탈라스 전투는 중앙아시아가 이슬하
되느냐 동양화 되느냐의 싸움이었고
당나라군 사령관은 고그의 유민
출신이었던 고선지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탈라스 전투의 승자는 이슬람이
있으며 이후 중앙아시아는 완전히
이슬람어 되었습니다 탈라스 전투 때
중국의 종이를 만드는 제재 기술이
이슬람의 전래되었고 이것이 다시
유럽으로 전파되어이 탈라스 전투는
동서 문명사 쪽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죠 13번째 1992년
십자군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 중 가장
극적이었던 야파 전투입니다 무려
11세기에 13세기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벌어졌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
사의 종교 전쟁 십자군 전쟁 1차
십자군 원정 때 크리스트 교에서
예루살렘을 타난 후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2차 작군 원정 때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끝났고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부상합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을 이끌던 지도자는 그 유명한
살라딘 스스로 술탄에 등극한 살라딘은
아이유브 왕조를 개장하고 1887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살라딘은 약
2만 명의 크리스토 균을 전멸시켜
버렸고 예루살렘 왕국을 멸망시켜
예루살렘을 빼앗았습니다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에 뺏길 수 없다며
교황청과 유럽에서는 3차십자군 원장을
감행합니다
십자군에 참여하던 유럽 연합은 비록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예병이기는 했으나
단결력이 부족해 살라딘의 적수가 되지
못했죠 그나마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만이 살라딘의 적수가 되었고 두
라이벌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이 제대로
맞붙은 전투가 야파 전투였습니다
영국의 리쳐드 스는 야파 요새를
점령하는데 이때 영국군은 겨우 80명
야파 요새를 잃은 살라딘은 6만의
병력으로 야파
타라하우스 윌스 살라딘은 서로가
서로를 뛰어난 지휘관으로 인정하고
존경했습니다 며 결국 3차십자군
전쟁의 결과 예루살렘 점령을 이슬람이
하되 크리스트 교인들의 성지 순례를
막지 않겠다는 강화를 체결합니다
14번째 1205년 징기스칸이
바야흐로 몽골 초원 지대를 통합편
냈던 차키르 마운트 전투입니다 본뒤
몽골 초원 지대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상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중
징기스칸의 부족이 점점 강해졌고
이제는 나이만 부족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의 유일한 적수이자
라이벌이었던 자무카 나이만 부족에게
합류했습니다 징기스칸의 부족이 나이만
부족과 싸운 전투가 차키르 마우트
전투였고 마지막 전투 차키르 마우트
전투에서 징기스칸은 기념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몽골 초원을 통일해
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징기스칸은
대칸의 자리에 오르고 유목 제국
대몽골 제국을 선포하자 15 번째
1241년 몽골의 바투가 담당했던
유럽 원정의 최종 전투 모희
전투입니다 바투는 징기스칸의 손자로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이었습니다
몽골 제국의 2대 대칸이 있던 오그
다이카의 조카 바투게 15만 병력을
이끌고 유럽 원정을 맡겼습니다 파트는
볼가 강을 넘어 러시아 영토로
진출하고는 러시아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우크라이나를 거쳐 폴란드
헝가리까지 진출합니다 헝가리의 구왕
벨러 사세는 소수의 기사단을 모아
모희 평원에서 격렬하게 항전 있으니이
전투가 모희 전투였습니다 모희
전투에선 몽골군 피해도 컸지만
최종적으로는 몽골의 승리였고 모이
전투 후 바투는 헝가리 전체를
약탈하고 파괴합니다 16 번째
1260년 몽골의 이집트 침공을
저지했던 아인 살루트 전투입니다 몽골
제국의 4대 대한 몽케칸 동생 훌라
에게 아랍과 중동 쪽의 원정을
지시했습니다 훌라구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 사이를 흐르는 아무다리아
강을 넘어 이란으로 진입해 이란을
휩쓸어 버렸고 당시 이슬람의 수도였던
바그다드를 점령합니다 플라그의 최종
목표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1260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그지 점령하지만 몽골에 있던 몽케
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홀라
그는 대족장 회의에 참석해야 해서
아랍 원정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집트 원정에 대한 미련이 남은
훌라구 본인만 귀국하기로 하고 부아
키트부카 이게 군대를 남겨 놓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서는
몽골군의 침공을 맡고자 약 2만 명의
맘루크 군을 팔레스타인 쪽으로
보냈습니다 팔레스타인 남부의 계곡
아인잘루트 ES 맘루크 이집트 군이
몽골군을 계곡으로 유인 후 매복 전을
펼쳐 이집트가 승리했습니다 아인잘루트
전투의 패전으로 몽골이 이집트 진출은
좌절되었고 또 아인잘루트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장소였기 상징적인
전투였고 17번째 1429년 프랑스와
영국간의 대전쟁 100년 전쟁에서
잔다르크의 데뷔전이었던 오를레앙
공방전 있니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일어난
100년 전쟁은 전체적인 양상으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영국이 우세한
형국이었다이 영국에게 점령당하고 이제
오를레앙만이 남아 있었지만 오르 레도
영국군에게 포위가 되어 함량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때 웬 꽤제제 한
16살의 시골 소녀 잔다르크가
프랑스의 국왕 샤를 7세를 찾아가
오를레앙을 지키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오를레앙을 맡겨 달라고
합니다 프랑스 병사들은 잔다르크를
성유로 믿었고 프랑스가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여겼죠 잔다르크는 화살에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깃발을 흩날리고
싸웠고 끝내 영국군의 포위를
풀어냅니다 이후 잔다르크는 영국의
빼앗긴 곳들을 전부 제 탈아 내 냈고
비록 마지막엔 샤를 7세에게 배신
당하지만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100년
전쟁은 프랑스가 승리합니다 18번째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전 있니다 오스만 제국은 튜르의
작은 지방 제후국에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현 튜르의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를 통합한 오스만 제국은 이제
그리스 반도에 있던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에서도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요새 중 하나였죠 그런
콘스탄티노플을 오스만의 7대 수탄
메흐메트 2세가 함락하였다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였습니다
메흐메트 이세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무 20번째 공격이었고 메흐메트
이세는 콘스탄티노플로 오스만의 수도로
옮겼고 이곳이 바로 현재 이스탄불
있니다 비잔티움 제국 멸망 후 로마의
수많은 학자들이 이슬람을 비해
서유럽으로 로 넘어가 르네상스의
발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19번째
1526년 인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라고 평가받는 파니파트 전투입니다
징기스칸의 후손이었다 바부르는 현
우주 베키스탄 ES 세력을 모으고
남아 아여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술탄으로 등극합니다 이후 바부르는
인도로 진출을 꾀 했는데 당연히
인도에서는이 바보르 세력을 일망
타진하기 위해 무려 10만의 병사들을
동원하였고 바보르 군대는 그래봤자
1만 명 조금 넘는 규모였으나
바부르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신식
화승총과 신식 대포를 구입하여 델리
북쪽 파니파트 ES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파니파트 전투의 승리로
바부르는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이 바로
무굴 제국이었다 그루가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20번째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가 남미를 정복했던
최초의 전투 카하마르카 전투입니다
스페인의 중남미 정복 전쟁에서는
코르테스의 중앙아메리카 정복 피사로의
남미 정복을 공식처럼 외우곤 하죠
1532년에 카하마르카 전투는
피사로의 스페인 정복군 잉카 제국군과
싸움으로 총균수 저자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스페인의 중남미 전복
전쟁에서 카하마르카 전투를 가장
중요한 전투로 꼽았습니다 페루의
카하마르카 ES 잉카 제국군
6,000명 스페인군 고작 168명이
붙었는데 잉카는 4,000명이 죽는
동안 스페인 측 전사자는 없었습니다
21번째 1571년 지중의 재해권을
이슬람의 오스만트루크 터 유럽이 다시
뺏어온 레판토 회전입니다 원래지
중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1538년 프레베 자전에서 베네치아
군을 무찌르면서 지중의 주도권을
오스만이 차지합니다 서유럽에서 오스만
투르크를 매우 위협적으로 여겼고
교황청 주도로 오스만 타도의 깃발이
오릅니다 우선 지중의 무역을 되찾기
위해 기회만 엿보던 베네치아 공화국과
교황청 주도로 동원된 스페인의 연합군
총 212차의 함대가 26살의 총사로
관 돈 후한의 지휘로 1571년
그리스의 레판토 아는 해협에서
알리파샤 지휘하던 오스만 286개의
함대와 싸워서 승리를 거둡니다
오스만의 사령관 알리 파샤는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던 중 머리에
총을 맞고 전사하자 크리스트교 연합한
데의 사령관 돈 후아는 알리 파샤의
시체를 가져다가 목을 벤 뒤 마스트의
효수하다 오스만의 사기가 뚝 떨어지고
282 show 중 230석이 피해를
입고 15,000명이 전사 있죠이
전쟁이 세계 4대 회전 중 하나로
거론되는 레판토 회전이 오스만은
레판토 해전 이후 막대한 피해를 입어
약 70년 간은 빌빌대다 22번째
1588년 영국의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붙이는 칼레 회전입니다
레판토 회전 후 스페인의 함대
아르마다 무적 함대로 불렸습니다
스페인의 구황 펠리페 2세는 신앙론
무역으로 인한 경제력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절대 왕정으로 거듭났죠이
영국에서도 신앙론 무역권 두고
스페인을 견제하고 있었으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의 독립을 도우면서
영국과 스페인의 사이가 나빠집니다
심지어 영국의 국왕 엘리자베스 윌슨은
드레이크 호킨스 등 영국의 해적들을
부추겨 스페인 상선을 공격하도록 했죠
1588년 8월 8일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진입하려 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
칼레라 곳에서 영국 함대와 조우합니다
스페인 무적 함대의 주특기가 백병전이
있기에 영국 함대는 멀찍이 거래를
두고 화포 사격으로 대응했고 또 부캐
바다의 거센 해류에 휘말려 스페인
함대 801 척이 침몰합니다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무적함대 아르마다
오는 도중에 선언 대부분이 피로와
탈수와 기아로 사망했고 암초와 돌풍에
좌초되고 난파되어 수많은 인원이
사망한채 스페인으로 돌아와 스페인의
무적함 되는 괴멸 됩니다 칼레 해전은
훗날 대형 제국으로 거듭나는 영국
역사의 첫 단계였다고 할 수 있죠
23번째 1597년 이순신의 명량
대처입니다 임지혜는 발발 후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순신 때문에 일본군의
초기 계획이 전부 무산되었습니다
중간에 휴전 협정을 하며 전쟁이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일본군은
재치에 오죠 본격적인 전투를 하기 전
일본군의 이간질과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곱지 않는 시선으로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종군 되었고 이순신을
질투하던 원균이 3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지만 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
전체를 말아먹 별 수 없이 선조는
이순신을 복직시켰다 뭐 병력이 없으니
육군에서 싸우라고 했죠 단 칠천량
해전에서 겨우 살아남은 12척의 배가
있었고 이순 씨는 한척의 배를 더
늘려 13척으로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에서 133척의 일본 수군의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 다시 전세를
유리하게 전환하였고 24번째
1600년 일본 사무라이들의 대격돌이
있던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일본은
다이묘들의 각축 전인 전국 시대
이른바 생고 구 시대를 겪었습니다
교토의 덴노와 막부의 슈구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전국 다이묘들이 세력 경쟁을
펼쳤죠 이런 생국 후 시대를 거의
끝냈던 사람이 오다노부나가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쇼군을 폐위하고
도쿠가와 어스와 함께 거대한 다이머과
싸우며 일본의 80% 통해 됐습니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암살당하자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중
한 명이었던 도트 히데요시가 재빠르게
정권을 장악하고 토쿠가와 이스의 힘을
약화시키고 일본을 통일해냅니다 다만
도요토미 히데 우씨는 임진의 란이라는
히데의 패착을 일으켰고 결국 조유미
히 씨가 죽자 일본 전국의 다이묘들의
가신들이 친 도쿠 가와파몬 아와 5로
나뉘어 붙었던 전투가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기요마사 와키자카 야사르 시마지
요시히로 등 임진 내란에 참전했던
일본군 장수들도 총 출동했고 세키
가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생고 쿠 시대를 끝내고
스스로 쇼군에 올라에도 막포 시대를
엽니다 25번째 1619년 만주의
지배권을 두고 여진족의 후음 qu
명나라가 싸운 루후 전투입니다 본디
만주 지역 에서 부족 단위로 상기에
살던 여진 족이었다이가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세력을 확장해 갔습니다
그러다 임진 해란이 터지고 명나라는
요동 병력을 조선으로 투입하자 잠깐
명나라의 시선이 조선으로가 있을 때
누루 아치가 여진족 부족 전체를
통합하고 1610년 후금이 나라를
건국한 뒤 명나라의 선전 보고합니다
명나라는 10만 병력을 모아 누루
아치를 토벌하러 갔고 이때 조선의
광해군도 울며 겨자 막기로 강홍립
원수가 이끄는 일만의 병력을
지원군으로 보내 주었죠 후금의 누루
아치는 기병대를 이끌고 요동 곳곳을
누비며 지형과 길에 대한 탁월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명나라군 네개의
부대를 차례차례 격파했고 네개의 부대
중 남로 그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전멸했습니다이 전투가 사루 전투이며
사루 전투로 명나라는 만주에 대한
지배력을 완전히 상실했어 그럼 역서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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