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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를 하는 분들을 상담을 해보게 되면
동창회 가서 했다든가
그것도 또 소문나기가 쉬우니까
이제는 온라인으로 한다든가
배우자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어? 이게 좀 다르다 하는 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심이 됐을 때 이때부터가 중요한데요.
중년의 외도는
미드웨스턴 침대신학대학원의
석좌 교수로 있는 한성열입니다.
사회는 유지가 되려면
결혼해가지고
자녀가 생산이 되는 걸로
자녀가 단지 생산이 됐다는 것과 아니라
유능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을 담당해주는 게
1차적으로 가정이잖아요.
근데 그 외도를 통해서 가정이 깨진다고 하게 되면
사회는 당연히 그 외도를 막아야 될
의무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외도를
비도덕적인 거로 정하고
가능하면 외도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다른 것으로 당연히 유도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사회는
외도를 당연히 부정적인 걸로 볼 수밖에 없죠.
중년에 바람을 피우게 되는 이유가 따로 있지요.
우리는 나이 든다고 하는 거를
어느 누구도 기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중년이라고 하는 시기는
청년을 마감하면서
원하지 않는 노년기로 가는
이런 시기란 말이에요.
그러면 가고 싶지 않은 시기를
우리가 뭘 갈 때는
가능하면 심리적으로 부인을 하고
젊었던 시절에 계속 머물고 있는
이게 당연한 인지상정이잖아요.
그러면 내가 아직까지도 젊었다 하는 거를
스스로 내가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젊었다 하는 거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일 직접적인 방법이 뭘까요?
가장 기본적인 거는
생물학적인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몸으로부터 시작을 한다는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거는
몸으로 느끼는 거죠.
그 몸으로 느끼는 거를
계속 젊다라고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아직도 젊으십니다.
아직도 매력적이십니다.
이런 얘기를 해줘야
아, 내가 아직도 젊구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데
그걸 누가 해줘야 될까요?
언뜻 보면 집에서 해주면 좋은데
집에서 해주는 사람들한테는
별로 효과가 없잖아요.
내가 측은하게 보이니까
자꾸 해주는 것 같긴 느낌도 들고
또 부부가 젊었을 때 만나서
서로 늙어간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게 또 서로 쑥스럽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외부에 있는 사람이
그걸 해줘야 되는데
외부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이성이 해줘야 됩니다.
그런데 이성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나이 또래의 이성이 서로 그러면
서로 측은해지잖아요.
젊은 이성이 이걸 해주는 게
아, 내가 옛날 같지 않다.
이렇게 우울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소위 우리가
중년의 외도의 기본적인 심리예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 외도를 하는 거는
배우자에게 불만족스럽다는 걸
깔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젊은 시절의 외도는
사실은 거의 이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중년의 외도는 일시적이에요.
그건 왜 그러냐면
가족하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은 그대로 유지를 하면서
나의 젊음을 확인해보는 과정이란 말이에요.
물론 배우자의 외도에 대해서
그걸 용서하느냐 안 하느냐
그건 다른 문제예요.
이해하고 받아줘라 저는
절대 그 얘기하는 게 아니고
중년의 외도는
자기의 젊음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바람이다.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몰래 만난다는 얘기가
그 외도를 하는 당사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걸 깔고 있는 거잖아요.
본인이 당당하면 몰래 하겠어요.
본개하고 하지.
스스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는 느끼지만
또 다른 어떤 힘에 의해서
하고 있다.
지금 이런 얘기인데
받아주는 사람들은 또 누구냐.
가장 전형적으로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직장의 남자 간부하고
젊은 여사원 이런 관계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 이유는 왜 그러냐면
이 외도한다는 중년이
인생에서는 제일 파워풀한 시대예요.
그런데 젊은 남성 혹은 젊은 여성도
자기보다 나이가 좀 많고
이미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남성이 회사의 중력이고
여성이 젊었다 그러면
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같이 자기 나이 또래의 남성하고
사랑을 나누는 건 좋은데
이때의 남성이라는 게
굉장히 가진 게 없는 남성인 소지가 많잖아요.
같은 나이 또래니까
그러면 이 남성과 내가 만나서
깊은 관계를 가진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가 굉장히 걱정되는
이러한 상황을 이제 맞이하게 되는데
이미 중년의 중력이 됐다고 하는 분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같이 있다 보면
내가 굉장히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예를 들면 20대 젊은 여성이
같은 나이 또래 데이트를 한다 그러면
기껏해야 성수동이 핫하더라
그러면 지하철 타고 가야 되는데
이 회사 중력한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아 그래?
그랬더니 어느 날 퇴근할 때니까
차가 기다리고 있다가
가서 가니까 굉장히 분위기 있는 카페인데
아무도 손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손님이 하나도 없네 그랬더니
너를 위해서 내가 오늘 준비했어
뭐 이런 감동적인 멘트가
드라마에도 나오잖아요.
이게 중년에서는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좋을 수 있겠죠.
또는 남자도 마찬가지
남자도 요새 연상 연상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왜 연상을 남자들이 요새 좋아해요?
자기보다 나이가 좀 많고
이미 사회적으로 모든 걸 갖추고 있는
대상하고의 관계를 통해서 나도
훨씬 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외도는 인류 역사상 계속 있었던 거죠.
이번에만 있는 건 아니고
조선시대 같으면 첩이 있다든가
밖에 나가서 기생이 있다든가
근데 이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장소와
이런 거는 시대에 따라 변하잖아요.
옛날에는 동창회 가서 했다든가
산악회를 했다든가 그런데
그것도 또 소문나기가 쉬우니까
이제는 온라인으로 한다든가
이렇게 다양하게 변화는 하는데
그 기본적인 심리적인 기재는 동일한 거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뭐냐면
변화가 있겠죠.
중년이 됐다라고 하는 거는
일상생활이 단조롭다는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밖에서 어떤 새로운 이성을 만났다라고 하는 거는
지금까지 있던 거하고는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날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는 뭐 부태요.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배우자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금방 어 이게 좀 다르다 하는 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럼 의심이 됐을 때 이때부터가 중요한데요.
그렇다면 내가 뭐가 돼야 되느냐
이제 이런 질문이에요.
첫째는 선생님 되는 분이 있어요.
외도가 얼마나 나쁜 건지
이걸 또 자꾸 이렇게 또 가르쳐 주려고 하는 분들이 있고
하나는 검사가 되는 분이 있어요.
불어 이제 이런 거죠.
또 판사가 되는 분이 있어요.
당시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결과는 우리는 갈라서
이거 다 아무 소용없어요.
하려고 맘먹고 이미 그런 상태에 들어갔다면
그런 거 가지고 되는 건 아니고
그나마 이거를 제일 막으려고 하게 되면
외도하는 그 마음이 왜 그런지를
알아서 그거를 채워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인정받을 수 있는 게 몸 아니고
다른 걸로도 많으면 인정받을 필요가 없지 않나요?
자기 스스로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는 거고
또 사회적으로도 이게 드러나게 되면
여러 가지 가정적으로나
본인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명성이
이룰 수 있는 위험을 뭐하러 감수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거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죠.
그러나 아까도 얘기를 했지만
제일 원초적인 방법은
생물학적으로 이성 간의 만남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부 간에도
너무나 생활의 단조로운 루틴한 거를 지속하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변화를 준다든가
또 서로 삶에 대한 걸 다시 나누어 본다든가
이런 걸로 바꾸는 게 제일 바람직하죠.
중년이 되면 성관계가 줄어들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옛날보다 힘이 딸리고
자녀도 있고 이렇게 되니까
당연히 적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성관계라는 개념 자체를 우리가 잘못 가지고 있어요.
성교를 하는 거를 성관계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성적인 욕구가 줄어드냐 아니냐 하는 거를
재는 게 뭐 한 달에 몇 번에
뭐 대체 이런 식으로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건 상당히 성적인 욕구를 만족하는 거에 대해서
잘못 오해를 하고 있는데요.
프로이트는 인간은 태어날 수부터 죽을 때까지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고
가능하면 그거를 많이 해결하려고 한다.
이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성이라고 하는 거는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우리가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 얻는
모든 일체의 만족이 다 성이에요.
나이든 성이니 이성 간의 관계를 맺는 거를
자꾸 성이라고 하는 좁은 의미로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중년이 되니까 옛날 같지 않다 그러니까
내가 정력이 없어졌다.
자꾸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이상한 약도 먹고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려고 그러고 자꾸 이런단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성적 만족을 줄 수 있는 양식인데
그중에 하나가 성적인 결합을 하는 거다라고
그것만이 성적인 거라고 해서
하루에도 몇 번 해?
뭐 이딴 소리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본인이 불행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중년이라면 중년에 닿게
예를 들면 서로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족을 한다.
이것도 다 성적인 만족을 하고 있는 거예요.
눈으로 통해서라든가
만지는 걸 통해서라든가
냄새를 맡는다든가
오감을 통해서 하는 일종의 모든 만족은
다 이게 성적인 거를 만족시키는 거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자녀를 우선 낳아야 되니까
우리 몸이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성관계를 강조하는 거로 되는 거고
중년이 됐다고 계속해서 애 낳을 거 아니잖아요.
그다음부터는 양육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돈독해지는 방법으로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면 되는데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거는
성관계라고 하는 그것만이 있는 건 아니다라는 거를
분명히 아시면 훨씬 더
내가 옛날하고는 다르게
늙었다라고 하는 이 마음에서부터
벗어나실 수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으네요.
중년의 이혼률이 굉장히 높아져요.
그런데 중년의 이혼률이 높아지는 거는
그거는 외도하고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외도도 굉장히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긴 하는데
사실은 중년의 이혼은
외도 안 한 사람들도 이혼 많이 해요.
그건 왜 그러냐면
중년은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나?
계속 이런 모습으로 살아도 되는가?
하는 자기 삶에 대해서
중간 평가를 하는 시기입니다.
살아왔던 이 삶을 계속 유지를 해갈 것인가?
아니면 이걸 바꿀 것인가?
하는 마지막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중년이에요.
그럼 왜 이때 이혼을 하게 되느냐 하면
처음 결혼할 때는
배우자가 불만족스럽긴 하더라도
미래가 있잖아요.
지금은 반지하 셋방에서 살지만
둘이 노력을 하고 아끼고
이랬다 하게 되면 조금 조금 해가지고
나중에는 우리도 번듯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다.
이런 식의 어떤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게
젊음의 특권이잖아요.
중년이라고 하는 거는
이 사람하고 노력을 해서 더 좋아질 거라고 하는
희망이 없는 시절이 중년이에요.
그러면 현재 나의 결혼 생활에 내가 불만이다
하고 난 다음에는
행복하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뭔가요?
다른 삶을 찾아가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옛날에도 다 마찬가지였는데
옛날에는 사회적으로 이혼이라고 하는 거를
굉장히 나쁜 거다라고 막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포기를 하고 그냥 살아갔던 거죠.
더더군다나 여성에게 있어서 이혼이라고 하는 거는
전세대만 하더라도 삶을 살기 어려운 조건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당연히 이제는 이혼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감정적인 친밀함이
더 중요해졌고
이걸 잘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젊었을 때부터 빨리 익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를 이야기를 드릴 수가 있겠죠.
외도를 하는 분들을 상담을 해보게 되면
하나가 배우자에 대한 분노잖아요.
나에 대한 건 어떤 느낌이 들까요?
그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기 연민.
내가 얼마나 나도 열심히 살으려고 했는데
이런 대접밖에 내가 못 봤나?
또 하나는 뭐냐면 자책이에요.
뭔가 내가 잘 못해준 게 있으니까
밖에 나가서 딴 사람을 만나겠지.
하는 이 두 가지 감정이 막 섞여 있어요.
이 외도라고 하는 거는 상담 중에서도
좋은 관계를 다시 갖게끔 하기에
조금 힘든 상담이에요.
왜냐하면 이건 대상이 있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게 뭐 네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뭐 이런 거를 논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정말 솔직하게 내가 왜 그 당시에 외도를 하게 됐었을까 하는
솔직한 그 마음이 표현이 되고
당신이 외도라는 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또 많은 아픔을 받았는가 하는
이것이 서로 공감이 돼야 돼요.
그래서 사실은 이 외도 때문에 힘든 분들에게는
두 분만이 이걸 해결하려고 하면
이건 거의 해결이 안 되고
일방적으로 화를 가라앉히고 억지로 산다든가
아니면 같은 집에서 살지만
사실은 남남으로 살고 있는 집도 많아요.
예를 들면 각각 방에서 따로 살면서
10년 동안 대화를 안 했대요.
이런 집이 의외로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따로 산다 그러면
사회적인 평판도 그렇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두려우니까
그리고 또 사실 깊은 데서는
배우자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데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서 나는 이런 분들에게는
전혀 망설이지 말고
부부 상담이나 이런 걸 좀 받아라.
좋은 상담자들이 요새는 많이 있으니까
이걸 받으셔가지고 정말 자기 속에 있는
그동안에 살아오면서 자기가 느꼈던
이러한 것들을 허신탄회하게 드러내고
그 다음에 이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건
각자 본인들이 또 알아서 해야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