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풍선 곤돌라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가려고 했던 풍선 아저씨 이야기 [사건사고]

기묘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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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아저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
1940년 일본 도쿄 피아노 조율사 집안에서 스즈키 요시 카즈가 태어납니다.
스즈키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자신만의 꿈을 펼치고자 했는데요.
그렇게 그는 젊은 시절 여러가지 사업에 손을 댔으나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죠. 결국 그는 집안 매력을 살려 자신도 음악을 어부로 삼기로 결심하고
1984년 44세라는 나이에 음악 교재 판매회사 뮤직 앙상브를 창업합니다.
기존의 곡에 편곡한 오케스트라 파트를 붙인 피아노 교재를 제작한 그는 야심차게 판매를 시작했으나 결과는 이전의 사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요.
이미 많은 빚을 쥔 상태에서 무리하여 창업을 했던 그는 20명이 넘는 채권자들의 독촉에 시달리며 어려운 나라들을 보내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스즈키는 짧은 영화 한 편을 접하게 됩니다.
1956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단편 영화 빨간풍선은 빨간색 헬륨풍선과 소년의 특별한 경험을 다룬 예술 영화였는데요.
이를 보고 강렬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 스즈키는 결심하였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나도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거야.
그렇게 스즈키는 비닐풍선 여러개를 곤둘러에 이어붙인 판타지오를 제작하게 됩니다.
비행이 없어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그는 1989년 3월부터 10월까지 개최되는 요코하마 박람회에 자신의 판타지오를 출품하는데요.
출품에만 무려 3천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3억원의 돈이 들었죠.
사업 실패로 이미 거액의 빚을 떠안고 있던 그는 또 한 번의 큰 빚을 져야 했지만
박람회 협회 측으로부터 1일 방문객 10만명 예상, 1일 매출 전망 100만엔 이상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스즈키는 출품을 결심하고 박람회 한편에 판타지오를 전시하게 되죠.
하지만 박람회는 그가 기대하고 꿈꿨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박람회가 1일 방문객으로 예상한 10만명은 고작 3만명에 그쳤고 1일 매출은 100만엔은 커녕 30만엔 전후 어떤 날은 10만엔도 나오지 않았죠.
더군다나 스즈키가 판타지오를 전시한 부스는 단체버스 주차장 바로 근처였습니다.
때문에 일반 자가용을 타고 온 승객들은 판타지오의 존재조차 모른 채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때는 여름 방학 시즌이었기에 단체버스를 이용해 박람회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고
이는 판타지오의 1일 이용객과 매출에 큰 지장을 주었죠.
이에 대해 박람회에 지속적으로 항의하고 개선을 요구했으며도 몇 달째 진전이 없자
스즈키는 박람회 마스코트 브루아짱의 인형옷을 입고 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7시간 동안 브루아짱이 되어 시의하던 그는 관계자의 신고로 결국 철탑에서 내려왔는데요.
이 항의를 통해 20미터 정도 떠오르는 체험형 공중그늘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게 된 그는
폐막하는 10월까지 운영과 매출 증진에 힘썼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고 스즈키의 뮤직 앙상블은 창업한 지 5년 만인 1990년 결국 도산해버리고 맙니다.
박람회로 인해 추가적인 빚까지 떠안게 되었던 그에게 도산은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는 결정타가 되어버리고 말았는데요.
그의 빚은 무려 5억엔, 당시 한국 돈으로 50억 원이 넘는 돈이었죠.
이때부터 스즈키는 자신을 찾아오는 채권자들을 모두 같은 말로 돌려보내기 시작합니다.
저의 판타지오로 태평양을 횡단해 모든 빚을 상환할 테니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1992년 4월 나름의 준비기간을 거친 스즈키는 도쿄의 타마가와 하천 부지에서 시범비행을 개시하기로 합니다.
손수 제작한 나무 의자에 5미터 풍선 2개, 2.5미터 풍선 2개를 붙인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을 준비했는데요.
마을의 방범대원들과 경찰관이 제자였지만 스즈키는 그들을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날아올랐죠.
그런데 고도 상승을 막기 위해 달아놓은 15킬로그램 모래주머니 2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의 곤돌라가 순식간에 급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예전 고도인 400미터에 14배에 달하는 5,600미터까지 솟아오른 스즈키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풍선줄을 하나 태웠는데요.
그렇게 5미터짜리 풍선을 끊어내고서야 간신히 정상고도로 내려온 그는 출발지점에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민가의 지붕 위에 불시착했죠.
스즈키는 왼손에 약간의 부상만 입은 채 기적적으로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전국의 그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요.
이때 한 방송사에서 그를 풍선아저씨라고 지칭하였고 이후부터 그는 이름 대신 풍선아저씨라는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죠.
그가 불시착하며 기화가 무너지고 안테나가 파손된 민가는 스즈키로부터 어떠한 변상도 사과도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미 스즈키는 다른 곳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버린 듯 했는데요.
자신의 무모함으로 인해 벌어진 사고였음에도 어쨌든 높은 고도에 도달하고 무사히 다시 돌아왔으며
이곳으로 메스컴을 타 유명세를 얻자 태평양 횡단 계획을 하루빨리 실행시키고 싶었던 것이죠.
같은 해 11월 23일 스즈키는 일본 최대 면적의 호수인 비와호에서 판타지호의 두 번째 시범비행을 하기로 합니다.
그의 비행 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후지TV의 방송팀이 비와호를 찾았으며 첫 비행 이후 생긴 그의 팬클럽도 찾아와 꽤나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요.
이날은 200미터 정도의 상승 시범이었기에 비행허가 신청은 받아놓지 않은 상태였죠.
방문한 관계자들 또한 지상에 계류로프를 연결한 채 일정 고도까지만 상승했다 내려오는 간단하고 길지 않은 비행이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의 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는데요.
그는 판타지호를 타고 미국에 간다고 대외적으로 발표를 해버리면 언론과 정부 단체들이 자신을 제재하려 들 것이고 결국엔 판타지호를 뛰어보지도 못한 채 모험이 끝나버릴 것이라 생각하였죠.
스즈키는 시범비행이라고 관계자들을 속인 뒤 바로 이날 미국으로 떠날 계획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어진 시범비행에서 120미터 상승에 성공한 스즈키는 지상에 착륙하더니 갑자기 계류로프를 해제하고 급하게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당황한 관계자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하고 묻자 그는 미국에 갑니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판타지호에 탑승해 공중으로 뛰어올렸죠.
주변에서 이를 잡고 제재하자 스즈키는 무게출을 대신에 실어두었던 소주병을 지상에 떨어뜨려 그들을 부딪혀냈습니다.
그렇게 그는 홀로 꿈꾸는 이상을 쫓아 하늘높이 떠올랐는데요.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당황한 구경꾼들은 멀어져가는 곤돌라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을 뿐.
후지TV의 방송팀은 스즈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스즈키는 예 헬륨이 조금 새고 있지만 괜찮다라고 답합니다.
이후 해가 진 뒤에는 가족들에게 1시간마다 전화를 걸어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과 비행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렸는데요.
스즈키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등 여유로운 듯 말도 하였다고 하죠.
같은 날 밤 스즈키는 걱정 말라는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됩니다.
자정이 넘어간 24일 새벽 그가 소지하고 있던 구조신호기에서 SOS신호가 발신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에 스즈키를 찾아나선 해안보안청은 수색기를 출동시켜 그의 비행경로를 추적하였죠.
그리고 25일 오전 8시 30분 미야기안 긴카산섬 동쪽 해상에서 판타지오에 탑승해 있는 스즈키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를 본 스즈키는 태연한 표정으로 수색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SOS신호를 중지했는데요.
위급상황을 잘 넘긴 것인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태평양에 진입하기 전 SOS신호를 테스트해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죠.
당시 판타지오는 3,000에서 4,000미터 고도에서 시속 70킬로미터의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수색기는 3시간 정도 곤둘라 뒤를 쫓으며 비행에 이상이 없는지 감시했는데요.
스즈키는 고도를 더 높이기 위해 곤둘라 속의 물건을 밖으로 버리는 등의 행동까지 하였고 이에 비행 계속 의사가 있다고 판단한 조종사는 추적을 중단하고 기지로 복귀했죠.
소식을 전해들은 그의 아내와 딸들 또한 벌써 미국까지 갔으려나 했는데 아직 미아견 아빠다네 하고 웃는 등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스즈키로부터는 어떠한 SOS신호도 확인되지 않았는데요.
그는 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지 않아 무전기가 없었고 휴대폰으로 연락할 수 있는 한계는 이미 넘어선 상태였죠.
일주일여가 지난 12월 2일, 그때까지도 판타지오가 어디에서도 목격되지 않자
일본 해안보안청은 판타지오가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은 미국, 캐나다, 러시아에 군안요청을 보냅니다.
스즈키는 태평양 횡단을 계획하면서 미국은 4에서 5일이면 도착한다고 주변에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요.
그는 고도 1만 미터의 제트기류를 타면 빠르면 40시간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고 자신했다고 하죠.
하지만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그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즈키와 판타지오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요.
전문가가 내놓은 스즈키의 치호는 이러했죠.
풍선은 매일 10%씩 가스가 빠져나갔을 겁니다.
혹은 기압 차이로 풍선이 팽창하여 터졌을 수도 있고요.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는 수색기에 포착된 후 빠르면 24시간, 피로도 48시간 이내 태평양으로 추락했을 거예요.
스즈키는 점점 가까워지는 압도적이고 절망적인 대향을 바라보며 결국 물에 빠져 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실제로 수색기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출발했을 때 4개였던 주력 풍선은 2개밖에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바람이 빠져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그의 가족들은 스즈키가 바다에서 표류하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말하였는데요.
스즈키는 부득이하게 물에 착수할 것을 고려하여 곤돌라를 물에 잘 뜨는 전남으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죠.
도쿄해양대학의 교수 미오시스에는 만약 그가 무사히 바다에 착수하였다면 알래스카 혹은 오오츠크의 연안에 도착하게 될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곤돌라에는 일주일치의 식량과 함께 영하 60도의 기온까지도 버텨내는 방안복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그의 생존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는데요.
하지만 스즈키는 끝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으며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죠.
많은 전문가들은 이곳이 애초에 불가능한 여정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스즈키가 비행한 거리는 대략 1600km 정도였는데요.
그가 목적지로 삼았던 미국 네바다주 샌드마운트는 비와호에서 870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죠.
그는 자신이 만든 풍선 곤돌라로 1600km를 비행하는 나름의 대기록을 세웠으면서도 그보다 7000km를 더 비행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이 빠지고 터진 풍선들을 스스로 보았음에도 구조가 아닌 비행을 선택한 것은 이미 예정된 비극이나 다름없었는데요.
이에 스즈키가 다 알고도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오오견이 넘는 어마어마한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여정을 떠났고 그렇게 자신이 예정한 대로의 결말을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였는데요.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단순한 자신감 그 이상으로 여정의 성공을 강하게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비행 경로에 대한 나름의 철저한 계산을 하고 식량이 떨어질 것을 대비한 금식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요.
산소 충전기, 경위경도 측정기, 고도계, 속도계, 구조신호기, 낙하산 등 다양한 생존 물품을 곤돌라 내부에 구비해두기도 했죠.
또한 스즈키는 평소에 자신이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 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성공하면 유명한 모험가, 실패하면 그냥 박하몬이 되는 거지.
살아있을 것이라 믿는 가족들에 의해 호죽을 유지해오던 스즈키는 2001년 2월 1일자로 실종 선고 확정, 일본 민법에 따라 실종 후 7년이 경과했음에도 발견이 되지 않아 결국 사망자로 처리되었습니다.
스즈키 그리고 판타지오는 3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무엇 하나 발견되지 않은 상태인데요.
이후 알래스카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나 확인 결과 루머로 밝혀졌죠.
남겨진 아내는 거액의 빚을 전부 떠안고서 힘들게 갚아나갔고, 2000년에는 스즈키의 일화를 담고 있는 풍선아저씨의 조율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일명 풍선아저씨 사건이라 불리며 전세계로 퍼져나간 이 일화는 현대의 돈키오테, 동심을 찾아 사라진 어른등으로 불리며 꿈을 쫓아 떠난 사나이 정도로 알려졌는데요.
그 이면에는 스즈키가 떠안고 있었던 거액의 빚, 불가능한 현실을 쫓았던 이상주의자, 남겨진 가족의 고통이 숨겨져 있죠.
다들 기억하고 계십니까?
풍선과 함께 끝나지 않은 커다란 하늘로 여행을 떠난 풍선아저씨를, 모두를 위해 광대가 된 그 사람을.
기묘한 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