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문화의 수수께끼같은 고고학적인 발견

Origins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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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이제 이집트에서 더이상 특별히 발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수십 년간 보다 최근에 들어서 이집트 문명과 관련된 더 많은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이집트에서 더 이상 특별히 발굴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수십 년간보다 최근에 들어서 이집트 문명과 관련된 더 많은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양말부터 새로운 스핑크스, 거대한 유적과 무덤은 고대 이집트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흥미로운 발견들입니다.
최근의 추가적인 발견으로 인해 그간 우리가 잘 몰랐던 문명의 수수께끼와 더 깊은 뉘앙스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사실들과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 및 새롭게 등장한 미스터리에 대한 흥미로운 단서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최근 이루어진 고대 이집트 문화의 수수께끼 같은 고고학적인 발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최근 고대 이집트 신전 유적을 발굴하던 고고학 탐사팀은 수천 년간 물속에 숨겨져 있던 사암 스핑크스 조각상을 발견했습니다.
고고학 팀은 이 조각상이 아수완 마을 근처의 콤 옴보 파라오 신전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유적지에서 지하수를 퍼 오리던 중 발견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자에 있는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스핑크스에 비해 높이가 고작 38cm 가량에 불과한 이 조각상은 오히려 미니어처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견은 고고학계를 흥분시키는데 충분했습니다.
이 조각상은 신전의 과거에 풍미를 더했으며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생생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만일 이 사암 피라미드의 외형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이 조각상의 놀랍도록 손상되지 않은 얼굴 특징을 통해 아마도 잃어버린 파라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스핑크스가 모습을 드러내기 두 달 전 같은 건물에서 푸톨렐마이오스 5세 왕의 사암 부조 두 점이 발견되었는데 남쪽에서 발견된 부조는 악어머리를 하고 있는 다산의 신 소백에게 헌정되었고 북쪽에서 발견된 것은 푸루스에게 헌정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이 소형 사암 스핑크스는 기원전 305년에서 330년에 이집트를 통치한 푸톨렐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목적과 의미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분명 중요한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스핑크스는 때로는 무덤의 수호신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실제 파라오의 얼굴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의 일부 통치자들이 사자머리를 한 태양의 여신 세크메트와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스핑크스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 사암 스핑크스가 푸톨렐마이오스 왕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원전 3100년경에 세워진 고대 이집트 도시 맨피스는 현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 미트라이나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이집트 상왕국과 하왕국을 하나의 강력한 국가로 통일한 메네스 왕의 고향이었습니다.
2018년 미트라이나에서 일하던 고고학자들은 놀라운 유적의 발굴을 통해 맨피스 시대의 주거용 건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거대한 건물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언론에 보도했습니다.
발굴팀은 고대 이집트의 주거용 건물 외에도 블록에 붙어있는 또 다른 건물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건물은 일종의 부속건물 형태였으며 그곳에는 큰 로마식 목욕탕과 종교의식을 위한 공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18년 고고학자들은 고대 이집트 사제들의 미라가 묻혀있는 2300년된 지하 묘지를 발견했습니다.
나일강 서쪽의 고대 이집트 투나 엘 개벨 유적지에서 발견된 이 공동묘지는 수많은 매장갱도가 있으며 발굴을 완전히 완료하는데 약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이집트 유물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 지하 묘지에서 다량의 도자기와 보석류 그리고 행운의 부적과 천개가 넘는 샤부티 인형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작은 샤부티 인형은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자주 발견되었으며 사후세계에서 고인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함께 매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묘지에는 인류에게 문자 기술을 가져다 준 것으로 알려진 달의 신 토트를 숭배하던 사제들의 석관이 최소 40개 이상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토트의 대제사장으로 추정되는 한 미라에는 그의 이름으로 예상되는 데후티 이르디 에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이집트 하늘의 여신 누트 모양의 청동 목걸이로 장식되어 있었고 수많은 파란색과 빨간색 구슬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관 안에서 4개의 부적을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에는 놀랍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번역되는 이집트 성형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다클레 오아시스 인근 묘지에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에서 3000년 전에 매장된 고대 이집트인 1087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최근 연구원들이 시신을 조사한 결과 6구의 유해에서 암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와 직장암에 걸린 남성, 암을 유발하는 일명 HPV라고 불리는 인유도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다른 여러 구의 유해가 포함되었습니다.
현재에 있어 암은 새로운 질병은 아니며 HPV는 종종 젊은 성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러 형태의 암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HPV는 자궁경보암과 고안암의 원인으로 확인되었으며 최초 바로는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기 훨씬 오래전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HPV는 20대와 30대의 젊은 성인에게 널리 퍼져 있었고 오아시스 공동유지를 통해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질병에 대한 유전적 특성이 명확하게 확인되진 않았지만 당시의 연령대와 뼈 병변을 통해 HPV가 고대 인류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암에 걸릴 확률은 이 사람들이 묻혔을 때인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보다 약 100배가량 더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이 암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밝혀진 그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무언가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피부괴항이나 통증과 같은 눈에 보이는 증상을 치료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고대 유물은 마치 일주일 전에 짠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있는 줄무늬로 완성된 이 양말은 한때 이집트 어린이의 것이었습니다.
이 양말은 서기 300년경에 짜여졌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종이와 피라미드 외에도 일찍부터 줄무늬 양말을 사용했나 봅니다.
이 양말은 로마시대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신성한 청년 안티노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마을인 안티노폴리스의 고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형 박물관에 있어 이 유물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이 유물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전문가들은 양말을 만드는데 사용된 염료와 직조기술을 자세히 조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용가능한 기술은 양말의 일부 또는 전체를 파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형 박물관은 2018년에야 비로소 비침습적인 이미징 도구를 개발하여 멀티스펙트럼 이미징 기술을 통해 유물의 물리적 파괴 없이 조사가 가능해졌습니다.
대형 박물관 고고학 연구원들은 최신의 스캔 기술을 통해 줄무늬의 색상이 3가지 천연 염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빨간색은 꼭두선이 풀매더에서, 파란색은 겨자과 식물인 대청을, 노란색은 풀물의 나뭇과의 웰드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스캔을 통해 당시 직물 직조에 사용된 기법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은 양말의 제조 비밀에 대한 집착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고고학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주류 문학권에서는 주로 동물 가죽을 사용하여 의복을 만들었던 것에 비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발달된 직조 기술을 통해 이와 같은 니트 양말을 발명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를 통해 그들의 의복과 직조와 관련된 기술을 더 많이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파라오가 권력을 잡기 훨씬 전인 거의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 마을이 나일삼각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마을의 연대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의 발명이나 최초의 피라미드 건설보다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약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정착지에서는 땅속 깊이 파 만든 저장고였던 사일로를 포함한 유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수의 식물과 동물뼈가 들어있었으며 이 유적을 통해 고대 이집트에서 농업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대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140km 떨어진 고고왕 유적지 텔 엘사마라에 위치한 이 마을이 왜 결국 버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미스터리가 남아있습니다.
이 마을은 분명 거의 2000년 동안 꽤 번성했던 거주지였으나 정확히 알 수 없는 파라오가 집권한 후 갑작스럽게 버려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검은 화강암 석관이 이집트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견된 이 석관의 무게가 30톤에 달했고 뚜껑을 열기 위해 이집트 군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발견 당시 학자들은 알렉산드 대왕과 같은 중요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세구의 미라가 있었으며 알 수 없는 붉은 액체가 석관 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액체는 석관의 오른쪽 균열을 통해 스며든 현대의 오펫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원들은 이 세구의 미라가 군인이라고 추측했는데 한 두개골에는 화살 상처가 있었고 엘리트 부장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시신이 젊은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군인이 아닐까 하는 가설은 무너졌습니다.
왜냐하면 왕실 지도부를 제외하면 당시 여성은 고대 이집트의 군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신은 기원전 323년에 시작된 푸톨레마이오스 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한 남성은 고대 두개골 수술인 트레판레이션을 받고도 살아남은 흔적을 보였는데
이는 이집트 미라 유적에서 부쩍 복이 드문 사례입니다.
이집트 엘캅 사막에서 발견된 비르움 티네드바 유적지는 한때 고고학적으로 공백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018년 예일대 연구진이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이곳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비르움 티네드바는 한때 사람들이 낙서, 예술, 무덤, 건축 등을 남긴 고대 중심지였습니다.
안벽과는 기원전 3300년경 상영문자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초기 이집트 벽화에 뛰어난 예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 그림은 나일강 계곡에서 발견된 그림과 유사하여 이는 어쩌면 두개의 집단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하이브리드 집단의 발견 가능성은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의 진화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나일강 계곡과 홍해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막 거주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몇개의 매장 고분을 발견했는데
그 여러 고분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젊은 이집트 여성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막 지역의 엘리트층으로 여겨지며 이 유적지가 홍해지역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홍해조개껍질과 홍혹수구술 등의 부장품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안벽화와 고분 유적지의 남쪽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후기 로마시대의 정착지가 있었습니다.
12개 이상의 유적지로 구성된 이곳은 서기 400년에서 6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유적지의 존재는 이집트 동부 사막의 유사한 고고학 유적지에 대한 증거를 보완하고 고고학 지도에서 공백이었던 부분을 메워주었습니다.
또한 인근 동부 사막에 위치한 유적지 비르움티네드바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이 지역이 로마시대 후기에서 초기 이슬람시대로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더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고대 시대에 미라를 만들었던 정확한 방법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학자들은 큰 행운을 잡았습니다.
나일강 삼각주의 사카라 묘지에서 발굴을 통해 방부 처리 작업장이 발견된 것입니다.
작업장 안에는 5구의 미라가 있었고 인접한 매장 갱도에서 35구의 미라가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갱도안의 미라들은 기원전 664년에서 404년의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미라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발굴된 증거를 통해 당시 이집트 엘리트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발굴팀을 가장 흥미롭게 만든 것은 작업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된 미라화와 관련된 도구들이었습니다.
연구원들은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신을 씻고 장기를 제거하고 소금에 40일동안 말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방부 처리에 70일 걸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라는 시신을 리넨으로 감싸기 전에 시신 전체를 오일로 처리했는데 이 사용된 오일의 종류나 양, 사용순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굴을 통해 확인된 것은 놀랍게도 작업장에서 발견된 계량컵에 수수께끼의 오일이 표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향후 화학 테스트를 통해 어떤 물질이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파악된다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미라화 과정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물이 황금의 가면이나 아름답게 그려진 벽화만 있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완전히 끔찍한 유물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학자들이 이집트 아바리스에 있는 고대 궁전의 구덩이 네 곳에서 잘리고 붙인 손유의 16개를 발견하면서 고대 이집트의 충격적인 관습에 대한 한 가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발견이 이뤄진 곳은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의 보좌실로 추정되는 곳이며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성경과의 접점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손들이 약 3600년 전에 잘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모두 오른손이었고 놀라울 정도로 큰 것으로 보아 희생자가 모두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소름끼치는 광경의 발굴은 이미 고대 이집트 상영 문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관행, 즉 귀족들이 군인들을 통해 패배한 적의 손을 사들인 다음 그 신체 부위를 사용하여 일부 의식을 치르고 매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궁전은 기원전 1650년 이집트를 침공해 짧은 기간 통치한 세머권 국가인 힉소스 왕국의 카야 왕이 소유했던 것이며 힉소스는 가나안 또는 시리아에서 유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손이 누구의 것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가장 유력한 이론은 힉소스와 전투를 벌이다 패배한 병사들에 대한 형벌로 잘린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