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인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무려 12,000년 전에 지어진 '괴베클리 테페'

리뷰엉이: Owl'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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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비디오 조회수·2024. 11. 20.
무려 12000년 전에 지어진 괴베클리 테페가 발견됐다. 이번 발견으로 고고학, 인류학계는 난리가났다. 기존의 인류학으로는 괴베클리 테페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63년 이스탄불대학, 시카고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티르키의 동남쪽 아나톨리아 지역의 한 산맥에서
유적지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고고학자들은 석조로 된 유적,
땅속에 묻혀있는 거석 윗부분을 발굴했는데
어휴, 이 동네는 무슨 경주도 아니고
뭐 대충 삽들고 파기만 하면 유적이 튀어나와
음, 아무래도 비잔틴 시대 유적 같은데
흥미롭기는 해도 특별한 유적은 아닌 듯하구만
이미 아나톨리아 반도 주변 지역에선
유적, 유물들이 워낙에 많이 나오고 있고
또 이 지역은 오랜 시간 농경지로 사용돼와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여기서 찾은 유적지의 가치가
별로 없다고 봤습니다.
그렇게 동산처럼 볼록 솟아오른 이 유적지는
배불뚜기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괴베클리테페라는 이름만 갖게 됐고
한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1994년
독일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가
괴베클리테페를 찾습니다.
음,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야
이 유적지에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
내가 한번 발굴해봐야겠어
그렇게 발굴이 진행됐는데
말도 안 되는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스톤 엔지 저리 가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유적지가 나온 거예요
자 먼저 스톤 엔지를 보죠
스톤 엔지는 높이 8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들이
지름 약 98미터의 원을 그리고 있죠
그런데 이번에 발굴한 괴베클리테페는
높이 5에서 6미터
무게 20톤의 T자형 돌들이
직경 300미터를 그리고 있었어요
이 T자형 돌들의 경우에는 머리가 더 무거우니까
이거를 똑바로 세우는 게 더 어렵겠죠
그만큼 당시 인류는
꽤나 높은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 T자형 돌들에는
뱀, 여우, 멧돼지, 독수리 등등
여러가지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해요
지금 유적이 발견된 곳은
꽤나 황량한 곳이거든요
그런데 여기 있는 돌에
여러가지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곳은 이 지역이 아주 옛날에는
물과 생명이 넘치는 숲이었다
라고 예측할 수 있겠죠
그래서 학자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지금처럼 황량하게 바뀌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이곳에서 생존하기 어려워진
후대 사람들이 이곳을 버리고 떠났을 거라고
예상되고 있죠
괴백클리테페의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부터입니다
괴백클리테페는 인류문명발달에 대한 기존 이론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자 먼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문명발달 과정을 보자구요
인간은 수력과 채집을 하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경사회가 탄생하고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 쉬운 강 근처에 모여서
정착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지도자나 우두머리가 등장하면서
정치와 종교, 의례가 발전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사회적 과정은
수백, 수천년에 걸쳐서
도시 형성, 정치 제도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인류문명 발전의 설명이죠
그런데 괴백클리테페는 이런 기존의 이론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클라소시미트 연구팀은
괴백클리테페의 연대를 추측해봤는데
그 연대가 무려
만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거든요
그러니까 구석기 시대 말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전환되기 직전 시기인 거죠
근데 이 시기 사람들은
아직 농사를 짓고 있을 때가 아니거든요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주된 생존 방식으로 삼고 있었어요
이런 시기에
농경과 정착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거대 유적지가 나왔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인 거죠
그래서 처음에 인류학자들은
농경과 정착이 우리 학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시작된 게 아닐까요?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또 아니었어요
농경의 증거나
가축을 길렀다는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농업 도구나
식물을 재배했다는 흔적도 못 찾았고 말이에요
또 여기서 동물뼈나
석기 도구를 발견하긴 했지만
이것들은 주로
사냥과 채집에 사용할 만한 도구였습니다
게다가 괴백클리테페의 구조를 보면요
사람들이 정착해서 먹고 자고 하는
정착지로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종합해보면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이동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거겠죠
아니 당체 이해가 안 가네
사람들은 아직 수렵, 채집을 하면서
여기저기 식량을 구하러 이동하면서 살았을 텐데
왜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듯한
이런 건축물을 짓는 거야?
그러니까 인류학자들이
미치고 팔짝 뛴다는 거예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러야지
정착을 하고
이런 거대 건축물을 짓는 건데
수렵, 채집하고 이동하면서 먹고 살던 사람들이
뭐하러 이렇게 거대한 걸 짓냔 말이에요
그쵸?
자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종교가
농업과 정착 생활을
촉발했다는 이론이죠
당시 유적을 발굴한 클라우스 슈미트는
이렇게 추측했습니다
유적지 안쪽을 보시면
동그랗게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기 좋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기는 정착짓보다는
신전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입니다
또 여기서 사슴이나 가잘의 뼈가 발견됐는데
이곳은 아마도
술래자들이 바친 곡물이 아닐까요?
그래서 제 생각에 이곳은
망자들의 안식처 같습니다
돌에 조각되어 있는 동물들은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게베클리테폐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아직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살던 시기
사람들은 거대 종교 건물을 만들어서
종교활동을 했다
이런 종교활동은
수렵 채집을 하던 사람들이
더 자주 모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생겨났을 것이다
결국 종교활동과
거대 토목공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농업을 시작하게 됐고
그 결과
정착생활로 전환하게 됐을 것이다
쭉
농업하고 정착생활이 먼저 탄생하고 나서
종교가 생겨난 게 아니라
종교가 먼저 탄생하고 나서
농업과 정착이 생겨났다는 가설인 거예요
이것은 우리 상식을 뒤집는
기존의 문명 발달 이론을 뒤집는
새로운 가설입니다
게베클리테폐에는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12,000년 전이면
뗀 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시대거든요
이 시대의 도구라고 해봐야
돌을 깨서 끝을 뾰족하게 만들었거나
돌 끝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것 정도예요
금속 도구는 없었다는 거죠
이런 시대에 돌을 잘라서 다듬고
거대한 석재를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게베클리테폐에 있는
거대한 T자형 석조 기둥은
높이 5미터 이상
무게는 수십 톤에 이르고
이런 돌 기둥은
200여 개나 됩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게다가 게베클리테폐는
단순 무식하게
크고 무겁기만 한 게 아니에요
게베클리테폐는
아주 섬세한 계획에 따라서
지어진 걸로 보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은
이렇게 중앙에 있는 두 개의 기둥이
정확하게 원형 구조물에서
중간 지점에 있다고 해요
또 각각의 기둥을 연결해보면
거의 정삼각형을 그리고 있다고 하죠
이곳을 짓는데
나름대로 수학과
기아학을 활용했다는 얘기입니다
또 아까 전에도 설명했지만
이 석조 기둥에는
여러 동물들이 그려져 있죠
도구가 없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예술을 표현한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겁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보통 2,30명
아무리 많아야 50명 정도로
이렇게 소규모로 모여서
여기저기 이동해가면서
수렵 채집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게베클리테폐 같이
정말 크고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려면
일단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되고
조직적인 협동도 필요하죠
만약에 이집트나 마야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농사도 짓고
정착 생활을 하고
도시화가 됐고
문명이 발달했다면
사람들을 많이 모아가지고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설명이 다 돼요
그런데 이 시기 사람들은
20에서 50명 가량이 모여서
수렵 채집을 하던 시기라서
어떻게 이런 신전을 지을 수 있었는지
설명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고학자들, 인류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냈습니다
게베클리테폐를 만들던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했을 겁니다
다만
게베클리테폐를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다 함께 모이고
협력할 수 있는
그런 독특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게베클리테폐의 발견은
뗀석기 시대 사회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는 중요한 발견입니다
그 당시 인류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력
사회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걸 뜻하거든요
그런데
기원전 8000년 전쯤
마치 누군가가
이곳을 의도적으로 감추기라도 한 듯
흙과 돌로 깨끗하게 묻어놓은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학자들은 도대체 누가
왜 이곳을 다시 묻어버렸는지
여러 가지 가설을 냈죠
첫 번째 가설은
기우나 환경 변화 때문에
이 지역이 불안정해졌고
사람들은 이를 피해서
구조물을 묻고
떠났다는 가설입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 산사태, 모래바람 등 때문에
자연적으로 덮였다는 설명이죠
그런데 이 설명이 맞으려면
사람들은 이곳을 그대로 두고 떠나야 맞죠
굳이 이곳을 정성스럽게
다시 메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조사 결과
일부 기둥 사이에서는
작은 돌, 토양들이 채워져 있었고
이것은 자연적인 매몰보다
인위적인 매몰의 흔적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곳을 메운 게 아니냐
라는 의견이 더 큽니다
두 번째 가설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믿음이나
어떤 의뢰 때문에
괴베클리 테페를 의도적으로
매장했다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이렇게 힘들게 만든 성소를
왜 다시 묻어버렸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전혀 없고
증거조차 없습니다
세 번째 가설은
전쟁이나 천재지병 같은
외부 위협이 생겨서
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이곳을 덮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기둥 위에다가
보호용 구조물을 더한다든가
주변에 다른 방어 시설의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네 번째 가설
괴베클리 테페가 처음에는
성소였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른 용도로 바뀌면서
묻어버리게 됐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증거는 없고
또 만약에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다면
굳이 묻어버릴 게 아니라
새로 짓는 게 더 빨랐을 거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자 그래서
괴베클리 테페는
의도적으로 매장된 건지
자연적으로 묻힌 건지
또 누군가가
다만 최근에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곳을 매장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이
훨씬 더 크다고 해요
괴베클리 테페에서
38km 떨어진 곳
이곳에서는
카라한 테페도 발견됐습니다
이곳은 괴베클리 테페보다
더 큰 규모의 유적지입니다
T자형 기둥은
250개나 발견됐고
신전도 더 거대하죠
괴베클리 테페
카라한 테페뿐만이 아닙니다
그냥 이 지역 주변 전체가
땅을 파기만 하면
유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고고학자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유적지일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데 12,000년 전
이 신전을 지은 사람들은
그 어떤 역사적 기록도 없이
호련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남아있는 문자도 전혀 없고요
그래서 한간에는
인류 최초의 문명 훨씬 이전에
아주 먼 옛날에
오래된 문명이 있었던 것 아니냐
하는
초고대 문명설
인류 리셋설 등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뭐 이런 썰들이
한번 보면 재밌긴 하지만
전혀 과학적인 근거는 없으니까
재미로만 보도록 하세요
자 그럼 오늘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리뷰였고요
오늘의 영화 리뷰 재밌게 보셨다면
추억의 인디아나 존스
다시 한번 봐보는 게 어떨까요
그럼 지금까지
리뷰형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