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은 어쩌다 조선족이 지배하게 되었나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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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조선족 #서울 #당몰이 #당신이몰랐던이야기
참고 및 출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82512321770011)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1784812
https://guro.grandculture.net/guro/dir/GC03001668?category=%ED%91%9C%EC%A0%9C%EC%96%B4&depth=3&name=%EC%82%AC&search=%EC%82%AC&type=titleKor
https://www.ok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25
http://www.dailyan.com/news/article.html?no=34109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A1%B1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609127412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6698
https://n-view.kr/n-now/culture/5512/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지역 스페셜 국내 최대의 조선족
밑집 지역 대림동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서울에서 자취방 을 구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컨디션에 적당한 위치를
갖춘 방을 구하려다가 뭐 하나쯤은 포기해보신 경험이 있으실듯 합니다.
가격이 적당하면 컨디션이 나쁘고 컨디션이 괜찮으면 가격이 나쁘고
둘 다 좋으면 위치가 나쁜 곳이 태반이니까요.
참고로 저는 위치를 포기하는 편입니다.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돈이 너무 없어서 최대한 저렴한
곳을 찾다가 신대방역 반지하에 살았는데 아직도 기억나는게 서울이
아니라 중국에 온 줄 알았죠.
앞에 시장에 가면 절반 이상이 중국어 고 밥 먹으러 가도 중국인이 엄청
많았거든요.
중국어로 된 환전소 같이 보이는 곳이랑 중국음식 파는 곳도 엄청
많았습니다.
이때 강남에 있는 음식점에서 요리 하는 알바를 했는데 일이 좀 늦게
끝나고 집에 올 때면 빨간 간판이 길을 밝혀서 솔직히 좀 쫄렸죠
아 그리고 웬만하면 반지하는 좀 피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제가 3-4년 정도 살았는데 사람이 좀 피폐해지더라고요.
빚도 안들어오고 동네가 그래서 그런지 이상한 일도 꽤 많았죠.
잡소리가 길었는데 그래도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사람이 살만한 곳을
찾다보면 자연스레 애초에 월세 시세가 낮은 동네로 눈에 돌리게
되는데 이때 딱 눈에 띄는 동네가 바로 오늘 영상의 주제 대림동입니다.
대림동은 서울특별시 남서부의 영등포구에 위치한 동네로 2호선과
7호선 대림력이 있는 환승역 주거지임에도 불구하고 월세가 가장 저렴한
지역으로 알려져있죠.
실제로 부동산중개어플에 들어가 보면 다른 동네에 비해서 대림동
이 유독 월세가 저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격대비 방컨디션도 크게 나쁘지 않아 보이죠.
역과 가까운데 월세도 비교적 저렴하고 방컨디션도 그럭저럭 괜찮다.
상당히 유혹적이지만 뭔가 본능 적으로 꺼림칙한 기분이 들죠.
세상에 이유없이 싼건 없는 법이니까요.
많이들 아시겠지만 대림동이 서울의 다 동네에 비해 월세가 저렴한 편
인 이유는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 이 자자하기 때문입니다.
치안이 나쁘다고 소문난 이유는 바로 대림동이 대한민국 최대의
조선중 밀집지역이기 때문이구요 .
2017년에 흥행에 성공한 두 영화 청년 경찰과 범죄도시의 배경이
모두 대림동인데 현재 실제 대림동 이 영화속 대림동이 묘사만큼 살벌
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죠.
일단 대림동의 분위기는 한국보다는 중국에 훨씬 가깝습니다.
대림동에 처음 가본 분들은 우선 중국인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점에 깜짝 놀라곤 하죠.
엄밀히 말하자면 중국인보다는 중국 국적의 동포인 조선족이 많은
것이지만 무엇이 됐든 대림에 가면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방에서 중국어가 들려 옵니다.
대림시장은 아예 중국시장으로 보일 만큼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중국 과일들과 식자재 요리들이 줄을 이루고 주변을 둘러보면 죄다
중국어 간판들 뿐이죠.
한국어가 아예 불가능한 중국인 점원들도 꽤 많구요.
오버존 보태면 사실상 대림동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차이나 타운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대림에는 정확히 얼마나 많은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을까요
2022년 기준 서울시에 거소신고 한 중국 동포는 10만 5931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70%에 달하는 7만 3877명이 구로영등포 금천 관악구
에 걸친 서울 서남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림동 내 체류 중국 국적자는 1만 1188명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대림동 전체 인구 중 24.1%에 해당하며 서울시 평균 외국인 비율
에 1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심지어 대림 2동의 경우 2022년 기준 전체 인구가 1만 9571명으로 집계
되는데 이 중 66%인 1만 2926명이 외국인 주민입니다.
그리고 이 외국인 주민의 90%가 중국 국적자이죠.
대림동이 조선족에게 점령당했다는 표현이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그리고 이건 공식통계일 뿐 불법 체류자들까지 더한다고 생각해보면
단적인 예로 2018년 대림동에 있는 대동초등학교의 신입생 전원이 중국기
였습니다.
한국인이 한명도 없었죠 심지어 전국의 초등학교 한국인
신입생은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대림동 대동초등학교는 당시 기준
전년 대비 신입생이 2배로 늘었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죠 왜 그리고 언제부터 조선족은 대림동에 모여
살기 시작한 걸까요 그리고 왜 하필 대림동이었을까요
대림동은 사실 구한말까지 경기도 시흥군 상분면 원지몽리로 불렸습니다.
그러다 1914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경기도 시흥군 분면 도림리가 되었
다가 1949년이 되어서야 서울시에 편입되었죠.
1955년경에는 대방동의 대와 도림동 의 림을 따서 비로소 대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이 원래 도림천 주변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도림이라는
이름을 살리면서 동시에 대방동과 연결되는 지역
이때까지만 해도 대림은 농밭과 공장 군부대가 혼재된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965년 한일국교수립이 성사 하되면서 구로동에 한국 최초의
수출공단인 구로공단이 조성되었 죠.
구로공단은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하며 한국
경제발전에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당연히 일자리도 늘어났고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구로공단에서
일하기 위해 서울로 정확히는 구로공단 인근 지역인 가리봉동과 대림동
으로 모여들게 되었죠.
당시 젊은 노동자들은 구로공단 까지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동네
에서 거주하길 바랬기 때문에 두 지역에 대한 주거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덕분에 농밭으로 이루어져 있던 변두리 지역인 대림은 1970년대부터
주거지로 개발되기 시작했죠.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에 집중적으로 개발되며
지금과 비슷한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참고로 대림에서도 조선족이 유독 많은 대림이동은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바로 아파트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대림이동은 대부분이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빌라 등 저층 주거지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뭐 엄청난 이유가 숨겨져 있다기 보다는 그냥 1990년대 이후로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죠.
이렇게 1980년대에는 대규모 주거지 개발이 본격화되는 동시에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어 대림역이 생겨나면서 대림동은 구로공단과 가깝고 교통
까지 편리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또 애초에 주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주거수요 때문에 개발된 동네이므로
반지하빵이나 옥탑빵 같은 저렴한 주거공간 역시 많았고요.
동시에 약간 슬픈 동네이기도 합니다.
한국산업파의 산실이라고 불렸던 구로공단에 도시로 가서 성공하겠다
는 혹은 새로운 시작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상경해 저렴한 곳을 찾아간
곳이 대림동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로 방들이 빽빽하게 붙어있는 닭장
집은 구로공단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같은 존재이기도 하죠.
공순이라 불렸던 구로공단 여공 들의 애완이 담긴 곳이기도 하고
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경제성장 이면에 있는 이들의 애완
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죠 .
하지만 대림동에 조선족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좀 더 나중에 일입니다.
애초에 빈집이 거의 없었는데 조선 족들이 들어올 곳도 없었고요.
199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이 두드러 지면서 구로공단으로 만들어진
집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기 시작 했습니다.
1982년에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 에 따라서 도시공예를 유발하는
제조업을 수도권 외곽지역으로 이전 하는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
되기 시작했거든요.
이때 갯벌과 염전이 주된 산업이었던 시화와 지금의 안산시 당시 반월
일대의 대규모의 공단이 들어섭니다.
1987년 반월공단이 조성되면서 구로 공단에 있던 제조업은 전부 반월
과 시화공단으로 이주했고 대림과 가리봉동 일대가 텅텅 비기 시작
했죠.
하지만 이때도 조선족이 바로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들어오기 쉬운 곳이 아니었거든요.
동시에 잘 산다고 알려지지도 않았 고요.
그럼 조선족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해방 이후 한국은 중국의 공산정권 이 들어서면서 무역과 교류를 사실상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들어왔던 화교들은 이미 꽤 큰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1961년 외국인 토지소유금지법으로 화교는 정부 승인을 받아야만 토지
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화교들의 세는 줄어들었죠.
특히 1970년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이 제정되며 화교들은
1가구 1주택 1전포만 허용되고 주택 은 200평이하 전포는 50평 이하로
제한되면서 세가 더 약해졌습니다.
논밭 임야 취득은 불가능해졌고 취득한 토지와 건물은 임대도 불가능
해졌죠.
한국에 있던 화교들은 미국과 호주 대만으로 이주했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 중국 음식점은 4분의 1로 감소했고 1970년대 말에는
10만명이던 화교의 수는 2만명으로 줄어들었죠.
그러다 1992년 한중 수교를 기점 으로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전까지는 서로 교류관계가 없 던 한중은 덩샤오픙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적극적으로 서방과의 관계 개선과 외자 유치를 꾀하면서
한국의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기에 동시에 한국도 새로운 수출지와
값싼 수입국이 필요한 시점이었 기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한중 수교가 맺어졌죠.
앞에서 구로공단의 세태로 대림과 가리붕동이 텅 비계된거 기억나실
겁니다.
한중 수교 시기와 구로공단 세태 가 비슷하죠.
연변에 살던 조선족들은 한중 수교를 계기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산분당 등 신도시 개발로 인해 건설인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노동력
수요가 급증한 점도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이주한 이유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당시 서울의 부동산 시세 는 조선족들에게 큰 부담이었죠.
저렴한데다 도심에 있다는 특징 을 가진 대림과 가리붕동은 유입
되는 조선족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연변에서 건너온 조선족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반값이 저렴했던 가리붕동이었 죠.
1990년대 이후 가리붕동에는 연변 지명을 상호로 하는 식당과 식품점
노래방 등이 생겨나게 되었고 얼마 안가 연변 조선족 마을이라는 별명
까지 붙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못했 죠.
구로공단은 1996년 7월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제조 외에도 다른 업종 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들어올
수 있게 되면서 사무실만 있으면 되는 it 업종이 많이 들어서게 됩니다.
지금 구로 디지털 단지가 된 이유 이죠.
이에 따라 가리붕동은 가산동으로 변했습니다.
정확히는 옛 가리붕동의 대부분 은 가산동이 되었고 가리붕동은
현재도 있기는 하죠.
그리고 앞에서 나왔던 닭장집 혹은 벌집이라고 불리는 집들도 싹
아파트 단지가 되거나 대부분은 4 5층 정도 되는 오피스텔 다세대
주택으로 변했습니다.
당연히 집값도 올라갔고 월세도 올랐죠.
아니 대림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가리붕동이란 구로 이야기만 나오냐
이제 나옵니다.
가리붕동 즉 가산이 비싸지면서 조선족과 화교들이 상대적으로
개발이 미흡한 대림으로 특히 대림 2동으로 대거 이주했거든요.
또한 당시까지만 해도 가리붕동 에 거주하던 수많은 조선족들이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는데 2004년에는 고용허가지 시행을 앞두고
미등록 노동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조선족들 사이에서는 이래저래
불안감이 조성되었습니다.
단체로 이주했던 만큼 좀 혼란스럽 기도 했고 숨어들기에도 좋았죠
.
2000년대 중반부터 이뤄진 조선족 이주로 인해 순식간에 대림역 주변과
대림 중앙시장은 사실상 차이나 타운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한국은 불법을 저지르면 돈이 되는
바닥이라는 뜻이기도 하기에 조선족 범죄자들도 몰려들기 시작했고요
실제로 범죄도시 1탄도 지금의 대림이 아닌 2004년의 대림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2010년대에 들어서 대림동은 특히 대림 2동을 중심으로 중국 관련
상권이 급속도로 확정되었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조선족들이 대림으로
몰리면서 대림동은 서울 최대의 중국 동포 밀집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음식을 찾기 힘들 정도로 조선족 화교들이 점령
한 동네가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그럼 대림동은 진짜 위험할까요
답은 과거에는 맞지만 현재는 아니다 입니다.
뭐 조선족들이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것은 사실
이나 현재 대림은 그렇게 위험한 지역이 아닙니다.
강력범죄를 포함한 범죄수치를 봐도 대림은 상위권에 속하지 못하죠.
오히려 살인같은 강력범죄는 강남 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요.
지금 대림에 사는 중국인들 대부분 은 시민의식이 좀 부족할 뿐 한국의
합법적으로 돈 벌러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애초에 서울 한복판인데 치안이 그렇게 안좋으면 놔둘리도 없고요
그리고 가보시면 요즘은 한국인도 많습니다.
중국음식 특히 마라탕이 뜨면서 먹으러 오는 사람도 많아졌더라고요
현재 대림동에 사는 조선족 사람들의 최대 목표는 법적지휘와 체류 보장
입니다.
범죄가 터지면 터질수록 인식이 안좋아지면 질수록 목표와는 더
멀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하죠.
지역스페셜 대림에 대한 이야기 이번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