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식 강사의 미술로 보는 동양사 강좌 5강 | 청동농경문과 암각화가 알려주는 초기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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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동기 시대는 그보다 앞선
신석기 시대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라는
것도 하나의 그 관심의
대상인데요 그것을 풀어 줄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바로이
유물입니다
남상근 발견된이 비파형 청동검이
있는데이 비파형 청동검은 다른 검과
달리이 손잡이 부분에 한쪽은 여성
한쪽은 남성 이렇게 분명히 남성의
상징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성의 상징이
있고 이렇게 묘사가 되 있는데 재미난
것은 여성은 가슴을 자 형상으로
이렇게 가리고 있다는 거예요 근데이
자 형상의 상징이 놀랍게 우리의 그
청진 농포동
나온이 토를 보면은 정확하게 자형으로
가리고 있어요 그러면 히 고조선
지역이라고 표현되는 어 만주의 남상근
지역에서 나온이 비파형 청동검이
여성의이 가슴 가리는 자 형상의
전통은 그보다 앞선 신석기 시대의
농포동 토우랑 정확하게 맥락을 같이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거를
통해서 뭘 알 수 있냐면 어
미술사적인 어떤 그 표현은 단순히적인
어떤 그 결과물로서 표현되기도 하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시열 관계를 논해
보자면 일정한 문화적인 어떤 행태를
또다르게 표현해 주는 그 문화
매개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형 지역에서
나온이 인면
식인데요 식을 보면은 인면이 두상이
마치 오각형 형태로 방사상의 어떤
그이 선이 표현돼 있다라는 거예요
이것이 과연 의미하는게 뭐냐라는 것죠
그 같은 지역에서 나온 비파형
동검과이 동경 그리고 선형
그러면이 오각형 방향으로
방사선이 그 형성이 된이 인면 표식을
보면은 머리 위에 있는 L1 L2
l3 l4 l5 아지의이
길이랑이 목을 목 길이에 해당되는
l6l 비교할
때 그 비율이 1대
1.73 비율로 확인하다
거죠 이것은 어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것이 그 하나의 또 관점이 될
텐데요 그 단정할 수 없지만이 인면
식을 그 그 만들 때에이 사람은
신성한 사람이기 때문에 빗줄기가
사방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표현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이 신성한 사람을 마치
대리에서 탈
또는 죽은 어르신으로 추정이 가능한
그런
인물처럼이
면상도 얼굴만 이렇게 표현해 놨고 그
대신이 사람이 존귀한 것은 뻗어가는
빗줄기와 같은 형상으로 표현한게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외곽의
형성이 된이 라인이 어째서 완벽한
타원이
아니라 마치 맑은 모양이냐 아는
거죠이 문제에 대해서 저는 우리가
익게 알고 있는 만이상 참성단을
고민해
봤어요 많은 분들이 만산
참성단을 상부는 방단이고 하부는
원단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거는
굉장히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봅니다
제가 분명히 그 관련된 기간으로부터
조사 보고서를 통해서 거듭 확인한
결과 우리가 방단 알고 있는이
사각형의 네모꼴
재단은 등변이 아닙니다 지금 뭐냐면
이쪽에 있는 변의 길이와 이쪽에 있는
변의 길이가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지금 뭐냐면 바깥쪽에 있는 변이 더
길어요 결국은 이것은 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 꼴이라는 겁니다
사다리 꼴이에요 그리고 그 아래에
놓여
있는이 그 둥구 만이 둥근 모양의
재단도 원형이 아니라 타원이
거죠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왜 중요하느냐
오늘날 그 전방 후원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것이
나오면은 일본의
때문에 굉장히 긴장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근데
전방후원분이 정확하게 말하면은
앞부분은 그 네모 치가 않아요
평행사변형으로 돼 있고 뒷부분은 약간
길쭉합니다 원형 완벽한 원형이
아니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전제 후라는
거죠 전방 후원이 아니라 전재
사다리꼴 모양의 후타 뒤에는 원형이
아니라 타원이 아는
거예요이 전제
후타에이
건축 평면 구성은 일본이 뿌리가
아니라 우리 한국이라는 거예요
한국 그러면 왜 이렇게 타원을
중시했다 삼성단지 뒤에가 타원이
이것도 인면 회식에서의이 외곽 라인도
원이라는 거예요
이건
왜일까 저는 남와집이라고 하는 그
조선시대 후기의 그 글을 어 보면서
많은 걸 느꼈는데요 아 거기 남아
집에 뭐라고 써 있냐면 강화도
참성단은 보본 의식으로
만들었다라는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근본에 보답한다는 그 보본 있니다
갚을 보자에 근본 보자를 쓰고
있어요 근데 그 보에서의
본은 사실은 어머니랑 저는 연관됐다고
봐요 그러기 때문에 그 고려 시대
때에 그 묘청이 사람이
대화궁지고 성당이라는 것을 졌는데
성당에 분명히 모셔진 한 분이
누구냐면 두학 처녀인데 두학 처녀에서
두학이라는 것이 그 머리상 머리상 그
두학기 강하도 갑비 그차의 마니산이
거예요 그 마니산에 모셔져 있는 두학
천녀가
누구냐 웅녀는
거예요 그
웅녀
상징한다면 여기서이 타원이 무엇을
뜻하는가 단정할 순 없지만 여성과
연관된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즉이
그것은 여성의 자궁을 의미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이 대응자 나온 인면 표식은 왜
그러면 이렇게 그러면 자궁 모양의 그
테두리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고
반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럼 왜
자궁을 연상시키는 그런 그 태두 이중
라인에 왜 있을까 이것은 뭔가 그
모성에 대한 강한 어떤 그
소중함을 반영한 미술적 표현일 수
있다 아까 남상근 유적에서 한쪽에
손잡이에는 십자 모양의 여성이 분명히
그려져 있었고 그 여성의 아래에는
여성의 상징이 분명히 묘사돼 있어요
반대편은 남성인데 남성의 상징이
분명히 묘사돼 있어요 그 칼자루에 새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이겁니다 남성과
여성이
하나가 되는 그러한
삶을 그 심리 상태를 표현한게 아닌가
그러면 이러한 상태가 돌연한 거냐
도하진
않아요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 왕검
조선조 즉 고조선 조에 보면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이해가 될 법한
환웅과
지상세계의
동물의 동물로 상징하는 세력의 한
우두머리로 지칭되는 여성이
결합하습니까 한 신성한 남자와 한
지상의 신성한 여자가 결합을
하습니까 그거나 아 그거나이 마니산의
참성단이 한쪽은 남성성이 한쪽은
여성성이라는 어떤 그 관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명 인면 청동 식은
가운데 인면을 마치 무슨 과일의
테두리처럼 둥그스름하게 구획한 테레
안에 지되
있다 둘레를 둘러싸고 모두 여섯 개의
공이 이루어져 마치 고대 시기에
출연한 불상의 두 강에서 나오는 빛발
연상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런 걸
길이라 하죠 우길 그니까 우길의
표현이 일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면 식을 통해서 신성한
사람의 머리에 사방으로 방사되는이
줄기는 본만 갖는 미술적 표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해당 인면 표식이
지닌 용도와 기능을 전혀 알 수는
없으나 인면의 주변이 빗발과 같은
방사상의 조 조형을 이루고 있는
점으로 보아 마치 태양과 같은
신성성을 반영한 조형물로 이해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럼 그 자체가 뭐냐면 빗발과
같이 그 화려한 어떤 그런 것을
나타내는 그 신성한 그 사람 그리고
바깥에는 여성을 상징한 그것이라면 그
자체도 신성한 남성성과 신성한
여성성이
미술적으로 상징화된 결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중국
요영 지방에서 나온 부여인이 만든
청동 도끼 거프 집인데 여기서이 두
사람이 새겨져 있어요 두 사람이
새겨져
있는데이 두 사람은 다른 또 다른
지역에서 그 발견이 된 이 인면
상하고 유사성이
있습니다이 임면 상의 특징은 상부에
두툼한 상투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부여 시대에도 이미 우리 민족은
상투를 했다라는 거를 알 수가 있고요
그리고 이러한 청동기 시대에 우리의
그 청동기 문화는 BC 10세기를
전후하여 굉장히 왕성한 발전을
이었다라고 볼 수가 있는데요 어
그러한 사례로 로서 평안 상원 장리
고인돌에서이 두 사람이 서로
업계를 그 같이 하면서 둥근 공과
같은 형상에 올라타면서 재주를 부리는
그런 모습이 확인이 됩니다 이건 역시
두 사람이 맞자이 되어서 뭔가를
함께하는
응 뭔가 조화 조화와 균제미 역시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왜 이것을
다름 아닌 고인돌에
넣었을까 이것은 그 고인돌에 묻힌
사람이 이러한 기회와 연관된 재주꾼이
있던지 아니면 그러한 재주꾼 그
관할하는 관료였던 그건 모르겠으나이
고인돌에서 이러한 어 재미난 어떤
형상의 금속 그 미술품이 나왔다는
것은 고조선 사회가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명했고 그리고 제주를 귀히 여기는 어
어떤 제주를 소중하게 여겨서
사회적으로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도 역시이
청동기 시대에는 왕성한 문화적인 어떤
그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은이
밀집된이
대형의이 주거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듯이 무덤이 직선상으로 이어져 있어요
이것은 굉장히 인구 밀도가 많아졌고
그리고 일정한 진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이
한국에서 빚어진 어떤 그 고조선을
특징으로 하는이 청동기
사회에는 분명히 농경이 하는 생업
체계가 보편화 됐음을 알 수가
있는데요이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됐다고
알려져 있는이 농경문 청동기를 보면은
아까 그 부여에서 인면식이 구멍이
여섯 개 뚫린 거랑 똑같이 여섯 개의
구멍이 뚫려져
있어요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깃털을
꽂고 있고 밭과 같은 것 경작하고
있는데이 사람은 그 그릇 같은
데에다가 뭔가를 놓고 있죠 근데 많은
분들이 이거에 대한 해석은 안 하고
있어요 전 가운데 있는 이것이 너무
소중하다고
봐요 그 이유는 그 이유는 가운데
중심 축사에 수직의 형태로 있다라는
거죠 이것이 수직으로 있기 때문에
저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르네 위그가 말한 그 당시 청동기
인의 심리적 고이
있고요 이것은 중국에서 국에서 향로로
뭔가를 만들었을 때 대가 대남로 되어
있는 것을 연상을
시킵니다이 가운데 그 우리 농경문
청동기를 보면은 가운데 수직으로 되어
있는 것도 마치
대나무의 그 한 마디처럼
가운데가 들어가
있어요 근데이 처럼 생긴 이것이 무슨
도냐
이거죠
저는 그 뭔가를 담기 하는 그릇이
이것과
결합해서 이런 받침들 어떤 기능을 한
건 아닌가
그러면은 제가 아까
나아리 한 사람은 여자로 추측이 되고
한 사람은 남자로 추측이
되는데 여자는 아궁이 같은 곳을
향해서 들
불기운을 버 북고 있고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은 돌에다 뭔가를 만드는
모습이 짝 파트너가 돼서 뭔가를 그
음식을 조리하는데 그 조리할 것을
받침들 형상이 되는 거기다 얹 수
있겠다라고 제가 추천을 했잖습니까
그 얹 수 있는 것을 그 그런
봉침이 자면 가운데 있는 것은 혹시
봉헌 받침들이
아닌가 왜 봉헌 받침들이 왜 중요할
것인가 이것은 농경문 청동기의 앞면과
뒷면에 공통적으로이 수직의 형상이
똑같이 가운데 있어요 한쪽에만
있으면은 그런가보다 할 텐데 앞면에도
이게 있고 뒷면에도 가운데 딱 있다는
거죠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표현한 거죠 당연히
그 시대를 살던 구획된 공간 내에
동네가 됐던 거울이 됐던 일정한
영역의
중심에 수직으로 된 봉헌 때를 만든
거죠 진언 때를 만든 거죠 누구를
위해서 진언한 봉헌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정하게 경외하고 하는 대상
이것이 뭐 하늘님이 됐든 뭐가 됐든
알 수가 없어요 바람인지 님인지 알
수 없지만은 그들이 일정하게 경외하고
하는 그 대상에게 무언가을 바쳐서
그들의 경외심을 표현자 한 일종의
공양 받침들 저는 이해가 된다
이겁니다 근데 더 재미난 것은 칠포리
암각화에 바로 이런 형상이 있다는
거죠 이것은 아까 나아리 있는 그
진원 때랑 형상적으로 유사해요 그리고
더 재밌는 건 가운데 이렇게 움푹
패어 있어요 이렇게
응 의도적으로 이렇게 파 놨어
어 이것이 마치 뭔가가 쏙 들어가면
딱 맞게끔 이렇게 파 놨다
이거죠 이게 뭐냐 이거죠 여기도 보면
똑같이 돼 있죠 이렇게
응 이렇게 평평한 곳에도 이렇게 돼
있고
이거는 벽처럼 세워 있는 암각
하거든요 누워 있는거나 세워 있는거나
이렇게 뭔가가 마치 그 어떤 타조
알처럼 길쭉한 것이 쏙 들어가게
상했다 이거죠 이게 뭐냐 이게
도체 자연적으로 저는 빗살머니 토기와
같이 뾰족한 뭔가가 결합일 때 딱
맞다고
저는 추정이
되더라고요 제 추정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만약 이런 것이 칠포리
암각화에 이것이 역시 어떤 경외하고
하는 대상 대상에게 하려는 뭔가를
안착시키는
침로
됐더라면 농경문 청독이 앞면과 뒷면에
있는
수직의이
형상도 뭔가를 올려놓는 받침들
가능성이 저는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많은 우리나라의 그이
너럭바위이 형태가 됐든 뭐가 됐든
일정한
그 평평한 어떤 그 형상에 바이 도에
무수하게 패어 있는 이름바 성혈 이걸
알구이
하는데이 성혈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뭐냐면 이러한 성열이 있을 때 많은
연구자들은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뭐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해서 뭐
북두칠성이야기 어 요건 뭐 삼태성이고
그렇게 해서 안 맞춰질게 없어요 거의
다
근데 과연 이러한 그 청동기 시대
때에 이러한 성열이 과연 그
정도였을까 저는 관점을 달리해서 아까
칠포리의
암각화에 운복 폐어 있는 것이 뭔가를
경외하고 하는 대상에게 뭔가를 그
드리고자 하는 그 봉헌의 어떤
받침들 의미로 해석한 것 해석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씀 드린
것처럼 정 전 개정동 출토 그 농경문
청동기의 안면과 뒷면에 가운데
정확하게 똑같이 있는 그 대나무 대쪽
모양처럼 가운데가 들어가 있는 그
수직의 어떤 그런 그 형상처럼
이런 알금 성 성열이 어져 있는
이러한
바에도 뭔가 어떤 그 존귀한 대상에게
존귀한 대상이 하늘의 햇빛인지
바람인지 구름인지 알 수 없으나 뭔가
존귀하게 여겨져서 경외할 그 대상에게
뭔가를 올 올려주기 주고 간절한
마음을 빌기 위한 어떤 받침 들로서
이런 바이 바위돌이 적용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1강에서 2강까지
미술로보는
동양사를 그
진행했는데요 마음 상부터 저 좀 더
어 세심한 기획과 자료로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 들어 주셔서
[음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