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후의 왕조는 어떻게 무너졌을까?, 이란의 역사 총정리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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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역사 6부. 미국과 이란은 왜 이렇게 사이가 나쁠까?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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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이란의
역사 부입니다 1925년 그간
근대화의 물결을 거부하며 퇴보하고
했던 이란의 카자르 왕조가 무너지고
팔라비 왕조가 새롭게 들어섰습니다
바로이란 최후의 왕조였던 팔라비
왕조를 개청한 레저시 팔라비 스는
이란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라비 왕조의 2대
군주였던 팔라비 2세는 친미 친서방
외교 정책을 고소하며 냉전의 구도에서
자유주의 진영 쪽을 선택했습니다 한
때는 미국과 이란의 사이가 돈독했다이
당시 미국이 중동이 이스라엘의
알바끼리 시전했고이는 아랍 국가들의
엄청난 반발을 섰죠 비록 이란도
이슬람 국가였다고 하지만 아랍은 아닌
페르시아 이슬람이 있기에 살짝 계보가
달랐고 미국은 그래서 아랍 국가들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우왕국 이란을
주목했던 거죠 그리고 이란에는 석유도
있잖아요 팔라비 이세는 공산주의를
싫어했기에 자유주의 진영 쪽에
기울였으나 다른 거 다 떠나서 역사적
악연이 있는 영국 하고는 우호적이고
싶지 않았고 대신에 이란은 미국을
우방국으로 삼았습니다 이란은 미국의
석유 수출에 대한 특혜를 주는 대가로
그 외 다방면에서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팔라비 이세는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아버지
팔라비 1세에 이어 근대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판 농지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토지 기역을 실시해 소작제
폐지하고 빈농 구제하려고 했으며 교육
산업을 진행시켜 문맹률을 낮추고
서방의 유학생들을 적극적으로
파견하였고 여성들에게 참정권도
부여하였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이슬람교가 아닌 종교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였고 1974년 이란에서 개최된
테혜란 아시안 게임도이란 경제에
일조하였습니다 1961년부터
1978년까지 팔라비 이세의 이러한
근대화 개혁을 백색 혁명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이란은 이슬람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시아파 국가죠 이란은
1501년 시아파 국가였던 사파비
왕조 일래 500년간 공식적인 시아파
국가였습니다 시아파 율법 학자들 및
시아파 이슬람인들이는 팔라비 이세가
여성과 비 이슬람교 사람들에게까지
참정권을 부여하고 서방의 개방적인
정책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란의 여론은
역사적으로 악연을 맺고 있던 영국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는데 팔라비
2세의 친서방 정책도 이란인들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팔라비
2세는 비밀 경찰 조직인 사바크
창설하는 등 독재자의 모습도
보였는데이는 팔라비 이세의 정책과
외교의 불만을 품던 이란인들이 팔라비
이세이 무능을 꼬 있는 빌미가 되기도
하였습니다이란 경제의 몸집이
전체적으로 커지는 건 맞았지만 부의
재분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빈부격차도 커지고 있었죠 그래서
팔라비 2세 7세 때는 시위 끊임없이
일어나고
[음악]
있었습니다 이란에서 시위들이 연이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팔라비 이세는
독제 권력을 더 강화했습니다 군부
세력들을 동원하고 심지어 수상까지
군부 장군을 임명하면서 공포감을
조성했고 그렇다고 시위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흉흉하여
팔라비 2세의 정권이 위태로 올 때
팔라비 2세는 서방세계의 국가들이
이란에 개입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습니다 아니는 다리가 서방 세계의
자유주의 진역 국가들도 이란의 귀추에
주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9년
1월 4일부터 7일까지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 영국의 제임스 켈러
헌 수상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테
대통령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네
사람이 멕시코의 과달루페의 모여
중동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정상
회담 자리를 가졌습니다 서방에 내해
정상들은 팔라비 이세의 뒤통수를칩니다
팔라비 이세가 워낙이란 내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니 오히려 이대로
가다가 내전이 벌어지고 소련의
공산주의가 더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결론 을지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이란의
시위 중에서는이란 공산당도 참여하고
있었고요 내 정상들은 이란의 팔라비
이사에게 잠시 이란을 떠나 있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때마침 암투병
중이던 팔라비 이세는 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이란을 떠나 이집트로 갑니다
국정 운영은 파크티켓 아기로 하였죠
당시 이란에는 보수적인 율법학자
호메이니가 이슬람 근본 주의자들과
함께 창설한 이슬람 혁명 위원회라고
있었습니다 그간 팔라비 이세의 서방
정책에 대한 반발로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위원회는 이란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고 바크 t 아르
총리는 호메이니를 포섭해야 만 했죠
하지만 호메이니는 바크리 아르 총리
역시 팔라비 이세의 심복이라 바크리
아르 총리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정부와
이슬람 혁명위원회 사이의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바크 하리는 막나가는
호메이니를 가만둘 수 없어 군부대를
동원하기로 하는데 문제는이란 육군
내에서도 호메이니를 지지하는 군부
세력들이 있었고 결국 1979년
2월이란 군부의 내전이 발반였습니다
승자는 호메이니의 반정부군이 있습니다
바 그티 아의 총리는 사퇴 수밖에
없었고 호메이니는 군주제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공화 정부를 새롭게
수립했습니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린이 사건이이란 혁명이며이란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가 바로
오늘날의이란
정부입니다 호메이니가 수립한 오늘날
이란의 정식 명칭은이란 이슬람
공화국입니다 이란에도 임기가 있는
대통령이 있지만 실권은 매우
미미합니다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한
호메이니는 이란을 철저한 이슬람
시아파의 종교 국가로 만들었고 이란의
국가 원수는 일종의 종교적 지도자인
라흐바르 아는 직책이며 호메이니가
바로 초대 라흐바르 있죠 그리고
이란의 법률 또한 철저한 샤리아 율법
즉 이슬람 율법에 의거하고 있죠
팔라비 2세 7세 시절 반 팔라비
2세 시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있었고이란 공산당 주도의 공산주의
세력들도 있었습니다 팔라이 이사에게
저항할 때는 공공의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정부를
새롭게 수립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정부는 공산주의를 허용해 생각이
없었습니다 호메이니는 공산당 탄압했던
이로서 이란은 완벽하게 보수적인
이슬람 시아파 국가가 되었고 오늘
날에는 이슬람 시아파 국가들의 기수
같은 포지션이죠 당연하게도 호메이니
집권 후 호메이니는 대대적인 반서방
정책을 고수했으며 이때부터 이란은
미국과 철천지 원수가 됩니다
이집트로가 있던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샤한샤 팔레비 이세가 미국으로 망명을
갔는데 지미카터 대통령이 망명을
받아주자이란 내에서 반미 시위가
있다라고 1979년 11월 이란의
과격파 학생 시위대가 태 란에 있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억류했던
사태도 있었습니다 지미 카터는 팔라비
이세를 미국에서 내쫓는 조건으로
사태를 종료할 수 있었고 팔라비
이세는 이집트로 다시 망명을 갑니다
팔라비 이세가 이집트에 있으니
당연하게도 이란과 이집트 역시 같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좋은 관계가
아니랍니다 또 이집트는 시아파인
이란과 달리 순니파 국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란이도박 쏘란 가도 사이가 좋지
못하겠죠 그러니깐 호메이니는 모두까기
외교 노선을 펼치며 자발적으로 국제
사회에 고립이 되어 버린 겁니다 특히
미국이 이란을 아주 벼르고
있었는데이란 혁명 이전까지 팔라비
왕조 치세이라는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
내 미국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였는데 이젠
대표적인 반미 국가가 되어 버린
거잖아요 미국이 그 대타로 찾은
국가가 이라크 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통해 이란을 견제했고
이라크와이란 사이에서는 영토 및 자원
분쟁도 있었고 또 이라크인들이 이란과
동일한 시아파이기도 했지만 이라크
정부는 또 순니파 정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라크 내 시아파
반정부군을 지원해 주면서 이라크이란
사이가 아화 일로를 치달았던 거기에
미국의 비호하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1980년 이란을
침공했습니다 바로이란 이라크
전쟁이었죠이란 이라크 전쟁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무려
8년간이나 이어졌고 유군의 중재로
겨우 끝날 수 있었습니다이란 이라크
전쟁은 양국의 총력전이 있던만큼
양측의 피해가
막심했다는 애들끼리 싸우니까 간
기본적인 전쟁의 룰이나 국제 사회의
윤리 같은 거 따지지 않고 잔혹성을
내세운 전투들이 이어졌습니다 양측에서
민간인 학살 경쟁이 일어났고 이라크의
경우 전쟁 범죄로 규정된 생 화학
무기들을 살포하였다 지뢰를 탐색할
방법이 없어서 자국민 10대 소년병을
만든 뒤 지뢰밭을 뛰기 해서 지뢰를
폭발시키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 이어졌죠이란 이라크
전쟁이 유엔의 중재로 겨 끝났다 만
8년간의 전쟁에서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물자를 팔아가며
이득을 취했
8년간의 전쟁에서 양측이 모두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고
양측 모두 전쟁으로 석유가 고갈되어
버려서 그들의 돈줄 마저 끊겨
버렸죠이란 이라크 전쟁의 결과는
승자가 없고 패자만 있는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죠이란 이라크 전쟁 1년 후
이란의 악계 축이었던 호메이니가
죽습니다 그렇다면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호전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호메이니의 뒤를 잃은 2대 라흐바르
알리 하메네이 역시 호메이니의
심복으로 독재 정치를 하고 반미
반서방 아니 반세계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알리 하면네 역시
스로 알았습니다 국제 사회에 도움을
받고 안 받고는 차이가 크다는 걸
말이죠 국제 사회에 도움을 받지 못한
왕따 국가로서 국력을 지킬 수 있는
대안으로 하면에는 핵을 개발하기
시작하죠 핵을 개발하며 이란은
미국과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최악의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후 이란이 현재까지 마지막 부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역서 돋보기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