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한국에 계속 살게 되는 이유

파비앙 Fabie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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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디 #타일러 #파비앙
니디와 타일러가 방문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걸음부터 정착 이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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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트 종료 10월 13일 (일) 23시59분
*추첨 발표 10월 14일 (월) 입니다 (개별 연락)
▶︎ 촬영 : 파비앙
▶︎ 기획 : 오소은
▶︎ 편집 : 오소은
▶︎ 한글과자 채널 : https://www.youtube.com/@hangeulkwaja
▶︎ 나디 채널 : https://www.youtube.com/@nidhi-agrawal1
▶︎ 타일러 채널 : https://www.youtube.com/@tylerras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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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하게 게스트 두 분과 함께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 구독자들이 인도인, 미국인 그리고 프랑스인 같이 한국말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게 아마 처음 보는 광경이지 않을까.
갑자기 너무 웃기네요.
바로 니디씨 그리고 타일러씨가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타일러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니디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두 분이 웨이브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잖아요.
맞아요.
여기 앞면 부분은 대표님이시고
여기는 속해있는 아티스트죠.
네. 안 들어오시나요?
네?
저 제의 안 받는데요?
아. 영업하러 왔구나.
이게 뭐 제의 했으면 저는 검토해봐야겠습니다.
검토해주신대요.
검토해봐야죠.
그러면 너가 중간에 스스로를
제가 지금 실수했으니까 스스로를 받아야 돼요.
아. 웨이브 엔터테인먼트 이런 소속사구나.
다단계라고 해야 되나?
줄리안이 지금 없으니까 뒷담화 시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타일러가 이제 부대표? 두 분이 대표죠?
공식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사이고요.
그리고 줄리안이 지금 대표를 맡고 있는 타일러입니다.
같이 청합한 사람으로서 줄리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솔직히 너무 좋았어요.
왜냐면 춘실력도 좋고
그리고 약간 제가 싫어하는 거를 좀 좋아하는 게 있어서
그게 좀 매칭이 잘 됐던 것 같아요.
서로 충족하는
네. 그래서 저는 약간 정리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숫자라든지 이런 거를 좀 많이 좋아해요.
잘해요.
두 분이
지금 알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뭐지?
왠지 저랑 사업하는 경험이 어떤지 이렇게 물어보면
비슷한 대답이 나올 것 같아요.
그러네요.
그냥 배웠나? 이 답을
한국 과자든 웨이브 엔터테인먼트든 일단 답이 정해져 있다.
근데 줄리안이 제 채널 나왔을 때
저는 반대로 똑같은 질문을 했거든요.
똑같은 대답이 나오더라고요.
아무튼 두 분이 너무나 잘하고 있고
지금은 보니까 소속 아티스트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고
예정될 활동이 있으신지
저희가 아마 새로운 분한테 제의를 틀릴까
지금 생각하고 있고요.
검토해보겠습니다.
앞으로 웨이브 엔터테인먼트와 조이 채널
이렇게 협업이 확속을 하면서
고향을 떠나서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정착하고
그리고 한국 생활에 대해서 얘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조이 셋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한국 생활한 지 굉장히 오래된 인물이라는 거죠.
얼마나 됐죠 두 분?
저는 9년 차.
14년 차요.
그러면 두 분이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얘기해주세요.
한국에 대해서 옛날부터 알고 있는 게 아니라
14년 쯤에 좀 더 공부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건데
그 이유는 인도에 있었을 때
엄마랑 같이 사업하고 있었던 게
아버지랑 같이 사업하고 있었던 게 있었는데
언젠가 부모님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나 혼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만의 가치를 만들고 싶다는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당연히 해외 가겠다 하면
제일 인도 사람이라고 하면 제일 첫 번째로 떠오르는 나라가 미국이거든요.
대부분 많이 가니까
그래서 미국 이야기 했었는데
미국에 인도 사람들이 많죠.
미국에 가서 거기에 있는 인도 사람 집에 살면 되겠네
라고 집에서 말이 나와서
그러면 굳이 미국에 가?
나만의 힘으로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다시 없겠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업 쪽으로 좀 배울 수 있고
뭔가 해볼 수 있는 나라를 찾다가
한국, 일본, 스위스 이렇게 세 가지 나라들을 줄여 봤었어요.
삼성엘지의 인도의 파워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그러면 왜 인구 대비는 인도의 4%가 되는데
어떻게 이렇게 큰 회사들이 여기서 만들어졌지?
뭔가 비밀이 있겠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게 많겠다 해서
한국의 궁금증을 풀려고 처음에 오게 됐어요.
그 많은 생각을 되게 어린 나이에 했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 어린 나이에 많은 나라를 분석하고
제일 쉬운 길은 그냥 인도에서 부모님의 사업 물려받고 하는 거고
두 번째 쉬운 길은 사실은
언어 그나마 통하는 미국에 가서 사업하는 건데
이 많은 선택 중에 한국이 가장 어렵고
그러면서도 가장 두려웠을 거 같은데
남다른 거 좋아해요.
남들이 하는 거, 비슷한 거 하는 거는 지금도 좋아하진 않거든요.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왜죠?
왜 내가 그렇게만 해야 돼요?
그러면서 승부욕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어떻게든 나를 증명할 거야! 보여줄 거야!
이런 게 있어서 한국에 오게 된 건데
엄청 큰 도전이었겠네요.
타이러 씨는 제가 알기로는
처음에 2008년에 5학년 수업으로 왔다가
다시 미국에 가서 다시 온 거죠?
네, 맞아요. 다시 온 거고
미국에서 대학교 졸업하고 일 좀 하다가
대학원 다니러 온 건데
여기 처음 왔을 때 뭔가 오래 있겠다는 생각 하나도 없이
석사하면 2, 3년?
그렇죠, 그렇죠.
2, 3년 정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가
계속 살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되었네요.
저는 처음에 여행하러 왔다가 공부하면서
1년? 그래도 2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리다 보니까 우리 집에 소파 있고 침대 있고 가구 다 있고
사실 많은 외국인들이 공감하겠지만
나는 한국에 10년 살겠다, 8년, 9년 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온 건 아니잖아요.
약간 한국의 매력은 그거인 것 같아요.
사실 오면 떠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쉽게 정을 많이 들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 무슨 중력 같은 거 있어서
자꾸만 이쪽으로 불러오게 되는 게 있어요.
나가도.
맞아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두 분이 원래 인도 그리고 미국에서
어떻게 알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생 처음으로 왔던 거는 2008년에 잠깐 3개월 5학년 수업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진짜 미국에서 한국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었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코리아 하면 다 북한 생각하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진짜로 한국에 간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왜? 거기 뭐 하려고? 살 수 있는 게 있나?
이런 분위기였던 건데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인도가 인터넷이 좀 느려서 그런지 정보도 좀 느리나 봐요.
15년에도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인도는.
거기 왜? 북한이랑 계속 싸우는데?
너 여잔데 왜 가? 이런 반응이 좀 더 컸다가
요즘은 좀 많이 달라진 분위기로 보냈어요.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한국이 사실은
유럽에서도 그렇고 아마 미국에서도 그렇고
그냥 유튜브처럼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하잖아요.
15년 전에는 프랑스 뉴스에 SES 새 앨범 발표했다고
이런 뉴스는 안 나왔었죠.
그래서 보통은 타이라 씨가 말한 것처럼
북한 도발했다든지 미사일 발사했다든지
당연히 이런 인식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진짜 그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알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니지 씨 같은 경우에는 그냥 인도에서
좀 편안하게 일할 수도 있었는데
그거에 대해서 살짝 후회하거나 그런 거 있는지?
저는 이런 애드벤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한국에서 후회한 적이 없고
오히려 한국 와서 저는 자신감이 좀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리고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인도가 다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다양한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 엄청 좁은 시장에서
약간 닫혀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세상이 진짜 넓구나 깨닫게 되는 게 사실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타이러 씨도 사실 미국에서 교수라든지
전문가로도 북한 관련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사실은 되게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게 되었는지
영주권까지 취직했죠?
네 맞아요.
미국에 돌아가서 전형적인 진로로 가는 게 가능했을 것 같아요.
사실 이제 그런 걸로 생각하고는 있었죠.
사실 지금도 때려치우고 돌아가면
그걸 준비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건데
그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미국 의회에서도 일을 했고
주미 한국 대사관 그러니까 한국 외교부에
미국에 있는 대사관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어떤 걸 느꼈냐면
미국에서 그런 정부 관련된 일을 하거나
그런 일을 하는데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 일만 한 사람들이 아니더라고요.
그런 사람들 배경이나 이런 거 보면
와 진짜 천차만별이에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아니 그게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보인다면
저도 그냥 다양하게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냥 어디 정해진 진로로 들어가기 보다는
제 인생이 훨씬 더 재밌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한국에 계속 살게 얘기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라든지 좀 궁금해요.
제가 이제 여기에 2011년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데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고
방송도 하게 되면서
그래 좀 해봐 하고
한 2016년 17년 쯤에
그래도 돌아와야 되지 않나 라는 의견들이 나와요.
요새 가족들이니까 보고 싶고 그런 의견이 나오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다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일단 NRI라는 건 Non Resident Indians라고 하잖아요.
외국에 사는 인도인들은 인도에서 NRI라고 하거든요.
그런 태그만 있으면 약간 본인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인도인들이 많아서
저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외국 다녀왔다 이러면 좋은 회사에 빨리 갈 수 있고
이런 게 있으니까
저는 21살 됐던 어린 나이였으니까
안 보낸다는 것도 좀 있긴 했었고
근데 고집이 좀 많이 세서
저희 외삼촌이
3개월라도 보내봐라
고집도 셌는데
집이 그리우면 바로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서 보냈대요.
그런 생각을 한 거 아니에요?
3개월 가서 당해봐라
음식도 안 먹고 말도 안 통하는데
아마 한 달 안에 돌아올걸?
딱 그렇게 생각해서
다음에 오케이 하는 거래요.
근데 제가 어떻게든 못해서
독립적으로 돈도 벌고 이러니
자신감이 생긴 건 부모님도 보이기 시작하고
어려웠던 건 제가 만으로 26대부터
결혼해야 되지 않겠냐
결혼 이야기 나오면서부터
할머니가 나 손주를 보고 싶다고 이런 게 굉장히 많아서
한국 문화랑 비슷한 점이 좀 많구나
특히 가정적인 부분에서
대가족 문화가 아직도 있으니까
그래서 많은 교수님들
20, 30년 전 한국이 인도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직도 그런 거 있긴 하지만
부모님들은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TV에 나갔다고 하면
그거를 어떻게 찾는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어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복사하고 유튜브에 붙이고
계속 찾아보시고
귀엽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첫 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저는 국제정치학 전문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인천에 도착하면서 착륙을 하잖아요
바깥에서 여러 가지 섬이 보이고
갯벌이 보이고 하는데
여기서 인천 상륙 전쟁
하드웨이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착했어요
그런 생각 아예 없었고요
인도에서도 약간 좀 더운 지역에서 와서
눈을 본 적이 없었어요
12월에 제가 한국에 왔는데
제가 오자마자 그날에 눈이 내리는 거예요
낭망적이네요
명동 쪽에 있었는데
바글바글하고
여성 두 분이 걸어가면서
팔짱 끼고 걸어가는 게
일단 인도 사람으로서
여성들끼리 팔짱 끼는 건 좀
신선한?
신선하죠
보통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이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언젠가 그때 들었던 생각이
언젠가 나도 이 정도 친한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나도 팔짱 끼고 싶다
친구인데
맞아요
음식이라든지
이런 거 좀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려웠어요
재식주의자니까
맞아요 또
재식주의자라는 단어도 모르니까
어디 가서 식당에
뭐가 되는지 뭐가 안 되는지
말하기 너무 어렵고
먹을 수 있는 게 뭔지 모르니까
한국에 오자마자 3개월 안에
저 팔길을 가졌었어요
매일 아침에 빵만 먹고
하루에 하나만 아침에 먹고
지하철 내리고
버스 타면 따로 비용 안 내도 되는 거 몰랐어요
그래서 서울대역에서 내리고 걸어봤죠
서울대에 다 올라와
매일 매일 아침에
아 서울대 바보 중 한 명이었구나
고생했네요
재밌었어요
왠지 다 이러시네
어디를 가도 잘 적응할 것 같아요
한국 음식 되게 좋아하고
매운 것도 좋아하고 해서
저 항상 좋아했고
지금도 엄청 좋아하는 게
국밥류 같은 순대 내장탕 같은 것들을 좋아해요
뭘 꺼내가지고
새우젓에 찍어 먹을 수 있는 것들
그런 것들 되게 좋아하고
엄청 돈이 없을 때가 있었어요
장학금이 가방금이 길어지면서
만료가 되고
생활비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학업을 다 해야 되는데
그때 봉천동 중앙시장 근처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 갈 때마다
그냥 쑥떡 되게 저렴하게
그런 방앗간 떡 같은 데에서
이렇게 사갈 수가 있어가지고
아니면 더 팔지 못할 것 같은
가지 애호박 같은 것들
그런 거에 밀가루랑 해가지고
그런 것만 한 2주 동안 먹을 때가 있었어요
되게 돈이 없어가지고
두 분 다 거의 한국에 온 지 10년 넘었고
거의 10년 다 돼가는데
스스로 나에 대해서 놀랐다든지
오랫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
느낀 점들이 궁금해요
옛날에는 게으른 줄 알았는데
게으르지 않다는 건 좀 더 놀랍긴 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어요
인도에 있을 때 약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하라고 한 걸 많이 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 목표에 대한
이렇게 많이 달려가는 성격인지
몰랐다는 게 있어가지고
그래서 그때 느낀 거는
난 좋아하는 걸 하면
굉장히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구나
라는 게 좀 느꼈던 것 같아요
결론부터 얘기를 하자면
다양한 일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저한테 그게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굉장히 높여주는 것 같아요
이건 좀 엉뚱하지만
그거를 해볼래 하고
좀 없었던 것들을 만드는
그런 경험을 몇 번 거치다 보면
그 어느 한 가지가 나를 결정하지 않는구나
하고 나는 그냥 하면 될 수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할 수는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거를 발견하게 된다고 할까요?
스스로 그냥 자신감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 일을 못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없어지는 거예요
못할 수도 있지
근데 그거는 해보기도 전에
사실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두 분이 사실은 창업하는 거 보니까
저는 진짜 평생까지는 단정 못하겠지만
당분간은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성격상
두 분은 보니까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두 분이 공부하기도 하고
방송일도 하고 직장도 다녔고
탈러도 책도 맺잖아요
두 번째 지구는 없다?
라는 책까지 내고
진짜 다양한 일을 했는데
또 하나 추가했잖아요
네 맞아요 또 하나 추가했어요
계속 팽창 중에 있는데
두 분이 창업을 했어요
한국인은 모르면 안 되는 과자
한국 과자
이게 약간 아이돌들처럼 이렇게 좀
처음에 우리는 뭐 어쩌고
무한도전
이건 그냥 해본 거거든요
굉장히 잘 맞네요
저희가 한글 모양 과자 한글 과자를 만들게 됐어요
청쇄에서는 이런 알파벳 과자가 있고
숫자도 있고
한글 과자가 없었던 거 되게 신기하네요
영어 교육 행사를 하고 있었어요
거기서 영어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어가지고
알파벳 과자 생각났거든요
근데 잠깐만 여기 한국인데
여기서 한글 모양 과자가 있을까?
하고 검색해봤더니
나오는 게 뭐냐면 젤리가 있거든요
근데 쿠키나 비스킷처럼 해외에서 다들 먹고
갖고 놀고 하는 그게 없는데
그래서 바로 리디한테 전화를 했죠
아니 한국에 한글 과자가 없대?
이랬는데
없을 수 없겠지
그쵸
사실 저는 같은 반응이었어요
처음에 수많은 한글 과자 중에 하나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거의 블루오션이네요
알지는 않은 거는 사실은 떠올 수 있지만
창업까지 두 명이서 하는 거
그 과정이 사실은 되게 오래 걸렸을 때고
되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우리끼리만으로는 시작할 수 없는 거지
그러면 실제로 우리가 직접 해볼 수 있는 거 있을까?
하고 이런 것도 따지고
근데 한글 과자 만약에 런칭할 거면
한글날에 런칭해야 되지 않겠냐?
무조건 한글날에 해야 되는데
만약에 런칭하려면 한 달 남았고
아니면 내년에 해야 된다
4년 해야 된다
그럼 한 달 안에 할 수 있을까?
일단 모르겠지만 해볼까 해서
다른 프로젝트 우승 순위를 좀 내리고
한글 과자를 좀 큰 우승 순위로 해서
한 달 안에 일단은 어떻게든
런칭할 수 있는 거를 다 해보자
원데이 클래스도 다녀서
메이킹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닌지 배우고
다양한 맛으로 만들어보고
누구랑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있어서
그런 비건 제품으로 만들려고
노노샵에 도움도 받고
저는 사실 사업 기질이 없어서
엄두도 못 내는데
하기 전에 분명히 두려울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사람들이
사업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되게 크게 생각해요
10억을 모아와야 될 것 같고
어디에 펀딩을 받아야 되면
복잡하고 크고 빚지고 해야 되는
상황들이 상상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시작할 때 규모를
되게 크게 생각하기 때문인 거지
사실 우리는 초기에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되게 소규모로 시작을 하자라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나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자
이거 만들어보자 하고
진짜 간단하게 생각하고
출발을 했던 것 같아요
중요한 얘기 들어보니까
한국에서 유럽에 비해서
창업하기 쉽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복잡했는지
답이 나왔네
나라마다 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미국은 시작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시작이 매우 빠르고
하룻밤 사이에 그냥 시작할 수 있는 시작이에요
한국은 시작이 어려워요
시작이 어렵고 세팅이 오래 걸리고
준비할 게 많은데
그것만 해놓으면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잘 돌아갈 수 있지만
근데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을 했을 때
알아내야 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은 시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말이 많이 나와요
그러면 이제 두 분이
사업을 같이 하시고 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은 많이 알려야 된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한글과자로
재밌게 놀 수도 있다
다양하게 우리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누가 놀지 말래?
이런 걸 좀 알려주고 싶어요
어른도 어린이도 다 똑같이
다 동심 있는 거고
다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인 건데
그래서 한글과자로
그냥 좀 재밌게
초성 게임 하고
이런 것들도 좋고
사실 우리가 당황한 건 바로는
아이들이 굉장히 장의적으로 단어를 만들고
어른들은 오히려 그걸 까먹은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만들지? 하고
그러면 자기네들도 승부욕이 생기고
같이 놀고 싶어 하고
그리고 한 번 와인 바에서
팝업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행사 끝나고
새벽 3시까지 거기 계시는 분들이
술 게임으로 한글과자로 해서
술 게임을 하는 거예요
키덜트?
그런 거 좀 많이 경험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간은 사실 본능적으로 노는 걸 좋아하죠
또 한글이라는 글자가
언어 유희라든지
또는 재밌게 놀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이렇게 조합해서
이렇게 좀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 사업 말고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우주선을 만들고 싶다
뭐 이런 거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일단 한글과자에 집중을 좀 하고
내년쯤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는 단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비밀이지만
둘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커뮤니티를 좀 더 키워나가고 싶다는
그 욕심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사고 방식이나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우리 팀도 좀 키워나가고 싶다는 것도 있고요
앞으로 두 분이 방송이든
또는 개인 채널 유튜브이든
그리고 한글과자 사업도 응원하고
그리고 우리 구독자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하셨죠
저희 한글과자가 여러분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봤는데요
그래서 고정 댓글을 확인해보시면
어떻게 참여를 하실 수 있는지
안내가 나오는데
그러면 거기서 참여하시는 분들 중에서
한 10명을 추첨해가지고
한글과자를 맛보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벤트 참여해주세요
네 많이 참여해주시고요
두 분 오늘 나오셔서 감사드리고
다시 한번 나중에 나와주세요
안 한 얘기도 많고
나중에 또 했으면 하는 얘기도 많은데
언어 얘기도 많이 안 해봤고
그래서 다음에 또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바이바이
아 니디 씨 채널
테러 씨 채널
한 번씩 놀러 가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