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불화 그 속에 담긴 평면의 스토리를 찾아서 | 탱화 불화 불교미술 문화 역사 조선 이야기 설화 전설 | 한국불교의 아름다움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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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부타야 한국불교의 아름다움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는 제가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이후에 더 이어진 조선불화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조선불화는 흔히 고려불화와 비교해서 다소 예술적인 가치가 또는 예술적인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평가를 과거에 많이 받아왔습니다
아마도 그 이후로서는 고려는 불교에 많은 지원이 있었고
또 아낌없는 불사에 시주하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려불화는 그렇게 수준이 높을 수 있었지만
조선시대는 억불숭유시대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지도층들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불교에 시주하거나 후원할 수 없었던 점
아마도 이런 점이 고려시대에 비해서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의 수준이 더 떨어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언뜻 보실 때에는 조선불화의 색감은 고려불화의 은은하고 세련된 색감에 비해서
더 녹색, 빨간색 이런 색들이 더 톡톡 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고요
그다음에 부처님의 인체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더라도
고려불화 속의 부처님은 인체의 어깨와 팔의 위치라든가 앉아있는 발의 모습을 표현한 시선의 각도라든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실제 어떤 사람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거에 비해서
조선불화 속의 부처님은 바라보는 각도에서 볼 때 결과부조한 발의 모습을 보는 각도도
실제와는 좀 다른 어떻게 보면 공간이 좀 이질어진 듯한 그런 공간 속에 그려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거는 언뜻 보면 대생실력도 좀 떨어지는 사람의 그림인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불화를 그리시는 분들이 조선불화보다는 주로 고려불화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고 하는 거에
굉장히 집중하고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 조선불화는 조선불화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부분을 차츰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수업에서는 그런 부분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고려불화가 언뜻 볼 때 더 은은하고 세련된 색채
그리고 인체 모델링이 더 사실적이었던 이유는 고려불화는 원래가 멀리서 보는 그림이 아니라 가까이서 보는 그림이었고요
그리고 밝은 데서 보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켜놓고 어두운 곳에서 보는
그래서 부처님과 내가 일대일로 만나서 좀 은밀한 공간에서 기도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억불숭요시대인 조선시대가 되면
그런 자그마한 가족 단위로 개인 단위로 갈 수 있는 절들이 전부 정책적으로 없어지게 됩니다
동네에도 여러 개의 절이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나누어 갈 수 있었는데
그런 동네에서의 절을 다 없애고 하나만 남겨놨다가
그 다음에는 구 안에 하나 남겨놨다가 시 안에 하나 남겨놨다가
나중에는 도 안에 다 없애버리고 몇 군데만 절을 놔두는
그런 강한 불교 탄압 정책으로 인해서 많은 절들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 이상 일대일로 부처님을 조용히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은 사라지게 되고
대신에 몇 개 안 남은 절에 가서 수많은 불자들이 함께 가서 예불을 드리는
그런 공간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의 법당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법당에서 많은 불자님들이 함께 모여서 예불 드리고
또 스님의 설법도 듣고 하는 그런 공간인데요
이런 공간은 고려시대의 개념과는 다르게 일대다
즉 부처님 한 분과 수많은 중생이 함께 부처님을 만나는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과거에 좀 어둑하면서 은은한 빛깔을 내는 그런 불화들은
촛불 속에서는 굉장히 더 반짝반짝거리면서 그런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지만
지금처럼 환한 공간, 넓은 공간에서 그런 은은한 빛깔의 불화는
더 이상 잘 보이지 않는 불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체 모델링을 풍부하게 사실적으로 해놓았을 때는
정면에서 볼 때는 이 부처님 참 잘 그려진 상호가 원만한 부처님이구나
하고 우리가 알아볼 수 있지만
이제는 바로 앞에서 일대일로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흩어져서 어떤 사람은 가까이서 부처님을 올려다봐야 되고
어떤 사람은 오른쪽 구석에서 옆에서 비스듬하게 봐야 되고
어떤 사람은 왼쪽 구석에서 비스듬하게도 부처님을 바라봐야 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볼 때만 잘 그려진 그림이라면
옆에서 볼 때는 오늘은 내가 늦게 왔더니 옆자리에 앉아가지고
부처님이 저 앞에 있는 사람만 보고 나는 안 보고 계시네
에이 나는 예불 다음 날 해야 되겠다 이럴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어느 한 군데에서 보는 완벽함을 해체시켜서
어떤 각도에서 봐도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또는 어떤 각도에서 보든 비슷한 부처님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조선 불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색채를 환하게 만들어서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띌 수 있도록 만들고
어느 각도에서 봐도 균일한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그런 불화이기 때문에 그런 독특한 조선시대의 예불 방식
이것도 역시 억불숭유의 영향이기는 하지요
그러나 억불숭유의 영향으로 예술적인 수준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게 예술의 어떤 표현 방식이 바뀌었다
이렇게 보시는 것이 조선 불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다
그 다음에 조선시대의 불화는 고려시대와는 다르게
굉장히 크고 더 다양한 존상들이 등장하는
지금 우리가 흔히 후불탱화라고 부르는
그런 장르의 불화들이 많이 그려지게 됩니다
이 작품은 탱화는 아니고
즉, 다시 말해서 그려서 건 그림은 아니고
벽 자체에 그린 그런 그림인데요
아주 드물게 남아있는 벽화이기도 합니다
모델링이라든가 이런 필선이나 이런 것은
고려시대의 불화를 따르고 있으면서도
고려시대보다는 훨씬 밝은 색채를 보여주고 있는
그런 불화의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그런 중간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작품을 보시면 지난 시간에
고려 아미타 내용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특히 고려나 조선에서만 유독
아미타 부처님의 협시보살을
경전에 나오는 관음과 세지보살이 아닌
관음과 지장보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요
이 무의사 벽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지장보살과 관음 보살이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벽화이면서도
고려 불화에서 보셨던 것과 같은
그런 관음 보살이 투명한 천해를 걸치고 있는 모습을
아주 미묘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서
여기는 투명한 천이 덮여있는 곳
여기는 덮이지 않은 곳
이런 곳들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한
그런 모습을 보실 수 있고요
그리고 이 부처님 주변에는
마치 황금색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처럼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는데요
그것을 보면 연기가 펑 하면서
부처님이 그 연기 속에서
쫙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은
어떤 순간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아미타 부처님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이 세계가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데요
그래서 법당에 보면
주변에 아미타 부처님이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장면
또는 아미타 부처님이 극락으로
우리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나타나신 장면
이런 것들이 함께 다 어우러져서
거대한 극락세계의 모습이
이 법당 안에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죠
이렇게 강진 무의사 후불 벽화를 보시면
구도가 약간은 고려불화와 같은
그런 구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간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맨 위에 계시고
관음과 지장보살은
이 앞쪽, 그러니까 아래쪽에
이렇게 서 계신 걸 볼 수 있는데요
점차점차 이런 후불태화가 발전하면서
고려시대와는 다르게
옆에 보살들이나 또는 10대 제자분들의 모습들이
부처님의 머리부름을 넘어서
완전히 부처님을 감싸는 형태로 배치되는 것이
고려시대와는 다른 조선불화 구도의 특징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그런 다른 보살, 난 이런 분들이
고려불화에서는 전부 부처님 앞쪽에 놓인 것으로
그려진 것이었지만
부처님 위쪽으로 그려진다는 이야기는
부처님을 둘러싼 뒤쪽 공간에까지
전부 애워싸고 지금 설법을 듣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표현한 그런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앉아있는 공간
그리고 불탄 위에 부처님이 앉아계신 공간
그리고 그 불탄 너머 뒤쪽의 공간까지 연결해서
온통 부처님을 애워싸고 설법을 듣고 있는
그런 장면을 미술,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것과 더불어서
여수 흥극사영산회도에서는
보살 두 분이 다른 보살들은 전부 부처님을 바라보고 계신데
양옆의 두 보살은 고개를 바꿈 숙여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이 보살님들이 굉장히 눈에 띄는데요
마치 방울방울, 이 보살님들의 광배가 방울방울 이어지면서
지금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멀티 유니버스, 다중 우주라고 할까요?
거품처럼 여러 우주가 공간에 늘어져 있는 가운데
두 보살이 우리를 다 바라보고 있는 것을 통해서
마치 이 불화 속에 있는 존자들이
그 불화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을 인식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걸 통해서
마치 불화 속에서 우리를 정말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런 느낌을 통해서 우리가 불화로 빨려들어가는 느낌
지금 불화 속의 공간과 불화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공간이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로 이어진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시각적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과연 왜 이런 후불탱화가 등장하게 되었을까라고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는 이런 부처님 뒤에 불상 뒤에 그림을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당나라 때 남아있는 중국의 법당 내부를 보시면
후불탱화라는 것은 없습니다
대신에 부처님 뒤에 무엇이 있는가 살펴보시면
그렇죠, 바로 부처님 뒤에 꼭 있어야 하는 광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후불탱화라고 하는 것은
광배를 대신해서 그림을 그려넣기 시작한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은 늘 부처님 뒤에 반드시 광배를 세웠기 때문에
조선시대와 같은 그런 후불탱화가 발전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은 분명히 표현되어야 하는 광배를 치우는 대신에
왜 후불탱화라는 것을 걸게 되었을까요?
이것도 역시 억불숭요 정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원래 법당에는 큰 불상을 모셔야 되는데
억불숭요 시대가 되다 보니까 불상을 아예 못 모시게 한다든가
설령 모시더라도 생각만큼 크게 만드는 것을 금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불상들을 복장을 조사해 보시면
왕실에서 누군가가 참여해서 불상 조성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보통 사람들은 금을 쓸 수 없다 보니까
어떻게든 왕실과 연을 닿아서 나라에서 법으로 말리는 것이지만
왕실에 이분이 참여해서 하시는 거니까 이 일은 좀 봐주시오
아마 이러면서 결국은 불사를 어떻게든 이뤄내기 위해서
이런 왕실의 가족들을 끌어들였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도 광배가 있는 불상이 있습니다
남양조 흥국사의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들 경우는
아주 크고 화려한 광배를 가지고 계신데요
역시 광배가 있으면 그 뒤에는 불화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화를 그려봤자 어차피 광배에 의해서 가려서 안 보일 것이기 때문에
광배가 있으면 불화는 필요가 없는 것이죠
후불태화는 사실은 광배를 대신해서 그려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야구장 가보시면 관객들이 멀리서 보다 보니까
야구선수가 안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죠?
큰 전광판이 따로 있죠 그래서 카메라가 클로즈업해서 그 선수들을 비춰주죠
그거랑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이 실제 야구선수라면
지금 후불태화 속에 비춰진 그림은 바로 전광판 속에 보이는
확대된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는 이렇게 억불순유 정책 때문에 불교 의뢰에 제약이 가해지자
광배를 없애는 대신에 후불태화라고 하는 큰 불화를 거는 것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우리는 그 덕분에
이런 후불태화라고 하는 독특한 예술 장르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배를 대신한 후불태화가 그만큼 불교 의뢰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아시게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일대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 사람이 부처님을 만나는 이런 독특한 조선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써 영산제라고 하는 독특한 조선시대의 불교 의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일대다 즉 부처님 한 분과 여러 중생들이 만나는 대표적인 불교 의식이
바로 야외에서 진행되는 이런 거대한 법회의 영산제일 텐데요
영산제라고 하는 것은 영산 즉 영축산입니다
영축산은 부처님께서 실제 세상에 나오셔서 설법하셨을 때 활동하셨을 때
가장 많은 설법을 하셨던 곳이고 그래서 영산제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영축산에서 했던 부처님의 설법을 재현하는
다시 리바이벌하는 바로 그런 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 들어가셔서 설법했던 이유는
이 세상의 더러움을 피해서 산에 들어가셨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산에서 설법하셨던 이유는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누구나 와서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무런 제약도 없이 누구나 모일 수 있는 산을 설법의 장소로 선택하셨던 겁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왕궁 안에서 설법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궁궐 안에 들어가야 돼?
거기 들어가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들어갈 때 지저분하다
아니면 우리는 계급이 낮은 사람이다 우리를 막 물을 흐린다 그러면서 우리를 막지 않을까?
괜히 가서 곤란당하느니 안 가는 게 낫겠다 하면서
그런 장소에는 누구나 다 모이라고 하더라도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겁니다
또 산이라는 곳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이라도
결국은 자동차나 이런 걸 타고 갈 수 없고 결국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곳입니다
왕족도 귀족도 돈 많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노비도 전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전부 부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사람이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보여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그때 정말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는
왕궁 귀족도 따로 없었고 신분이 미천한 사람도 따로 없었고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이걸 기념하는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설법의 내용이 어때야 될까요?
거기에 모인 똑똑한 사람들을 위해서 어려운 설법을 하다 보면
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저거는 내가 못 알아듣는 설법이다
내가 올 자리가 아니었나 보다 다음엔 오라고 해도 오지 말아야 되겠다
그리고 안 올 수 있는 겁니다
또 그런 일자 무식인 사람을 위해서 쉽게 설법을 하다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뭐야 나는 좀 복잡하고 좀 어려운 문장을 배우러 왔더니
여기는 그냥 가나다 ABC 가르치는 곳이구나
여기는 초급 코스라 내가 올 필요가 없겠다 하고
다음엔 안 올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을 다 불러놓고
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설법을 한다는 거
이거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걸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쉬운 말로 설법을 하는데도 그 안에 모든 진리와
모든 깨달음을 위한 지혜가 다 그 안에 들어있어서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굉장히 어려운 내용인 줄 알았는데
바로 저거였구나 이렇게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설법을 하셨던 곳이
바로 영축산이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축산에서 하셨던 설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설법의 내용이 바로 법화경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영산제라고 하는 것은 영축산에서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야외 법회
이것을 바로 영산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영산제야말로 부처님 한 분과 우리 중생 모두가 만나는
일대다라고 하는 그 만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런 법회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로 그 안에서 불교 회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중생들에게 불자들에게 보이는가를 보신다면
바로 진정한 조선 불화의 매력을 더 잘 느끼실 것 같습니다
영산제를 위해서는 우선 야외 별도의 불단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냐면 야단 법석이라고 하죠
야단, 야, 바깥의 단을 만들어서 법석, 법을 설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런 뜻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의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이게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조용히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들떠서 와서 김씨 아저씨, 최근에 딸이 시집 갔다며
아들이 장가 갔다며, 아들이 취업했다면서 떠들고 그런 장면이 상상이 되시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마도 뭔가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면
아니 어디서 야단 법석이 열렸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이런 말이
아마 야단 법석은 곧 시끄럽다 이런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안에도 야단 법석이라는 표현 안에도
부처님이 모든 사람을 다 불러 모으셨다라고 하는
그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부산하게 야단 법석을 준비하는 동안
이번 법회의 주인공이 부처님이시죠
그 부처님을 표현한 불화는 법당 뒤에 조용히 이렇게 걸려 있습니다
원래 예불은 불상을 모시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모습이겠지만
야외에 불상을 모셔오기란 굉장히 힘든 작업입니다
조각은 무겁고 그리고 설령 모시고 나온다고 해도
야외에서 볼 때는 이 목조 불상 부처님은 너무 크기가 작기 때문에
힘들게 모셔 나와도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야외 법회를 위해서 특별히 거대한 불화
거의 높이가 10m쯤 되는 거대한 불화를 따로 만들어두었다가
이런 야단 법석에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런 불화를 흔히 괴불이라고 봅니다
걸괴짜를 써서 거는 불화라고 하는 의미로 불리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괴불을 꺼내기 위해서 사찰 법당 뒤에 보면 뒷문이 달려 있습니다
가끔 법당 뒤에 있는 저 문은 언제 쓰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바로 이렇게 부처님 거대한 불화를 모시고 나오기 위한
그런 문의 용도로 사용됐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점차 점차 조심스럽게 부처님이 모셔진 괴불함을 꺼내서
법석이 있는 자리로 모셔오고 있는데요
그렇게 법석으로 옮겨진 불화를 조심스럽게 꺼내서 걸기 시작합니다
은웅사의 영산회 괴불 또는 1730년에 의경이라고 하는
그 당시에 너무나 유명했던 승려 화가께서 그린 그런 그림인데요
색채도 너무나 선명하게 잘 남아있고
마치 어제 오늘 그린 그림처럼 보존 상태가 굉장히 좋은 그런 불화입니다
이 불화는 아마도 늘 걸어놓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원래는 잘 보관했다가 또 너무 보관만 해놓으면
좀도 쓸 수 있고 또 너무 뻣뻣하게 굳어서
필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될 수도 있는데
수백 년 동안 1년에 한두 번씩 폈다 접었다를 계속한 덕분인지
색채도 잘 남아있고 보존 상태도 좋은 그런 불화입니다
그의 건은 불화다 그런데 불화가 전부 걸려있죠
비단에 그리든 종이에 그리든 전부 걸려있는 그림인데
왜 이것을 특히 괴불이라고 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괴는 걸려있는 정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걸기 위해서 펼치는 보다 동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화가 펼쳐진다는 것은 단순하게 그림을 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처님이 달 떠오르는 것처럼
저 지평선에서 여기 다들 모여있네요
그러면서 부처님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이 뜨거나 달이 뜨는 것처럼
부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칙적으로는 부처님이 사실은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법회할 때 보면 강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요청을 하거든요 강님 내려오신다는 거죠
그런데 내려오시려면 원래는 발부터 보여야 되는데
불화를 펼 때 발부터 보이게 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펴다 보면 부처님이 달 뜨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관 다른 차원, 다른 세계에서 부처님이 우리가 있는 현실 세계로
지금 모습을 나타내시고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거대한 불화가 펼쳐지는 장면을 보면 정말로 장관이죠
모든 불화를 펴게 되면 이렇게 높이가 한 10m 정도 되는
거대한 부처님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거대한데도 섬세하게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바깥에서 그것도 아주 환한 야외에서 보기 때문에
색채가 지금 보시는 것처럼 빨간색, 녹색, 파란색, 분홍색 이런 것들이
막 톡톡톡 튀지 않으면 야외에서 이런 그림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죠
조선 불화는 고려 불화에 비해서 품격이나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그 상황에 맞게 변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상황에 최적화된 것이기 때문에 역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 펼쳐졌습니다
이제 2500년 전의 인도와 현대의 한국을 이어주는 그런 차원을 넘나드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열리고 나니까 그 열린 문을 통해서 부처님이 걸어나오고 계시는 것을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발을 보면 이렇게 미끄러지듯이 걸어나오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걸 통해서 이 당시의 불화라고 하는 것은 그저 걸려있고 그냥 그림을 보면서 예보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부처님을 정말 이 자리에 영축산설법을 재현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다시 모시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염원을 이런 법회를 통해서 염원을 가득 키우고
그 염원을 모아서 불화가 열리고 그 열린 불화의 공간을 통해서 부처님이 정말로 강림하시는
우리를 위해서 열렬히 부처님의 설법을 다시 듣고자 하는 그런 염원을 들어주시기 위해서
그런 차원을 넘어서 걸어나오는 부처님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그림들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다이나믹하고 그리고 우리 앞에 정말로 펼쳐지는 어떤 세계를 묘사한 그림이라는 것
이런 걸 보시고 이 조선시대 불화를 보신다면 그 불화의 생동감, 생명력 이런 것을 더 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아까 야단법석은 굉장히 시끄럽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이런 영산지에 가서 저 같은 경우는 이런 부처님 불화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
가서 기다리고 있다 보면 이 분들이 막 떠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이야기하고
그런데도 부처님이 그려진 거대한 불화가 펼쳐지면
그 모여있는 사람의 형형색색의 색깔보다 저 불화 속에 형형색색 드러나는 색채가 더 강렬하기 때문에
그 누가 시키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떠들던 분들도 야 저게 뭐냐
그리고 불화를 탁 보면서 집중하게 되고 할 말을 잇고 그 불화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서
이게 바로 조선불화의 힘이구나
그때 만약에 금박에 박혀있지만 햇빛에서는 보이지도 않은 고려불화 스타일의 그림이 올라간다면
아무도 불화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불화는 조선시대의 상황에 최적화된 그런 불화이다
자 그것과 더불어서 보는 각도가 다양해졌습니다
불화를 보시면 언뜻 볼 때는 부처님이 앉아계신 모습이 굉장히 인체가 왜곡되어 있고
뭔가 형태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이 불화를 정면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나
또 반대쪽 옆에서 볼 때나 어떻습니까
부처님의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볼 때나 똑같은 부처님의 모습
그래서 내가 나는 오늘 가운데 앉았어 나는 옆에 앉았어 이런 게 없이
어디에 앉아서든 마치 가운데 앉아서 부처님을 볼 때와 똑같은 느낌으로 부처님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게 조선불화의 어떤 기아학적인 매력이고 아름다움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다른 예를 보여드릴까요
내소사 괴불인데요 역시 아주 대표적인 괴불 중에 하나입니다
이 괴불도 방금 보신 것은 앉아있는 부처님이셨는데
이렇게 내소사 괴불처럼 서 계신 경우에도
그것을 약간 비스듬한 왼쪽에서 바라보거나 또는 반대쪽 오른쪽에서 바라보거나
부처님의 모습은 거의 비슷한 변화하지 않는
마치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어디서 봐도 부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왜 오는 것일까
그 비밀에는 역원근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근법이란 것은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아 보이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원근법이죠
그런데 불화뿐만이 아니라 동양화에는 역원근법이라고 해서
가까이서 보는 게 오히려 작고 멀리서 보이는 것을 크게 그린
그런 그림들을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언뜻 볼 때는 한국 사람들은 과거에 원근법도 몰랐나 보다
왜 가까이 있는 게 더 작아 보이고 멀리 있는 게 더 커 보이는가
마치 이것을 어떤 실력의 차이로 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소개해드리는 김강용 작가의 그림처럼
벽돌이 툭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죠
그런데 그 벽돌을 자세히 보시면 앞쪽이 더 튀어나와 있는 부분인데도
살짝 좁고 뒤쪽으로 가면 오히려 더 넓어지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이건 왜 이렇게 그려져 있는가
이 그림은 앞에서 정지된 상태에서 볼 때는 이 그림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런 그림을 앞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보시다 보면
이 툭툭 튀어나와 있는 벽돌들이 나를 따라서
막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 있느냐 바로 역원근법에 있습니다
동양의 화가들은 가까이서 보면 크고 멀리서 보면 작아진다는
원근법의 원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역원근법으로 그려놓으면 어디서 봐도
마치 내가 보는 곳이 정면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는 것
바로 그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불화들은 이런 사람의 인체를
정상적인 원근법상에 묘사한 것이 아니라
뒤가 오히려 벌어지는 역원근법의 형태의 공간 안에
인체를 재구성함으로써 마치 이런 역원근법에 의해서
어느 각도에서 봐도 정면인 것 같은 이런 느낌을 강조하는
그런 인체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화가의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독특한 기학적인 원근법을 적절하게 구사하기 위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디서 보든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역원근법이 아니라 이것은 좀 다른 방법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의 부안 내소사에 가보시면
내소사에 후불탱화가 걸려있는 그 벽 뒤쪽에
백의 관음도가 그려져 있는데요
이 백의 관음도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아마 가보시면 스님이나 보살님들께서 설명을 해주실 겁니다
이 백의 관음도를 눈동자를 보면서 걸어가 봐라
그러면 이 보살님의 눈동자가 여러분을 따라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인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정말 이 백의 관음께서 나를 쳐다보고 계시네
라는 느낌을 정말로 받게 됩니다
신기한데요 마술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벽화가
이 백의 관음의 얼굴이 그려진 부분이
벽면이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이 비밀인데요 오목한 곳에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역시 어느 각도에서 보든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걸 이용한 것이죠
물론 이 내조사의 백의 관음도가
이런 현상을 나타나게 된 것이
의도적으로 벽면을 움푹하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양쪽 기둥 사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렇게 벽을 미장을 하는 가운데
우연치 않게 벽이 오목하게 됐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옛 화가들이
아마 이런 기법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당나라 때의 기록을 보면
유명한 화가가 관음보살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에 관음보살은 사람들을 따라서
눈동자가 움직였다라고 하는 기록들을
몇 군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자 표현으로
전목시인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전목, 눈동자를 전, 회전한다, 굴린다는 뜻이죠
눈동자를 굴려서 시인,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왜 그때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아마도 이것도 역시 오목한 화면에 관음보살을 그려놓음으로 인해서
어디를 가나 마치 시선이 따라오는 것 같은
그런 그림을 신비롭게 그렸던
그런 기법에서 비롯된 전설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눈동자가 우리를 따라다니고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부처님이 나를 보시는 것 같은
이런 기법들이 왜 중요할까요
조선불화의 미학을 월인천강의 미학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월인천강이라고 하는 것은
달빛이 천개의 강에 비친다 이런 뜻입니다
그 강이 크든 작든 아니면 그 강의 물이 깊든 얕든
달빛은 똑같이 골고루 비춰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흙에 그냥 고여있는 고인물이든 호수의 물이든 바닷물이든 어디에든
달빛은 똑같이 비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부처님의 자비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든 중생들에게 똑같이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까 부처님께서 법화경에서
그런 수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일자무식인 사람까지
다 불러놓고 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설법을 해주셨다고 했는데요
그것이 법화경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그런 부분을 시각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부처님이 모든 중생들에게 골고루 똑같이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설법을 해주셨다라고 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미술로 표현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디서 보던 부처님이 다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게 바로 기존의 불교와는 다르게
모든 중생들이 다 함께 부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조선시대 불교의 특징이었고
그런 조선 불교의 특징을 가장 잘 담아낸 불교 미술이
바로 이 영산회의 괴불도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조선 불화에 사용된 다양한 시각효과는
단순하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또는 단순하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만
적용된 시각효과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시각효과는 분명히 부처님의 말씀을
더 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더 직관적으로 그런 말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부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부처님의 가피가 내려지고 있고
누구나 다 부처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하는
바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이런 시각효과가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앞으로의 불교 미술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효과를 이용하고
다양한 판타지를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미술로 나아가되
단순히 현혹하는 단순하게 눈에 띄는 용도가 아니라
정말 부처님의 말씀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용도의 미술이라면
얼마든지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월인천감 이것이야말로 억불승유시대의
조선시대의 예술가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대안이고 대결책이었습니다
오늘 강의도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