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의 군대(부제 : 음식, 병참, 의료)_ 재업로드영상

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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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6. 4.
본 영상의 자막은 AI기반 자막프로그램인 vrew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참고서적)
1. 몽골병법. 티모시 메이
2. 칭기스의 교환. 티모시 메이
3. 위키백과. 나무위키
00:00 인트로
00:05 서론
00:28 1. 음식
05:13 2. 병참
06:09 3. 장비조달
07:21 4. 의료
11:34 아웃트로
안녕하세요 저스티스 있니다 이번
시간에는 몽골군이 어떻게 군량을
조달하고 병선을 유지하며 보급품을
조달하였다 병사나 질병에 감염된
병사를 어떻게 치료하였는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무조건
재밌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좋아요 한 번씩만 꼭
부탁드리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몽골군은 기본적으로 정복한
도시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분량으로
하는 단순한 조달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복을 받아낸 몽골군은
정복지 영주에게 조공과 식량 목초지를
모두 요구했습니다 만약 하나라도
거부하면 모두 초토화 되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말 먹이를 위해서 농지를
황폐화 하여 목초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현지 조달로
해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휴대한 군량도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몽골군이 선호한 것은 쿠미스 아고
알려진 발효한 마유 있니다 정확히
말하면 쿠미스 no 트루크 인들이
사용했던 말이며 몽골인들은
아이락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유 즉
말젖을 쉽게 굳지 않기 때문에 발효에
이상적이었던 선교사 겸 탐험가인
윌리엄 루브릭의 기록에 따르면 말젖을
커다란 가죽 자루에 담은 다음 머리
부분을 오목하게 만든 막대기로
휘었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거품은
버터가 되고 나머지는 는 발효되면서
시큼해지는 버터를 거두어내고 휘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발효가 잘되어 진한
쿠미스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암말은 하루에 2에서 2.5l 마유를
생산합니다 마유는 대략 1온스당
20kc 함유하기 때문에 하루에 약
144에서 1600kcal a
영양분을 만들어냅니다 활동적인
몽골군의 하루당 필요 에너지가
300kc 아고 할 때 하루 사용량의
1분을 말 한 필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루에 병사 한
명에게 필요한 말은 앞말 두 필이
됩니다 앞말의 수유기 대략 5개월이
때문에 몽골군 병사 한 명은 5개월
동안 앞말 두 필이 필요했습니다
몽골군이 원정을 나가면 병사 한 명당
말 다섯에서 여덟 피를 대동했다
그래서 그중에서 말을 분량으로
사용했다면 대략 두필 정도를 안말로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것은 제가
읽은 책을 기준으로 말씀 드린 것이며
말 한필이 여러 명의 병사를 먹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한편 말의 먹이가 충분치 않은
겨울에는 마유 이외에 다른 군량이
필요했습니다이 경우 몽골군은 크루트
부르는 분말 반죽으로 된 마유를 물에
풀어서 먹었습니다 몽골 병사들은
원정을 나갈 때 분말 마유 4에서
5kg
휴대했다 가죽 자루에 넣고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면 행군하는 동안 분말
마유 와 물이 잘 섞이게 됩니다 보통
점심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저녁이 되면 걸쭉한 마유 죽이
되어서 이것을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저녁으로 먹을 분말 마유가 없거나
다른 것을 먹어야 할 때에는 약간의
고기를 넣은 고기국을 먹었습니다
몽골군은 말이나 황소가 죽으면 일부는
바로 먹었지만 일부는 훗날을 위해
말리거나 소세지를 만들었습니다 윌리엄
루브릭의 기록에 따르면 개별 병사에게
돌아가는 고기는 소 양이었지만 모든
병사가 계급에 관계 없이 동일한 양을
배급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당시 몽골군은 말의 피를 1 정도
빼도 말의 건강에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비상 상황에서는
말의 피도 식량으로 사용했습니다 말에
정맥을 갈라서 입으로 피를 뺀 다음
지열 있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 몽골군
하루 권장량의 3에 해당하는 약
2,200km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말이 죽을 위 있었기 때문에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몽골군의 주식은 고기와
유제품이 있지만 곡식도 먹었습니다
보리와 밀 등이 강을 끼고 경작되고
때문인데요 중국 대륙 북부에서 곡물을
걷어 들이기도 했습니다 곡물은 죽을
만들 때 첨가되었습니다 한편 군량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든 짐승을 다 사냥했지만 주된
타겟은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법이었다 mor a 체중은 대략
4.6kg 지방이 13,000 KC
제공했고 살코기는 3,400 KC
정도를 제공했습니다 즉 마못 한
마리로 5.5g 분량이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은 선 패스트를 옮기는
벼룩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밖에도 몽골군은 네르 이제를 통해서
사슴 영양 곰 호랑이 등 다양한
짐승을 사냥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사냥은 분량을 얻는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칭기스칸은 술로 마유인법첩
합니다 몽골 제국이 얼마나 광대
있을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모든 군이 그렇지만 몽골군도 분량이나
군수품의 공급망이 필요했습니다 군수품
역시 약탈로 조달할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수품은
주로 말리나 낙타가 운반했습니다
크기와 종류에 따라 200에서 600
kg 짐을 질 수 있었던 쌍봉 낙타는
하루에 대략 30에서 40km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행군 중인
몽골군에게 상당량의 군량과 장비
보급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몽골군이
군량과 군 장비만을 보급하는 특별
부대를 따로 설치하였는가 각 병사에게
지급한 무기와 장비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수많은 말과 낙타에게
먹일 목초지를 확보하는 것이
병참술에서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몽골군은 공격 전에 반드시 목초지
조달 및 이용 계획을 세우고 원정을
떠났습니다 칸이 무기와 갑옷 이외
장비까지 공급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각 병사는 자신의
장비 대부분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주요 공격 무기인 화살은
몽골 군이라면 상당히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목민족은
어려서부터 뿌리나 나무 줄로 화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몽골군은 가죽으로 갑옷을 만드는 법도
배웠습니다 미늘 갑옷은 만들기 위해서
수천 개의 금속 꼬리를 연결하며
고정시켜야 했던 것에 반에 몽골군의
가죽 갑옷과 층상형 갑옷은 만들기가
훨씬 쉬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병사가
만든 무기와 장인이 만든 무기의
차이는 있었습니다 몽골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송나라 등지에서 데리고 온
장인과 기술자가 많았기 때문 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 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의 요충지마다 장인들을
위한 식민지도 건설하여 그곳으로부터
신속히 무기를 조달 받았습니다
군수품의 공수 체계가 어떻게
운영되었지만 정확히 알 수 없지만이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몽골군이 무기 조달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했다는
사실입니다 몽골군의 의무 대는 따로
없었지만 부상을 당하거나 몸이 아픈
병사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와 민간
치료 료사 무당 등이 공격시 함께
원정을 떠났습니다 몽골은 자신의 의료
기술에 이슬람의 의료 기술 중국 전통
의약품 티벳식 의료 기술을
접목했습니다 특히 이슬람 의술은 골절
화상 등 전투시 당한 부상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질이나
선페스트 등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약
처방에 더해서 소작을 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전투 중
부상을 당하면 일단 후방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몽골 제국 초창기
부상병 치료는 여성이 담당했지만 점차
전문 의료진이 대신하였습니다 말과
같은 가축을 길들이다 골절을 당하는
경우나 전투중 화살에 맞는 경우는
흔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부상자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화살에 맞는 경우는 해당
부의 피를 빨아내는 치료를 했다고
하는데 빨아내는 행위가 피가 굳어
혈관을 막는 색전증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울러 피를 빨아내고
화살에 묻은 독이 몸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몸에 박힌 화살을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유목민은 다양한 유형의 화살촉을
사용해서 어떤 종류의 화살을 맞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뽑다가 상처가 더 커지지
않도록 오히려 안쪽으로 밀어넣어서
관통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화살촉의 앞부분이 넓은 경우에는
관통보 뽑아내는 것이 유리했고 결국
어떤 케이스인지 먼저 알아낸 후
치료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몽골군은 화살에 맞을 경우 외상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빈틈없이 짠 비단
내복을 입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에
따르면이는 금 나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는데요 만약이 내복을 입은
병사가 화살에 맞은 경우라면 관통구를
시행하지 않고 간단히 뽑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이 주장은
1970년대에 발표된 악마의 기병대
저자 제임스 챔버스의 설명이라고
하는데 제가 읽은 책에서는 비단
내복이 과연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을지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비단 내복이 효과가
있었다면 이미 먼저 입고 있던
금나라는 몽골과 대결할 때 훨씬
유리한 상태에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맞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이 부분은 고수님들의
댓글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중상을 당한 병사는 특별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병사의 몸에서
화살이나 화기의 자네를 없앤 후에
내장을 빼낸 황소나 물소 럼 몸집이
큰 동물 시체 안에 들어가 있게 하는
치료입니다 동물의 위장에 남은
소화되지 않은 여물이 부상 부위의
스포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이
과정을 거치면 회복이 빨라졌다고
합니다 제가 읽은 책에서는 이것이
시체의 온도 등 여러 이유로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무당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특히 한약재가 가 없을
경우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유목 민족들은 대부분 질병의 원인이
영적 세계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이 들면 영혼이 환자로부터 격리되어
길을 잃는다고 믿었고 무당이 영혼을
제자리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무당이
구술하고 회복하면 무당의 효염
생각했고 만약 회복하지 못하면 무당의
힘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몽골군은 질병의
전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물 관리에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손 의복 식기
등을 흐르는 물에 씻어서 오염시키지
않도록 주의했다 소변을 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물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용기에 담아서 사용했습니다
유럽에서 파견되어 온 사신들은
몽골군의 위생 관념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기록했지만 몽골군이 물을
깨끗하게 사용했다는 점은 간과했습니다
혹독한 날씨로 인하여 한번 전염병에
걸리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때문에
경험에서 나온 몽골군의 현명한
대처법이 몽골군의 병참 술과 군수품
보급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중앙
정부가 제공한 것과 개인이 스스로
만든 것을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개별 병사가
무기와 군량을 스스로 준비하기도 했고
칸도 군대의 식량과 무기 및 각종
군사 장비를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몽골 제국은 영토를 확장해
나가면서 새롭게 접하는 기술과 관습을
배척하지 않고 언제나 기존의 병참
술과 의술에 접목했다는 점입니다
몽골과 관련된 책을 여러 건 읽어
보았지만 언제나 드는 생각은 그들은
유연했던 때문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혼날
자신들의 전투 방식과 맞지 않는다며
총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적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요 그 결과 정주 문명의
패권을 씨라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