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아드" by 메릴린 로빈슨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삶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전하는 메릴린 로빈슨의 작품입니다.
* 출판사 : 마로니에북스
00:00 인트로
1:23 등장인물
1:41 주요줄거리
4:54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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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손해
주어 드릴 작품은 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 있니다 1943년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 태어난 메릴린
로빈슨은 대학에서 영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던 인물입니다 작가로서는 비교
늦은 나이인 37세가 되어서야 첫
작품인 하우스키핑 등했는데 해 이상을
수상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린로 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체를
구사하고 신학 전공자답게 종교적인
신앙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차를 선보이며 독자들을 매료시킵니다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제
3회 박경기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길리 아드는
첫소설 하우스키핑 발표 이후 무려
20여년 만에 발표한 작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1950년대 미국
아이오와주의 길리 아드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76세인 존 에임스 목사 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인생과 신앙 사랑과 용서 등
인간 본연의 주제에 대한 깊이는
성찰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작가의
할아버지가 목사였으며 할아버지가 존
에스의 캐릭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죠
작가는이 작품을 통해 전미도 소성과
필리 상을 수상해 문학적인 명성을
다시 한번 세상에
증명했습니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6세의 목사인 존 임스가 이작품
주인공입니다 그의 자이자 친구의
아들인 존 보이 등장하는데요 에스는
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두 사람이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입니다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이 존
에임스 목사는 미국 아이오와주
길리아드 목회를 해온 사람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목사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루이자는
여자 결혼을 해 린이 이름의 딸까지
얻었지만 불행하게도 루이자는 중에
사망하고 마저도 어려서 죽고 말았죠
그후 에스는 홀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 자신의 교회에 찾아온 30대
여자와 재혼을 했고 이르의 늦은
나이에 아들까지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여의 시간이 흘러 임스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어린 아들에게 수기 형식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기록해 남기죠
목사였던 에임스 할아버지는 노예 해방
론자 남북전쟁에 북으로 참여해 치열한
전투를 치 정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캔자스주의 자리를
잡았고 거기서 에임스 아버지가
태어났는데 나중에 에임스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아이오와주 길리아드
정착한
것이었죠 에임스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의 질적인 성격을 좋아하지
않았고 때문에 그들 부자는 그다지
다정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임스는 사실 에드워드
이름이 형이 있었지만 그는 젊은
시절에 독일의 유학을 갔다가
무신론자가 되어 돌아오는 바람에
부모의에 상처를 힙니다 한편 에임스
게는 젊은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보턴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비록 교단은
다르지만 보턴 역시
목사였고 보토는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두었고 그들 중 한
아들에게는 절친한 친구인 존 에임스
이름인 존을 그대로다 이름을 지어주고
에임스 그의 대부가 되어 주죠 그
이후 성장한 존 보토는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들다 돌아오고 그 사이
에임스 70대의 노 목사가 되어 앞서
말한 대로 늦은 재원을 하여 아들을
두었습니다
에임스 이제는 40대 중년이 된
자신의 대자 존 버턴이 웬지모르게
꺼려졌고 교회에서 자기 아내와 아들
옆에 앉는 것도 탐탁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는 존 버턴이 그다지
질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존 버턴이 젊은 시절에 미성년자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불행이도 아기는
이름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난지 3년 만에 죽고 말았던
겁니다 당시 에스는 대부로 써 존
버턴의 일을 알게 되어 그 뒤처리를
해주었고 그에 대해서 좋게 평가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게다가 그는 얼마
전에 에임스 찾아와 기독교의 예정설
대해서 공격적인 질문을 해 그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임스와
존부터는 마주 쓸 때마다
껄끄러웠는데 내심 그를 불편하게
생각하는데 그러다 어느 날 존 버턴의
비밀을 알게 되죠 독신인 줄 알았던
그에게는 델라라나 흑인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 당신은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는
것이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델라의 아버지는
존 버튼을 인정하지 않았었지만 그들은
사실로 관계로서 가정을 이루고
지내왔던
것이죠 그는이 사실을 연로한
아버지에게 충격이 될까 싶어 말하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길리 아들을 떠나 자신의
가정으로 가버립니다
에임스 목사는 가정을 위해 떠나가는
존 버튼을
축복하 이제이 작품의 감상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람은 결 이야기를
남긴다는
겁이 소설은 주인공인 존 에임스
목사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어린 아들에게 담한 목소리로 전하는
내용입니다 여을 둔 나이가 되어
자신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노인인 존 에스가 어린
아들에게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을
축하고 싶어하고 람은 업적을 이루고
싶어하며 또 어떤 사람은 번창한
자손을 보고 싶어하죠 그런데이 작품
길리아 대에서는 삶을 통해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 이야기란 한
인간이 살면서 겪는 다양한 일이고
그것을 통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리고 배운 것을 통칭하는 의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존 임스가 아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남기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는 꾸밈이 없는 사실 그대로인
것이죠 그래서인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더하 뺄 것이 없이 매우 담백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존 에스의 직업이 목사라는 것도 작가
메릴린 로빈슨이 다분이 의도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다양한 역할을 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는 설교를 하는 직업이고이는
결국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죠
저는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문학이 가지는 힘은 다름 아닌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이야기는 구전되어 내려올 정도로
이야기는 긴 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이 소설 속
주인공인 존 에스가 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는 설정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이 작품의 제목인
길리아드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소설의 제목인 길리아드
주인공 총 에임스 목사가 어렸을 때
이주에 와서 평생을 보낸 아이오와주의
한 작은 마을 이름입니다 작가 메리니
로빈스는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에 길리
아드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길리
아드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서문을 통해 직접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의 이름 길리아드 정신적
육체적 온전함에 대한 소망 특별히
친절과 정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나온 길라 즉
길리에서 잘하는 나무인 발 나무는
아프거나 다친 사람을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소개하죠 종합해
보면이 작품의 배경인 길리 아드는
치유가 일어나는 곳이고 용서와 포용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정신적 육체적인
온전함을 회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길리아드 특성과
의미는 존 에임스 시각에서 보다는 존
보탄의 시각에서 봐야 더 깊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존 에임스 절친한 친구
보의 아들인 존 버터는 존 임스의
대자이지만 그는 과거에 미성년자와
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고는이를
방임하는 큰 잘못을 저지른 바가
있었죠이 때문에 세월흘러 40이 넘은
나이에 길리 아들을 다시 찾은 존
버턴을 바라보는 존 네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질이 좋지 않다는 다소
가혹한 평가도
남깁니다 그러나이 설에 부에서 존
보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 존
에스는 그가 과거는 달리 변했으며
변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길리 아들을 떠나
자신의 아내 아이에게 돌아가는 존
보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축복까지
해주죠 주님이 사랑받는 아들이자
형제요 남편이자 아버지인 네임스 보을
축복하소서
결국 존 보은 이곳 길리아드 회복되어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이 마지막 부분에이 야 존 보이
왜 갑자기 길리아드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이 마을의 이름이 길리아드 있지를
알게
되죠이 작품을 읽으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겨울 때 찾게 되는 길리가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 자신이 길리
아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이 작품은 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앞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하며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이야기라는 본질적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고 사람은 후손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더욱
크기 때문에 저는이 작품이 개대 즉
대를 잇는 것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존
에스가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면 굳이
이렇게 긴 글을 쓰려고 했을까요
아무래도 그 동력은 더 작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식
자기 후손에게 무엇이든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에 대를
거듭하면서 인간은 축적과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이 작품에서는 자기
자식에게 무가를 남기려고 하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보호할 수
없는 마당에 다른 세대를 낳는 것은
잔한 일 같아 최상의 여건이라 해도
마찬가지지 자녀를 내놓는 데는 큰
믿음이
필요하지 대부분의 경우 자녀보다는
부모가 먼저 사망하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망 이후에는 더
이상 자식들을 돌보거나 보호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불로불사에
존재였다면 굳이 무가를 남기려는 동
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계가 명확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후에 남겨질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무언가를 남겨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개대 즉 대를
잊는다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선
물려주는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이어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 세대의 소멸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것으로서 어쩌면
이전 세대의 사라짐이 대의 핵심이라
점을 보여주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결론적으로이 작품의 존 에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대를 이어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길리아드 줍줍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