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로 캠핑을 떠난 10대 청소년들이 머리가 으깨진 채로 발견된 충격적인 사건 [사건사고]

기묘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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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날 그들을 습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미스터리
1960년 6월 4일 핀란드 네명의
청소년들은 캠핑을 하기 위해 에스포시
교회에 위치한 보덤 호수를 찾았습니다
15세의 소녀 마일리 이르메 비에르
클론드론 K 18세의 소년 세포
안테로 보이스만 닐스 비렐리
구스타프손 이들은 직업학교에서 만나
서로 알게 된 친구들이었는데 오토바이
두대에 나눠타고 드라이브를 즐긴
청소년들은 늦지 막한 후후 강가
인근의 숲속에 텐트를 치고 자리잡았죠
이후 소년 소녀들은 늦은 밤까지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정쯤 다 같이 잠자리에든 그들은
새벽 2시경 다시 깨어납니다 닐스
세포는 장비를 챙겨 근처 강가로
밤낚시를 갔으며 마일리와 아야는
이야기를 나누다 텐트 앞 강가로
물놀이를 하였는데요 얼마 후 낚시를
마친 소년들이 돌아오자 마일리와
아야도 텐트로 향했고 아이들은 그렇게
긴 하루를 마무리했죠 그리고 모두가
에든 벽 누군가 텐트 앞에
[음악]
나타났습니다 같은 날 오전 6시경 또
다른
청천영농조합법인 게됩니다 홀린듯이
텐트로 다가간 그들은 너무나도 처참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텐트 안에는 세
명의 소년 소녀들이 싸늘한 주검이 된
채로 널부러져 있었죠 오로지 닐스는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직후
신고를 받은 경찰은 구조 일력과 함께
현장에 출동하였으며 닐슨은 의식을
이른 채로 병원으로 옮겨졌는데요
마일리와 아니아 세포는 발견되었을 때
이미 죽은 상태 였죠 이들은 조류
관찰 그룹이 텐트를 발견하기 몇 시간
전 해뜨기 직전에 새벽에 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세 명의 주요
사망원인은 모두 두개골 골절에 따른
뇌 타박상 둔기에 인한 강한
타격이었습니다 세포와 마일리의
몸에서는 칼에 의한 자상도
확인되었는데요 마일리의 몸에 남아
있는 자상은 무려 15 군데나 되었죠
유일한 생존자였던 닐스 또한 검사
결과 두개골 여러 군대의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턱과 광대를 동기로
얻어맞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has 회복되더라도 심각한
뇌손상 후유증이 우려될 만큼의
중상이었다 범행에 쓰인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의 지갑과
몇몇 물건들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일부 업과 닐스의 신발은 사건
현장으로부터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바위의 구멍 속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이외에 유실물은 주변
일대를 전부 수작 있음에도 찾지
못했죠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의
연속이었습니다 의식을 되찾은 닐스는
뇌진탕으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는데요 범행에 쓰인 흉기와
피해자들의 물건을 찾기 위해 금속
탐지기와 다이버들이 고용되었습니다
근처 군부대까지 동원대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지 추가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없었죠 경찰은 신락 같은
단서들을 모아가며 끈질기게 탐문을
이어간 끝에 간신히 두 명의 목격자를
자출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가 호수
건너편에서 일하고 있던 목동에 캠핑장
근처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과 낚시 자리를 잡기
위해 호숫가를 건널도 소년 올라비
키빌 아티가 텐트가 있던 위치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금발의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증언이었다 이의 경우 너무도 먼
거리에서 목격한 불확실한 증언이라고
어려웠고 올라비 또한 근시를 앓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며 증언을
신뢰하기가 힘들었죠 늦게 이루어진
사건 현장 봉쇄 중군 난방이 던 조사
방야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리며 유실된
현장 흔적 등 당시 열악하던 수사
환경은 사건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DNA 검사도 없었던
데라 과학 수사에 기댈 수 있는
부분들도 많지 않았는데요 증거품들을
조사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지 경찰은 세간의 비판을
무릅쓰고 최면수 시행해 보기로 하죠
그렇게 유일한 생존자였던 닐스는
자신의 친구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마저 죽이려고 한 범인을 찾기
위해 최면 뒤에 오르게 됩니다 3일에
걸친 최면 조사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닐스가 잃어버린 기억을 일부
되찾는데 성공하는데 그가 진술한
당시의 상황은 이러 있죠 모두가 잠든
밤에 어떤 남자가 텐트를 찍고
침입했습니다 그는 칼을 가지고 있었고
쇠 파이프처럼 보이는 물체도 들고
있었어요 금발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우리들을 마고 구타
했습니다 놀랍게도 일전에 낚시꾼 소년
올라비 증언했던 것과 같은 금발의
남자가 닐스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도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
적인 실마리가 되기는 힘들었는데요
사건이 벌어진 곳은 필란드 있고
금발의 남자는 너무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사건은 캠핑 중
끔찍하게 도살당한 10대 아이들 세
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으며 핀란드
저녁에 엄청난 충격과 논란을
불러옵니다 이것은 수사의 어려움을
겪던 경찰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는데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은 여러 정황들 주변 일대의 증언
닐스 통해 얻은 일부 정보들을 한대
취합하고 간신이 유력한 용이자 몇
명을 출연했는데
성공하였고 첫 번째 용이자 한스
아스만 사건 다음 날이었던 6월 6일
아스마는 보도 모수 인근에 위치해
있던 헬싱키 외과 병원에 방문합니다
그의 옷에는 검붉은 얼룩이 가득했으며
손톱 밑에는 새까만 때가 잔뜩 끼어
있었는데요 그는 진찰을 받는 중에도
말을 횡설수설하고 어째서 이러한
모습으로 병원을 방문한 건지 묻는
의사 의 말에 대답을 둘러 댔죠 당시
그를 진찰했다 의사 유르마 팔로는
그는 매우 긴장한 상태였으며 불안해
보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아스마는
금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요
이상한 것은 뉴스에서 범인은 금발을
가지고 있다라는 내용이 보도되고 난
이후 그가 갑자기 머리를 짧게 깎은
정황이 포착된 것이죠 머리를 자르기
전 아스마의 모습은 닐스의 증언을
토대로 완성한 몽타주와 소름 끼치도록
흡사한 모습이었습니다 보도 모수에서
야 5km 떨어진 곳에 살던 아스마는
주변 평판이 매우 좋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독일 태생이 있던 그가
KGB 스파이라는 소문은 임금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고 주변 일대에서
일어난 몇몇 흉악 범죄의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아스만이 범인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주민들의 증언이
실제로도 매우 많았습니다 경찰 또한
여러 정황들을 종합하여 아스마는
강력한 용의자로 두었으며 그의
주변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는데요 지만
아스마에취 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불륜 상대의 집에서 미래를 즐겼던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것은 불륜
상대의 증언뿐 아닌 그 집에서 열린
저녁 파티에 참석한 이들 모두에게서
아스마는 그날 우리와 함께 있었다라는
추가 증언으로 확인되었는데요 아스마는
그날 저녁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은
침대에서 잤으며 방 문은 밤새도록
열려 있었다고 하죠 파티는 그들이
잠에든 후로도 계속 이어졌음 아스만이
한 밤 중에 아무도 모르게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일원이었던
살레미 자신은 아침 6시에 일어나
계속 집에 있었고 아스마는 아웃 시경
일어나 커피를 마셨다며 그는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쭉 자신들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습격 받고 있을 때
아스마는 그저 조용 잠을 자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었죠 이후 경찰은
아스마의 옷에 묻어 있던 붉은 자국은
작업장에서 빨간색 페인트를 칠하다가
튀게 된 것이며 그가 횡설 수사한
것은 수레 취한 돼서 비롯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가시지않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독일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고 이에 마을
주민들이 그를 두고 KGB 스파이라고
루머를 퍼뜨리거나 꺼림직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를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덧붙였죠
한스 아스마는 그렇게 모두의 의심을
뒤로하고 수사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헬싱키 외과
병원에서 그를 진찰했다 의사 요르마
팔로는 그에 대한 혐의가 풀린 뒤에도
아스마의 보도 모수의 범인이라며
강하게 주장했는데요 그는 아스만이
보도 모수에 범인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책을
집필하게까지 했죠 팔로의 주장에
따르면 뉴스를 접한 후 자신과 병원의
모든 직원들은 아스만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강하게 직감했습니다
그 그날 병원에 방문한 아스마는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닌 무언가 불안하고
긴장한 상태로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경찰은 병원 관계자들을 제대로
인터뷰하지 않아 의사들이 목격한
의심스러운 정황들 대부분을 놓쳤고
아스마의 붉은 얼룩이 묻어 있는 옷에
대해서도 정확한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는데요 실제로 당시
경찰은 아스마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자
별다른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옷의 붉은 얼룩 또한 페인트
자국이라는 아스마의 주장을
받아들였을뿐 정확한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죠 팔로는 그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집필하고
마찬가지로 아스마의 범인이라고 믿는
전직 경감 마티 팔로 아르와 한 권을
더 추가 집필하여 무려 세권의 책을
내며 그가 범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경찰은
요르마 팔로의 책은 그저 상상의
산물이라면 아스마는 적법한 수사
절차를 모두 거쳤다고 말하였어
아스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들 또한 그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고 하나 불륜 상 의
증언이라는 것 그리고 그날 파티에
참석한 이들 또한 불륜 상대의
여동생과 그 남편이었다 것을 지적하며
그들이 입을 맞췄을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용이
선상에서 제외시킨 후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는데요 첫 번째 유력 용의자 한스
아스마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두 번째 용의자 발데마르 윌
스트롱 노점 상이었던 그는 보도
모수에서 약 800m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노점은
피해자들이 드라이브 중에 들렀던
곳이기도 한데요 이들은 그곳에서
레모네이드와 추잉검 아이스크림을
샀다고 하죠 문제는 윌 스트롬이
캠핑족들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다 것입니다 평소에도 폭력적인
성향으로 주위에서 악명이 높았던 그는
보도 모스에 캠핑하러 온 이들에게
특히 더 산악에 굴었다고 하는데요
캠핑족들이 설치했던 텐트를 몰래
체하거나 그들을 향해 돌을
집어던지기도 했으며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예 내쫓아 버리기 위해
허공의 산탄총을 쏜 적도 있다고 하죠
그러나 윌 스트롬의 유력한 용이
선상에 오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후 그가 자신의
뒷마당에 있는 우물을 갑자기 메웠고
때문인데요 이것이 증거품이 인멸을
위한 것이라 의심한 경찰은 코장 윌
스트롱과 그의 안에 주변인들을 탐문
조사하고 집을 수색했고 윌스트리트
있었는데 남편도 나와 함께 있었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이후 주변을 조사하고
수색했으며 사건과 연관 질 한 요소가
크게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윌
스트럼을 용의자 명단에서 제외하였고
그의 캠핑족 혐오 성향과 더불어
곳곳에서 윌 스트롬의 범인일 것이라는
축성 증언이 쏟아졌지만 경찰은이 모든
것이 그가 범인이 바라는 주변인들의
바람으로 인한 것이라 여겼죠 그는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난지 9년 후인 1969년 윌
스트롬이 다시금 유령 용의자로 제주목
받게 됩니다 19 199년 윌
스트롬의 보도 모수에서 익사한 뒤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인데요 당시 증언을
거부했던 이들 중 몇몇은 그가 사건
당일날 아침 그쪽 방향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뒤늦게 증언하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총부터 속어 보는
윌 스트롬이 너무 두려웠기에 경찰에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윌 스트롬 생전에 술레 취하기만 하면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몇 년 전
호수의 사건은 내가 그런 것이다 다
내가 죽였다 이러한 자백 some
대화는 그의 마지막 날에도 있었습니다
윌스트리트 주장에 의하면 술의 취한
윌 스트롬이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그
10대들을 죽였다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베르제는 그의 이런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요 그는 사건에
일어나기 전부터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 참전으로 인한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죠 전쟁
당시 윌 스트럼을 심각한 머리 부상을
당했고 그 이후부터 말을 횡 수하는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적 없는 일을 자신이
했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니거나 스스로
그렇게 믿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죠 윌스토리 이제에
내가이 일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라고
물었고 베르제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진짜라면 너는 평생 감옥에서 썩을
테니 그냥 죽어 버리는게 낫겠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윌 스트롬 men 스스로 보도 모수에
빠져 목숨을 끊었죠 의미심장한
증언은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위는 윌 스트롬이 가득 메어 버린
우물 바닥에 살인 도구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경찰에게 그곳을 확인해 볼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그의 알리바이를
입중 주었던 아내는 죽기 전 자신의
증언이 거짓이라며 처리하기까지
했는데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경찰에
찾아오기 전 남편이 험악한 얼굴로
자신이 말한 대로 경찰에 증언하라고
시켰고 이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이겠다면 협박하였다 하죠 하지만이
모든 의심스러운 정황들은 모두 그의
사후에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윌 스트롬
men 수사 초반에 아내의 증언으로
용의 선상에서 빠르게 제외되었고 추가
조사에 대한 명분이 있었음에도 더욱
유력히 보이는 용의자 한싸 아스만
부족했던 수사 일력 등의 이유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요 그의 우물 또한 결코 바헤
쳐지지 않았죠 경찰은 그의 사후에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한 뒤 이렇게
발표합니다 윌리 스트롬의 자백은 사실
고백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며 모두 그의 주변인들을
통해 확인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사망한 현재 발언의 진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기에
소문이 안 좋게 와전 되었을 수도
거짓 소문이 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윌 스트로만 스스로의 고백에도
범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모든
진실은 보듬 호수 속에 혹은 그가
메워버린 우물 속에 잠들어 버렸습니다
출구 없는 미궁 속에 빠져버린 사건은
숱한 추측과 이야기들을 남긴 채
20년이라는 는 세월을 흘려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1980년대 DNA
분석이 생겨나며 미지 사건 수사에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유전자
분석 기법은 이후 빠르게 발전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전 세계의
보편적인 수사법이 되었죠 DNA
분석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이
재조사하고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들이
수십년 만에 해결되는 현상이 전
세계에 동시 다발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2004년 핀란드 정부 또한
44년 전에 보도 모수 살인 사건을
제조사 하기로 결정했는데요 그때까지
보관되고 있던 텐트가 먼지 쌓인
창고에서 다시 꺼내었으며 혈흔이 묻은
채로 봉해졌다 각종 증거품들을
제조사가 이루어졌죠 경찰은 이번에는
반드시 범인을 밝혀내겠다는 다시마에
피해자들의 묘지를 판내 그들의
6월까지 조사하였고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유일한 생존자 닐스
구스타프손 또한 다시 소환하였다 얼마
후 경찰은 최신 과학 기술로 재조사한
보도 모수 살인 사건 전마를 대국
에게 발표하는데요 놀랍게도 경찰은
범인을 찾았다는 말로 서두를 뛰었죠
경찰이 밝힌 범인은 그날 밤 텐트에서
홀로 살아남은 닐스 구스타프
손이었습니다 닐스는 사건 이후 40년
이상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고 직장에서는
은퇴한 상태였는데요 변함없는 것이라면
그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과
그날의 기억이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둘 뿐이었죠 2004년
사건 증거품들을 DNA 이 분석을
실시한 경찰은 그중 닐스의 신발에
집중했습니다 사건 현장으로부터
500m 떨어진 바위의 구멍 속에
숨겨져 있던 닐스의 신발 당시 경찰은
살인범이 특정한 이유로 닐스의 신발을
신고 범행을 한 뒤에 증거 임무를
위해 숨겼거나 탈취한 물건에
포함되었던 신발의 흥미가 떨어진
범인이 그것을 다른 옷들과 함께
버려둔 것이라 여겼습니다 제조사 된
닐스의 신발에서 수많은 혈액들이
검출되었는데 마일리의 것 아야의 것
세포 의 것 사건 당시 닐스의 신발을
흥건히 적신 피는 이들 세새 것이었죠
신발에서 닐스의 피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조사관들은 여기에서
이상함을 느꼈는데요 범인이 닐스의
신발을 신었거나 사건 현장에 신발이
그냥 놓여 있었거나 둘 중 어느
상황이더라도 닐스의 피만 묻어 있지
않은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죠 당시 닐스는 죽은 아이들의
제일 위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닐스의 아래에는
마일리가 하이가 벗겨진 채 갈려
있었는데요 닐스의 발견 당시 모습
그리고 마일리의 상태 경찰이 이들을
더욱 유심히 주목했던 이유는 닐스
마일리가 서로 연인 관계였기
때문이었죠 경찰이 분석을 통해 새로히
재고 성한 그날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사건에 일어난 날 밤 술에 취한
닐스는 연인이었던 마일리와 관계를
하려고 했지만 마일리 측에서이를
거부한다 이미 만치 상태였던 닐스는
강제적으로 그녀와 관계를 맺으려
했고이 과정에서 닐스 마일리가 의
다툼이 벌어져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셀프가 닐스 만류하던 중 그것이 둘
사이에 격한 주먹다짐으로 번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닐스가 세포에게 턱을
얻어맞고 텐트에서 추방당한다이
싸움으로 닐스는 턱에 골절상을 입게
되었지만 만치 상태에 더해 치솟는
분노에 완전히 자제력을 상실해 버렸고
이들이 머물러 있던 텐트를 되려 습고
돌덩이를 주어 친구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일색에 있어 모든 일의
원흉이라 느껴진 그리고 가장 큰
배신감을 느꼈던 자신의 연인
마일리에게 특히나 많은 상해를 입힌다
뒤 늦기에 자신이 저지른 참상을 보게
된 닐스는 이것이 강도에 의한
살인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오토바이
키와 일부 물품들을 호수 속에 던져
버리고 피가 티 옷가지들을 챙겨서
걷다가 구멍이 뚫린 바위를 발견하고
그곳에 전부 쑤셔 넣는다 살해
과정에서 피가 잔뜩 튄 자신의 신발도
이때 같이 바위 속에 넣는다 다시
텐트로 돌아온 닐스 세포와의 싸움에서
입은 터부 선가 연이어 벌어진 난투
국으로 인해 그 또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자신이 죽인 친구들 위해
쓰러지며 의식을 잃는다이 모든 것은
경찰 책에서 임의로 재구성한 사건의
전말 있니다 S4 지방 법원은 경찰이
조사한 혈액 샘플 DNA 분석을 통해
나타난 추가 정화 밀스와 마일리 간의
인과 관계 등을 검토하고이 같은
주장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는데
2004년 4월 2일 닐스 게는
세권의 살인 혐의로 구성 명령이
내려졌고 그는 곧장 체포 되었죠 대구
민족 관심 하에 다시 시작된 조사
새로운 용의자 그리고 재판 포 지방
법원은 검찰측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닐스 구스타프 손에게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하지만 닐스는 혐의를
부인하고 기각을 요청했는데요 뒤이어
닐시 측의 반박이 이어졌죠 검찰이
주장한 사건의 정황이 사실상 상상에
의한 재구성이라는 것이 닐스 측의
주된 반박 의견이었습니다 DNA
분석과 새로운 조사 결과 등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닐스 의
범행은 사실상 입증할 방법이나 증거가
없었는데요 닐슨은 당시 상황이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증언하였습니다
검찰측의 주장은 말도 되지 않은
억지입니다 턱뼈와 광대뼈 관자 노래가
둔기에 의해 부서지고 심각한 뇌진탕을
겪던 당시의 닐스가 500m 멀쩡이
걸어 바위 속에 증거를 인멸하고 다시
텐트로 돌아와 자신도 피해자인 것마냥
그들 위에 누웠다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닐스의
변호사 측은 세포와 닐스가 다툼을
했다는 증거도 닐스가 마일리를 강제로
범하려고 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검찰측은 닐스가
입은 부상의 정도가 죽은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고 그 타격 부위가
유일하게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세
명의 의사를 증인으로 세우며 날선
공방을 이어갔는데요 닐스게 혐의가
제기된지 1년 반이 지난 2005년
10월 7일 에스포 지방 법원은
닐스게 제기된 모든 혐의를 기각하였고
닐스 구스타프손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이 주장한 닐스의
분노는 사건의 올바른 해석이라 볼 수
없으며 제시된 증거 또한 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검찰측에서
범행 당시 닐스가 신고 있었던 것이라
주장한 그의 신발 속에서도 마일리의
핏방울이 발견되며 범행이 이루어진 때
적어도 이들네 명 중 누구도 닐스의
신발을 신지 않았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닐스는 1년이 넘게
이어진 재판으로 인한 자유 상실
자신을 살인범으로 원 간 경찰과
검찰측에 대한 정신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하였는데 국가는 이러한 보상
요구가 합당하다고 판단하였고 그에게
44,900 유로 당시 기준으로
1억원 상당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유일한 생존자였던 닐스가 44년이
지나고 나서 사건에 진범이 될 뻔한
해프닝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그에
대한 혐의가 불린 후에도 밀스를
제대로 조사해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이는 그가 조사 과정 중
내뱉은말 때문이었는데요 닐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직후 그는
수사관에게 의미 심정한 말을 하나
했다고 하죠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저는 아마 15년 형을 받게
되겠죠 당시이 말을들은 수사관이
이것이 닐스의 자백 발언이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재판장에 들어선
닐스는 수사관에게 이런 말을 한
용이가 무엇이냐는 검찰측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현 상황에 대한 자책성
농담이었습니다 것이다라고 답하였고
닐스의 해당 발언 는 정식 수사
일지에는 기록되지 않은 말이었기에
법원 또한 해당 진술의 진의와 맥락이
불분명하다고 판단 유죄 진술로
채택하지 않았죠 결국 사건은 64년에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보돔 호수 살인
사건은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조사된
범죄 사건이기도 한데요 사건의 진실에
드리어진 두터운 장막은 아직도 거쳐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죠 몇 년 전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습니다 이것은 보돔
호수 사건 피해자들의 장례식때 찍힌
사진인데요이 중 중앙에 보이는 남성이
닐스의 최면을 통해 그려진 몽타주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었죠 그가 한스
아스만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아스마는 아이들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진속
남성은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고 있는
바로 그 남자였을 그요 아니면 그저
소년 소녀들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식을
찾은 지역 주민이었다 20세기 말
그때까지 도 사건을 놓지 않고
조사하던 수사관들은 이불 무아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사건의 진범을 밝혀낼 수
있는 위한 방법은 그가 자백하는
것뿐입니다 핀란드 최악의 미제라
분류는 보돔 호수 살인 사건 그
진실은 지금도 차가운 호수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기묘한 밤이었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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