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불길이 36명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던 최악의 참사 '교토애니메이션 방화사건' [사건사고]

기묘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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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망상은 악마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미스터리 #일본 #사고 #애니메이션
2019년 7월 18일 일본 교토에 위치한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사망자는 총 36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났던 방화사건 중 가장 많은 희생자였죠.
1978년 사이타마에서 태어난 아오바 신지.
그의 인생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이혼을 하게 되며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대상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손지검은 아오바와 그의 형 여동생으로 향했고 업친데 덮친 격으로 트럭 운전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당뇌에 걸려 실직하고 마는데요.
중학생이 된 아오바 신지는 웃음을 잃어버린 채 교실에서 걷도는 아이로 변해버렸죠.
고등학생이 된 아오바는 낮에는 사이타마 청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 10만엔을 벌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업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형제의 몸이 커진 이후 더 이상 폭력을 휘두르지 않게 된 아버지는 어느 정도 병세가 호전되어 택시 운전사로 재취업했으며 형과 여동생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였는데요.
그러나 아오바 신지가 21살이 되던 해 업무 도중 교통사망사고를 일으켜 실직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게 되죠.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아오바 신지는 일을 모조리 그만두고 히키코모리가 되어 방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서서히 정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한 그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놀고 있던 여성에게서 강제로 속옷을 훔치거나 좀도둑질을 하는 등 범죄의 길에 들어서는데요.
그러던 2009년 31살의 아오바 신지는 인기 애니메이션 스즈미의 하루위의 우울을 우연히 접하고 커다란 감명을 받게 되죠.
그 과정에서 스즈미의 하루위의 우울에 애니메이션화를 담당한 인기 애니 제작사 교토 애니메이션에 동경을 품게 된 아오바는 해당 회사의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을 목표로 소설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 니찬 내루에 깊게 빠진 그는 황당하게도 교토 애니메이션의 여성 감독과 활발한 교류를 나눈 끝에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는 망상에 빠지게 되는데요.
2012년 방영된 교토 애니메이션의 빙과에서 왜 얼굴을 안 보여주는 거야라는 대사를 보고 이것이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비밀 메시지라고 착각할 정도로 망상이 점점 악화되던 중 아오바 신지는 주거침입, 강도, 총포도건법 위반 등 또다시 범죄들을 저질러 3년간 감옥에 수감되죠.
감옥 안에서 1년 후 작가 데뷔, 5년 후 집구매, 10년 후 나를 비웃은 모두를 고소라는 인생 계획을 세운 그는 2016년 출소하자마자 공모전에 소설을 제출하였습니다.
다음해인 2017년 낙선 통지가 도착하자 아오바의 망상은 피해 망상으로 바뀌게 되는데요.
나의 명작이 심사에서 떨어졌을 리가 없다. 내가 니찬 내루에 작성한 게시물에 변태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것은 내가 여성감독의 사진을 사용해 성욕을 해소했던 일이 들켰기 때문이다.
그 일 때문에 나를 배신하고 낙선시켰구나 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구조로 진행된 아오바의 망상은 이웃고 자신의 소설을 교토 애니메이션이 표절했다라는 분노로 발전하고 맙니다.
그 하나하나가 전부 말도 되지 않은 피해 망상에 불과했지만 그의 분노는 광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치달아 있었는데요.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2019년 7월 15일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향한 아오바 신지는 교토 애니메이션에 도착해 정찰을 시작합니다.
시간을 들여 주변 환경을 철저하게 파악한 그는 3일 후인 7월 18일 발전기에 사용할 것이다 라는 변명으로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 40리터를 구매하는데 성공하는데요.
오전 10시 31분 손에 든 양동이에 휘발유를 가득 채운 채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정문으로 당당히 진입한 아오바 신지는
그들과 약 3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성큼성큼 걸어온 아오바는 느닷없이 양동이의 내용물을 마구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는 찰나 죽어라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불붙은 라이터가 여성 사원에게 날아 들었는데요.
바닥에 흩뿌려진 10리터의 가솔린 실내를 메우기 시작한 유증기가 폭발하며 순식간에 모든 것이 타올랐죠.
3층 규모의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는 내장재로 목재를 주로 사용하였고 층과 층을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놓은 구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재를 재료삼아 맹렬하게 타오른 불길은 100도가 넘는 온도에 시꺼먼 연기를 대량으로 생성했고 이 연기는 불길과 혼합되어 나선형 계단을 따라 소용돌이 치며 위층으로 상승했는데요.
화재 발생으로부터 2분이 경과한 10시 33분, 눈앞은 온통 깜깜하고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느껴지는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도 주기적으로 소방 훈련을 받아왔던 직원들은 전화기를 붙들고 화재를 신고함과 동시에 제각기 피난을 게시했죠.
10시 35분, 2분 사이에 쏟아진 22건의 신고를 통해 상황 정보를 종합한 교토시 소방본부가 각 소방서에 일제히 출동 지령을 내립니다.
10시 40분, 평소라면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단 5분 만에 주파해 온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는데요.
눈앞에 참상해 경악한 소방대원들은 본부에 증언을 요청한 후 그 즉시 부상자 구조와 화재 진압에 착수했죠.
소방차와 구급차 총 111대, 소방대원 400명을 비롯해 교토시 전체에서 가영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섭게 타오른 불길은 화재 발생 단 7분 만에 생과 사의 운명을 결정지어 놓았는데요.
10시 55분, 불길이 잡히길 기다렸다가는 모두가 죽고 말 것이라는 판단하에 소방관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죠.
조를 이루어 교대에 가며 점차 수색 범위를 늘려가는 식으로 1층과 2층에 도달한 소방관들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 희생자들과 마주칩니다.
1층에서 2명, 2층에서 11명, 13구의 시신이 더 훼손되기 전에 밖으로 운반되었고 타 소방서에서 증언된 소방관들이 계속해서 내부로 진입했는데요.
오후 1시 45분, 헬기 등의 장비를 동원해 옥상 진입에 성공, 출입문을 개방한 소방관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통한 신음을 흘렸죠.
옥상을 향하는 계단에 20명의 시신이 줄지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질식, 이산화탄소중도, 소사 등의 다양한 사인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옥상을 향한 안타까운 자세로 굳어있었는데요.
오후 3시 19분, 가까스로 화재 진압이 마무리되었죠.
소방관들이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화재의 진행이 너무나 빨랐던 탓에 화재 발생 직후 탈출한 인원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말았던 것인데요.
교토 애니메이션이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죠.
당시 출근해 있던 74명의 직원 중 살아남은 것은 나선형 계단에서 먼 쪽의 2층 베란다로 달려가 뛰어내린 25명.
아오바 신지가 불을 지른 그 순간 현관으로 내달린 1층의 2명, 1층 화장실로 도망쳐 창문으로 탈출한 3명 등 41명이 불과했습니다.
불길이 너무나 거셌던 탓에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사실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화상을 입고 말았는데요.
3명이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으며, 35세의 한국인 여성 스태프 역시 전신에 2에서 3도 화상을 입고 커다란 수술을 받아야만 했죠.
교토 애니메이션은 외주나 계약직에게 작업을 거의 맡기지 않고 대부분의 작업을 정직원을 통해 자사 내에서 처리한다는 업계 내에서 매우 특이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커다란 도움이 되어왔었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악재로서 작용하게 되었는데요.
니시아 후토시
교토 애니메이션 대표작들의 캐릭터 디자인과 총작화 감독을 담당했던 간판 애니메이터, 향년 37세.
이케다 쇼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도라에몽 동화가, 이누아샤 작화감독으로 활동하다 교토 애니메이션의 창립 멤버가 되어 대부분의 작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거물 애니메이터, 향년 44세.
키가미 요시지
극장판 도라에몽, 아키라,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등의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으며, 손그림만으로 회전 연출이 가능해 교토 애니메이션의 명성을 드높였던 천재 애니메이터, 향년 61세.
타케모토 야스 1호
짱구는 못말려, 포켓몬스터, 이누아샤 등 여러 명작들의 동화와 원화를 담당하고, 감독으로서 교토 애니메이션의 대표작들을 제작한 핵심 인력, 향년 47세.
저마다 한 분야의 탑으로 불리는 핵심 인력들이 모두 회사에 출근해 있었기 때문이었죠.
심지어 교토 애니메이션은 자료 유출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자료를 하드디스크 내에 보관해두고 있었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막기 위해 복사본을 다른 스튜디오에 보관해두긴 했지만, 미처 복사하지 못한 자료와 원화들의 양이 상당했는데요.
직원 중 총 36명이 사망하고, 생존자들도 시력, 연구소실, 신체 절단, PTS 등의 커다란 부상을 입은 데다 사망자들이 작업했던 데이터들 역시 불타 사라진 것이었죠.
한편 이 모든 재앙을 불러온 아오바 심지 역시도 커다란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범행 직후 다리에 불이 옮겨 붙자 아오바는 밖으로 뛰쳐나가 인근 가정집의 초인종을 마구 누르며 살려달라고 절규했는데요.
화재가 발생한 순간 현관으로 달려나갔던 교토 애니메이션의 남성 사원 2명은 화상을 입은 몸으로 비틀거리며 범인을 쫓았고, 얼마 후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인근 주민의 도움을 받고 있는 아오바를 발견해 붙잡았죠.
휘발유를 뿌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도 기름이 묻었던 탓에 아오바는 전신에 93%의 삼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닥터 헬기를 통해 오사카 킨키 대학병원에 이송된 아오바 심지의 주치의를 맡게 된 우에다 타카이로 교수는 이 자가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을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요.
예측 사망률이 무려 97.45%에 달할 정도로 소생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의료진의 목표는 확보했죠.
신체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8cm의 정상 표피 조직을 배양, 총 5번에 걸쳐 이식한다는 세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치료법이 시행되었으며,
심각한 화상을 입은 아오바 심지가 저체온증에 빠져 사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수술은 28도 이상의 온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아오바 심지가 살아나게 되는데요.
증언을 할 수 있도록 기관절개술을 통해 발성 능력을 회복시킨 아오바 심지가 내뱉은 첫 마디는 뻔뻔하게도 목소리가 나와 다시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였죠.
기쁨에 눈물을 흘리던 것도 잠시 아오바는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라며 재화를 거부합니다.
사형이 선고될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저지른 죄에는 똑바로 마주해야 할 것 아닌가 우에다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일갈했는데요.
그 말을 들은 아오바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이라 대답한 후 천천히 재화를 시작했죠.
2020년 5월 27일 생명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된 아오바 심지가 경찰에 체포 구속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그의 범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요.
경찰의 심도 깊은 조사에도 아오바 심지의 주장은 변하지 않았죠.
교토 애니메이션이 내 작품을 표절했다. 그래서 직원 모두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결심했다. 문이 잠겨 있다면 부술 생각으로 망치도 함께 준비했었다.
2명 정도로 사형이 내려지는가? 유죽에 대한 사과는커녕 방화로 2명이 사망했다면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지를 궁금해할 뿐이었는데요.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 36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하자 아오바는 그럴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며 크게 당황하고
사형을 직감한 듯 두려움에 빠졌다고 하죠. 남은 것은 아오바 심지에게 책임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었습니다.
2023년 9월 5일 열린 공판에서 예상대로 아오바와 그의 변호인은 심신 상실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아오바는 예전부터 망상을 비롯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었다를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는데요.
재판에 참가한 유족들은 분노와 슬픔을 애써 삼키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죠.
내 딸은 당신이 공모전의 소설을 제출한 한참 이후에 입사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의 이케다 쇼커는 당신의 타겟이었습니까?
개인이 아닌 교토 애니메이션 전체를 목표로 했습니다.
뻔뻔하게 대답을 이어가던 아오바는 이어지는 질문에 순간 말문을 잃었습니다.
제 아내에게 가족, 특히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첫 번째 공판이 종료된 이후 검찰과 변호인의 요청으로 정신감정이 시행되었는데요.
양족 의사는 몇 달간 의견을 주고받으며 철저하게 아오바의 정신을 감정했죠.
범행의 주된 요인은 소설이 공모전에서 낙선하며 생겨난 개인적 원한이다.
교토 애니메이션이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망상은 피구의 분노를 강화했을 뿐
또한 피구는 약 8개월간 철저히 범행을 계획했으며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에 존재한 합리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를 통해 그가 선악을 판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판단
범행 당시에 피구가 완전 책임 능력을 가진 상태였다고 인정한다.
2024년 1월 25일 정신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교토 지방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립니다.
피구는 견고한 살이에 기초한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행으로 36명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았다.
공모전 낙선은 교토 애니메이션의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었으며
피구의 소설을 도용했다는 건 역시 망상에 불과하므로 범행에 대한 모든 책임은 피구에게 있다.
또한 제1스튜디오는 건축기준법을 비롯한 법령에 따른 방하대책에 이뤄졌기 때문에
나선 계단 등의 구조가 화재에 확대해 미친 영향에 피구의 형사 책임을 줄이진 못한다.
수많은 유명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던 교토 애니메이션의 사옥이 전소되고
많은 직원이 희생된 피구의 범행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모방범이 생길 우려 역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상의 이유로부터 균형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피구에게 법이 정하는 가장 무거운 극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한다.
피구의 성장 배경, 범행에 이른 경위, 정신장애, 한성문 등을 최대한 고려해도
사양을 회피할 수 있는 사정은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 지어 피구 아오바 신지를 사양에 처한다.
사양 선고를 받은 아오바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구 울부짖으며 저항하다 그대로 퇴정 조치를 밟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다음날 아오바 신지는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제출했죠.
일본은 1968년 권총으로 4명을 살해한 나가야마 노리오 사건 당시
극단적인 심신상실 상태가 아닌 한 4명 이상 살해한 가해자는
무조건 사양을 선고한다라는 나가야마 기준을 제정한 바 있습니다.
이 기준은 제정 이래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기 때문에
아오바 신지가 받게 될 결과 역시 뒤바뀌지 않을 것인데요.
다만 재판 과정상 아오바 신지가 최종적으로 사양을 선고받게 될 날은
최소 수년 후에나 오게 될 것으로 보이죠.
한편 해당 사건으로 인해 소중한 직원이자 회사의 귀중한 재원이었던
핵심 인력들을 대부분 상실하게 된 교토 애니메이션은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애플의 CEO, 팀쿡, 디즈니, 니켈로디언, 캐나다 총리 등
각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쏟아졌는데요.
일본 정부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가솔린 판매 규정을 강화할 것임을 공표하거나
어도비 측에서 애도와 함께 5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각종 대책과 후원이 마련되었지만
교토 애니메이션의 전망은 비관적이기만 했죠.
그러나 아픔에 굴하지 않고 사고 이전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범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라는 일념하에
PTSD와 부상을 견뎌내며 직원들이 다시 일선에 복귀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을 키우게 만들어 주었던
교토 애니메이션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애니메이터들의 지원서 역시 쏟아졌는데요.
그 결과 사고로부터 1년이 경과한 2020년 9월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사건의 여파를 완벽히 이겨낸
아름다운 작화를 선보이며 영화관에서 상영되었죠.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인 이시아라 타치아는
코바야신의 메이 드래곤의 후속작을 제작하던 중 사망한 제자
타케모토 야스유로를 대신해 본인이 직접 감독에 취임하기도 했습니다.
제자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열정을 쏟아낸 이시아라는 모든 작업물이 유실된 상황에서
전작을 뛰어넘는 품질의 후속작을 제작해냈는데요.
추모의 뜻으로 스테프 롤의 시리즈 감독으로
제자의 이름을 올린 이시아라는
그의 연출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스승인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소외를 밝혔죠.
현재의 교토 애니메이션은
사건의 참혹함에서 점차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헛된 망상이 만들어낸 끔찍한 사고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묘한 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