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결혼 못하는 스님, 신부님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ㅣ지식인초대석 EP.21 (성진 스님, 하성용 신부님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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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을 지금 혼자 살고 계시는
거잖아요 가족이 없이 해발 450에
산에 들어가서 아무런 매스 미디어를
보지도 못하고 없어요 그냥 불빛이
없어요 외로워서 힘든게 아니라 오히려
저는 더 건강해지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혼자 지내기 때문에 가장
좋은
거는 안녕하세요 한석 준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그 외로움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신
분들과 오늘이 시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스님도 그렇고 신부님도
그렇고 되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공부도
필요하고 수행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교구에서 설립한 신학교를
가야 되고요 신학교를 가게 되면 거의
10년의 과정을 다녀야 되고요 그리고
이제 시험 가야 되고 시험에서 이제
성적이 안 나오면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제 퇴 되는 거죠 스님들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희는 이제
기본적으로 인턴 같이 행자 기간이라고
해서 그 기간이 이제 6개월을 한
후에 스님으로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한 21일 정도에이
사람이 6개월 동안 승려가 될 수
있는 기본 자지를 어느 정도 최대한
익혔나 테스트를 해요 그때 이제
시험도 치고 과연 스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존적인 이런 행동들이 바뀌어
있나 그걸 나오고 나면은 이제
승가대학 동국대학교든지 중앙승가
대학이라 해인사 통도사 이제 그
4년을 마춰야 됩니다 그럼 이제 정식
이제 스님이 됩니다 그리고 그 4년을
마친 이후에 6년 동안 동안 절에
가서 소인 그 책임을 맡아서 포교
라든지 대학원 공부 라든지 그래서
석사 박사를 받거나 6년 정도 하면
10년이 딱 맞춰지면 그때서야
스님으로 할 수 있는 완전한 자격 즉
뭐 사찰의 주지라는 소임을 볼 수도
있고 성직자가 되려면 어느 종교든
10년은 수행을 해야 되는 거거든요
하셨던 여러 가지 공부나 수행 중에
가장 어려웠던 거 있습니까 저 같은
일반인이 볼 때는 스님들은 왠지
산에서 막 사슴이랑 호랑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절벽에 폭포 막 떨어지는데
그런 막 상상이 들거든요 호랑이가
나오면 큰일 날 일인데 환경 자체가
아무래도 큰 사찰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좀 그런 사찰들이 산사이
있으니까 근데 실제 그 살 때는
스스로들 잘 모릅니다 가까 저희가
농담 신부님 공참 이제 담 넘어가면
밖에 나갈 수 있지만 저희는 공을
아무리 세게 차도 담을 넘길 수가
없거든요 왜냐면 일주문에서 스님님
숙소까지 평균 한 1km 이상 떨어져
있으니까 그거를 넘길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뭐 그래 봐야 뭐 개국에
떨어지거나 그런 공동체 속이 살기
때문에 사실 그 환경에 대한 적응은
금방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더
편하기도 하고 가장 힘든 것은 자기를
다스릴 때 가장 힘든 거죠 출가를
했지만 과정 속에서 다스려지는 건데
수많은 감정에 노출를 내기도 하고
실수도 하게 되고 부끄러움도 갖고
남들 하 절하는데 힘들지 않아 그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기 때문에
헬스를 그 무거운 걸 제가 볼 때
죽기 힘들 그 자기 좋아서 이렇게
하잖아요 그처럼 내가 원해서 하는
거는 땀은 나고 근육이 아플 수는
있어도 그게 고통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죠 그 왜 10배라는 얘기하잖아요
몇 배까지 해보셨어요 저는 출가
순간부터 저 인사 선생님 하루에
1080회 시켜 가지고 그거를 이제
밥 먹고 그냥 하는 거야 두 시간 두
시간 두시간 하루에 세 번 두 시간씩
나누면 금방 합니다 108배 하는데
이제 13번에
끊거나 하고 그러면 깨달음이 오나요
아니 그거 관계 없 다리가 아픕니다
그거 왜 하는 거예요 그지 하면서
알게 되는 거죠 인간의 감정이라는게
얼마나 하차는 가 내가 엄청나게 막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어 내가 저거
해결했네 하지만 딱 저를 했어요 한
300배 넘어가는 순간 숨 차거든요
무릎이 아파요 기억도 안납니다 야
이게 1500배 가도 내 머릿 속에
누구 싫고 좋은게 안들을 정도로
인간은 그런 거에 내가 붙들고 앉아
가지고 한 자신이 엄청 부끄럽죠
3천배를 한 일주일 하면은 웬만한 건
사라집니다 그 절 하시다가 숫자
잊어버릴 적은 없습니다 어 제가
예전에 이제 사님이 하루에 1080배
바나 경전의 222편 천수경을
12번을 읽어야 돼요 그걸 다하면
솔직히 잠을 거의 못 잡니다 천수경을
121번 읽으면 시간 걸리거든요 근데
그게 졸려서 한 자리 읽을 수가
없어요 앉으면 졸리니까 서요서도
졸리면 이제 걸어다녀요 그러다가 이제
앉아 앉으면 그 찰라에 잡니다 그때
이게 떨어뜨렸을 때 어 이건 진짜
정말 이게 억장이 무너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기서 나의 양심으로
그래나이 시간 쯤이면이 정도는 했겠지
그래서 잡죠 잡는데 그날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왜냐면 이게 100일
하기로 했는데 45일째 이랬어 끝나도
마음에 이게 굉장히 짐이 돼 가지고
그러면 이제 다음에 할 때 두 개씩
계수 좀 더 많이 하고 읽고 하고
이런 식으로 합죠 카톨릭 사제 교육
중에는 뭐가 제일 괴로우니까 신학교를
주로 군대의 비유를 많이 하거든요
굳이 이거 군대에 비유하는 이유는
교도소는 아예 자유가 없잖아요
신학교는 일반 대학이랑 똑같거든요
그니까 학기 중에는 기숙사 생활하고
공동 생활하고 자유가 없는데 방학때는
무한대의 자유가 주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면 자유를 한번
맛보니까 그 자유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큰 겁니다 더군다나 이제 서울신학교
같은 경우에는 도심한복판에 있어요
그니까 다른 신학교들이 절처럼 약간
산속에 있거나 허볼 판에 있거든요
근데 이제 서울신학교 대학로 바로
위에 있습니다 예 그래서 이제
대학로에서 이렇게 보면 거기가 땅값도
비싼 다니까 거의 껌껌한 데가 있을
수가 없어요 근데 껌껌한 데가 이제
신학교 든요 그래서 이제 저희가
신학교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를
남한 왜 북한처럼 불이
없어요 남한 또는 라스베가스 얘기를
하거든요 하니까 근데 이게 예를
들어서 내가 한 3 4일 전에 저기서
막 너무나 자유롭게 지냈고 이러는데
내가 여기 지금 이러고 있는게 그게
너무 힘든 거죠 자유를 맛 봤다가
자유가 없어졌다가 이런게 이제
한편으로 그게 힘든 거고 또 힘든
거는 10년 동안 평가를 받는
거잖아요 나는 너무나 하고 싶고 나는
이게 좋은데 혹시라도 이제 평가를
잘못 받게 되면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못 하게 된다라는게 한편으로
또 힘든 거죠 이제 두 분이 불교와
천주교의 성직자 신 거잖아요 근데 딱
두 종교가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하지
말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유가 있습니까
불교는 근 현대에 들어와서 결혼할 수
있는 분들도 있죠 그러나 불교가
처음에 창 시대가 될 때 인도 당시의
풍습이 수행자의 삶은 가족을 떠나야
되는 것이고 부처님도 이제 가족을
떠날 때 이런 말을 하거든요 제가
찾고자 하는 마음의 평등 평화는 나의
것이 있었을 때는 찾기가 어렵다 즉
진정한 평등이라고 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에 가지고 있는
애착을 조금은 또 놓아 갈 때
가능한데 가족에 대한 애착은 쉽게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예 결혼하면
깨닫지 못한다 이런 것은 아닌데
그래도 결혼이라고 하는 과정 속에서는
스스로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수행의
시간을 갖거나 하기가 너무 어렵다
가족에 책임이 있잖아요 그 책임과
수행자의 삶의 길이 매우 양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독신의 선택의 길로
가는게 낫다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럼
천주교는 저희 같은 경우는 이제
교회법적으로 는 독인데 11년
이전에는 평 사제로 평생 살 거면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결혼을 근데
주요 이상의 고의 성직자가 나는 되고
싶으면은 그건 독신이 되고 그랬는데
1100년 이후부터는 무조건 다
독신으로 바뀌게 됐는데 이제 그
이유는 세습 문제예요 조금 속된 말로
하면은 지금은 아예 다 못 가지게
되니까 아예 욕심을 안내는 거죠 내게
있으면은 내 자식한테 아무래도 좋은
걸 주고 싶은게 생기잖아 그니까
그리고 이제 스님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일상적인 어떤 문제에서 가장
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게
가져오기에 대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불교도 그렇고 천교도 그렇고
독신을 채택하게 된 거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어떤 장치를
마련해 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저 두 분은 뭐 연애하 적이
없으십니까 있죠 당연히 왜요 왜 아니
그니까 사제가 되기 전 깜짝 지금
저는 기본적으로는 오히려 사제 아니면
수도자는 사랑의 마음이 더 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커야 된 그니까 오히려 사제나
수자기 때문에 너무 이성에 대해서 막
이렇게 거부감이 있거나 사랑에 대한
마음을 오히려 죽이는 거는 왜곡된
사랑에 대한 인식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니까 모든게
감정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게 오히려 저는 더
건강해지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희가 이제 사제들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만 사랑하거나 한
사람만 사랑받을 순 없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이게 건강한
사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스님은 어떠세요
스님은 뭐 연애하 적 없으십니까 저는
이제 22 4대 대학교 3학 때
출가를 했기 때문에 다 그전에 당연히
뭐 만나기도 했었고 22대 젊은
나이에 해발 450에 산에 들어가서
아무런 메스 미디어를 보지도 못하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시간 개념
없이 그냥 이렇게 계속 계속 계속
지나가는 때 보게 되면은 진짜
새소리도 어떨 때는 폐부를 찌를 때가
있거든요 이제 당연히 저는 종교인이
된다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냐 없냐
그래 말씀대로 계율에 대해서 칼날
갖고 이렇게 하는 스님들이 10년
뒤에 가면은 못 만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부러진다는 거죠 왜냐면은
되는 순간부터 아스팔트가 이게
내어지는게 아니라 스스로 그 한 길
한 길을 가면서 많은 시간을
이겨내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고 그
과정을 결치 유연함이 그지 내가
어떻게 이걸 이겨내야지 아는 것이
없이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고 또 되기도 힘들고
주분 얘기를 듣고 있으면은 정말
힘들었겠다 싶은 것이 수십년을 지금
혼자 살고 계시는 거잖아요 가족이
없이 그 외로움을 그냥 견디는
것조차도 그 성직자의 삶에 일분 건지
그거 되게 궁금하거든요 있죠 그러니까
제가 이제 25살 때인가 도시에서
살다가 한 순간에 이제 진짜 정말
전북 완전 시골에 가서 살았는데 새벽
3시 반에는 눈이 엄청 온 거야 눈이
너무 내려서 그럼 이제 도량석이라고
혼자 스님들 온 대중을 깨우기 위해서
이제 목탁을 치면서 이제 차를 돌아야
돼요 그때 이제 눈이 이제 무릎까지
빠지면서도 이렇게 가요 근데 이제
춥기도 추운데 없어요 그냥 불빛이
없어이 산에 목소리라고 내가 내뱉는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거든요 그럴 때이
극한의 혼자임을 느낄 팍 날라옵니다
그때도 이제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염불을 한 적이 있어요 법당 불 딱
촛불 키우고 가로등불이 하나 정도
있는 상태에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거야 이게 근데 그때 항상
이제 은사 스님 이런 말씀하시죠
수행자는 그 순간을 느껴야 지만이
인간의 가치를 한다 그 삶의 가치도
알고 존재의 가치를 극한의 외로움
속에서 내가 어떻게 나를 바라봐야
되고이 세상에 수많은 것들 얼마나
감사한지 알지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극한의 외로움이라는 이런 것은
종교적으로 매우 건강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전 봅니다 제가 출가해서 한
5년은 가요를 들릴 수가 없어요 거의
마을에 못 내려가는데 정말 뭘 사야
대해서 사 허락을 받고 내려가는 데
내가 익숙한 대학때 들었던 가요가
나오잖아요 심장이 반응합니다 이게
감정의 반응이 아니라 심장이
반응합니다 진짜 새 소리에도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시간들 다 겪지 천주는
어떠세요 근데 이제 기본적으로 교고
사제는 절대 외로울 수가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보통 서울교 같은 경우에는
10000명 중에 신부님 한 명이든
10000명을 그 시간 안에 만나야
되는 거니까 외로울 틈이 거의 없고요
오히려 가끔 주어지는 외로움이 되게
감사합니다 그 외로워서 힘든게 아니라
너무 이제 사람 사이에서 지내다
보니까 혼자 있을 때 그 시간의
소중함을 오히려 알거든요 또 그걸로
리프레시가 돼서 사람들을 만나는 그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근데 신자분들
이렇게 만나고 이렇게 보면은
가족이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뭐
이렇게 관계가 안 좋을 수도 있고 뭐
바빠서 수도 있고 가족이 없는 것처럼
사는 분들이 많잖아요 근데 이제
오히려 저희 같은 경우에는 동기
사제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왜냐면은
저도 형제가 있지만 집에 가면은 저
빼고 나머지는 다 공통 관심 사를
얘기를 해요 건강에 대한 얘기 집에
대한 얘기 차에 대한 얘기 저희는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근데 동기
신부님들을 만나면 신학교 때부터 거의
죽을 때까지 똑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가족은 스타일도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를 케어해 주거나
저희 얘기를 들어 줄 수 없지만
동기들은 스타일이나 삶의 방식이
똑같기 때문에 훨씬 더 가족적인
의미가 훨씬 더 크죠 두 분께서는
이제 성직자이기 때문에 출가를 해서
어떤 곳에 가시고 거기서 같은 성직
자 동료들을 가족으로 삼으면서 생활
하시는 거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요새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 일반적인
사람들도 어떠한 연휴로 혼자 지내는
사람들도 많고 아주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들도 있단 말이에요 제가 꼭
드리고 싶은게 저희들이 어떤 그
독신의 삶을 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나라는 거야 싫고 좋음으로
가리지 말고 누군가가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은 다가가서 그 시간 안에
쏟으라는 건데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라
이제 사회 생활 하지 만 관계에서
겪는 아픔이라 그지이 고통 때문에
관계를 끊어서 혼자 두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님들도
저는 혼자 수행할 거고 어른 스님들
허락을 받아야 돼요 수행도 많은 사람
속에서 공부를 해야 제대로 공부가
되지 혼자 저 굴 파서 난 살 혼자가
절대 처음에 안 보냅니다 여시
지내는데네 마음을 못 다른 사람이
혼자 가서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니이
관계속 스스가 다스려지는 거야 못
하게 합니다 하 수행도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관계를 끊어서 간다는
거는 너무나 위험해요 하루에 잠시
10분만 가서 도와줘도 너무
감사하다고 고마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데 남이 나를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손만 내밀면 내
손에 뜨거움을 따뜻함을 잡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걸 내가
잃어버리는 거죠 그럼 혹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좋은 것도 있을까요
혼자 지내기 때문에 가장 좋은 거는
시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게
제일 좋기 시죠 기본적으로 꼭 해야
되는 정해진 시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그 외에 나머지 시간은
어떤 식으로 쓸 수 있든지간에 저한테
무한대의 자유가 주어져 있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좋은 거죠 왜냐면 눈치를
보거나 뭔가를 해 줘야 되거나 그런
건 없으니까 보통 분들이 의외로 혼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근데 저희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거는 그만큼 감사한 일인 거죠 저도
요새 말하기 관련된 강의도 많이 하고
있고 인간관계에 대한 강의 많이 하고
있는데 참 요즘 사람들이 그 인간
관계에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그러더라고요
혹시 성직자의 삶에서 인간 관계
때문에 어렵기도 합니까 성직자의
삶에서 제일 어려운게 인간관계입니다
저희가 무슨 뭐 노무를 걱정한다 그나
병원비를 걱정한다 그나 뭐 가족
부양을 걱정하지 않잖아요 그럼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살 때 그거 빼고 남은
건 인간관계 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제
성직자에게 인간관계가 왜 가장
어렵냐면 사람들이 성직 자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 모습을 내가
보여줄 의무가 있는 거니까 그니까
예를 들어서 성직자가 아니면 화내면
같이 화내고 싸우면 같이 싸울 수
있는데 성자는 그게 안 되니까 나의
어떤 본성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된다는게 좀 어려울 수가
있는 거죠 한편으로 인간관계가 제일
쉬울 수 있는 거는 어디에나 가나
이런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요 근데 이제 보통 사람 같은
경우는이 폭이 적잖아요 그니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뭐 이런 사람이 다섯
명 면 저희는 그 폭이 넓으니까 이런
사람이 이만큼 있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만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 관계에서 큰 힘을 받기도 하죠
어떠세요 인간관계 비슷합니까 그죠 뭐
오는 사람 안 맞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고 이제 절 집안에 용어가
있는데 엄청 어려운 일이거든요 엄청
어렵죠 가는 사람한테 얼마나 미련이
남는데요 다이 스님들도 자기 성품의
한 모양세가 있잖아요 그 모양들을
항상 바라보면서 나의 성격이나 이런게
본성이 아니다 그건 내가 잘하면서
만든 거니 항상 이것을 부족한 거
찾고 바꾸려고 갈 때만이 된다라고
하는 전지를 알고 있으니까 그걸
노력하는 사람들이지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을 아예 그냥 받아들였다고 해야
될까 내가 어떻게 만들어 볼래 막
작용할라고 하는 부분에서 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렇게 조금 한 발짝
때릴 수 있다이 정도지 인간관계가
저는 쉬워요 저희는 이미 넘어섰어요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죠 그럼
신부님도 비슷한 차원에서 인간 관계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번
말씀해 주신다면 그 신자분들 중에서도
그런 고민하는 분들 되게 많거든요
자주 해드리는 말씀은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내가 취사 선택할 수
있는 거는 아니다 근데 중요한 거는
나에게 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왜
있지 왜 많지고 생각할 때 거기에
꽂히게 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좋은 사람들을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관계에서 어떤 것을 취사 선택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주로 많이 해 드리죠
그니까 사람이 뭔가에 꽂히면 나머지게
안 보이잖아요 그 꽂힐 때 사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아 내가 이런
놈들이 계속 나한테 꼬이는 거 보면
내가 문제야 그러면 안 되죠 그러면
그렇지 않아 는데 그렇게 내가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이 사람에게
꽂히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야 그 사람이 뭐 일부러
그렇게 어 예를 들어서 그러면 나는
뭐라고 생각하냐면 얘랑 얘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이제
점점이 한 명이었는데 둘 셋 넷 되고
결과적으로 혼자만 남고 아 나 빼고는
다 이런 놈들이다라는 식으로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 거죠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원래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으면 안 좋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 거지 내가
뭔가를 잘못했거나 내가 뭔가 실수를
해서 안 좋은 사람이 나한테 꼬이는
건 아닌 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제 소위 얘기하는
현명한 사람은 그 시행 착오를 덜하는
거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계속되는
시행 차고 속에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니까 힘들어하게 되는 거 아직은
못 깨달아서 사람한테 많이 상처를
받고 있거나 혹은 너무너무 고립돼서
외로움 속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자라고 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혼자가 되도록 스스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거든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혼자 두려고 하지
않아요 절대로 본인이 그거를 깨닫지를
못하면은 당연하게 역입니다 그니까
예를 들어서 아니 뭐 부모님이
자녀에게 이런 얘기 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근데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
부모님도 엄청 많아요 뭐 배우자니
배우자한테 이렇게 얘기해 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배우자 테도 그렇게
얘기 안 해 주는 분 엄청 많고요
근데 그거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은 자기가 스스로 계속 관계를
단절해 나가 근데 그거는 결코
당연한게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그
주일학교 아이들한테 제일 많이 해
주는 얘기는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거는 그 대상이 누구든 절대로 당연한
건 없다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내가
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주어지는 거지
부모님이 뭐 형이니까 뭐 친구니까
사랑해 주는거다 그런 거는 절대
없다고 얘기를 해 주는 거예
주님께서는 뭐라고 조원하 우리가 관계
속에서 단절을 느낄 때 상황들 들이
과거고 지금의 조금 차이는 있어요
많은 이제 젊은 친구들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저희가 잘하실 때보다 좀
많이 하는 거 같다라는 느낌을
감정적으로 봤거든요 그 이유가 오늘
이렇게 저희가 눈으로 보고이 시간을
가졌잖아요 그리고 집에 간 뒤에는
저는 신부님이나 우리 MC께서 뭘
하는지 몰라요 근데 지금은 신부님의
SNS 딱 보니까 다른 스님하고
만나서 더 많이 밥을 먹고 환하게
우슨 사진 하 다섯장 더 올려요 지금
시대는 그게 늘 확인이 되는 거야
난이 친구 분명 나를 최고의 친구를
생각했어 그리고 갔는데 내 사진 세
장 다른 사람 사진 여섯 장 이걸 딱
보면은 나는 뭐지 SNS 아는게 이런
식으로 주는 역효과가 있어요 여기에
너무 많이 노출이 됐죠 그래서 이제
오히려 저는 관계 외로움을 가질 때
첫 번째 항상 중요시하고 바라봐야
될게 너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너는 지금 너를 얼마만큼 정말 제대로
사랑하는 거야 왜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가 찾지
않으면 지금 환경에서는 늘 불안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얼마만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냐에 의해서이 관계를
버텨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나오지 관계 속에서 계속 그걸
찾아내서 얻을 내려면 너무 어렵습니다
지금 말씀에 너는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라게 나라는 사람을 한걸음
떨어져서 제 3제 시각으로 본다는
얘긴가요 보통 우리가 메타 인지라도
하고 불교에서의 그 선 명상이 그
메타인지를 극대화시키는 거예요 메타
인지적인 면을 딱 떼어내면서 일어나는
그 마음의 감정들 생각들을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는 힘 그 화가
나면은 자기 전체가 되어 버리면 이걸
제어할 사람이 없잖아요 근데 화가
나고 있는 나를 부분으로 볼 때는
이걸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이제
인지력이 그든 그 힘이 끝없이
길러져야 됩니다 그냥 트레이닝 그게
연습으로 됩니다 그 제가 요즘은 늘
만나는 분들한테 아니 헬스를 타민
하면은 마인드 코칭을 이틀 받아야
된다 지금은 당연한 감정인데 진짜이
감정이 나 욕구에 잡고 있는지
습관에여 잡고 있는 건가 또 다른
마음 마탕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욕구가
있는데 엉뚱하게 표현되고 있는 이런걸
이제 대화를 통한 코칭을 통해서 알려
해 줍니다 그래서 제가이 대학생
청소을 만나면서 대화를 하는 거야 널
어떻게 생각해 저는 겨고 못 생겼고요
키가 작고요 소심하고 전 재미가
없어요 그럼 다시 묻죠 그럼 네가 볼
때 네가 가장 작 상점은 뭐야 대답
못 하거든요 그걸 우리는 흔히에서
자존감이 낫다라고 표현을 해요 근데
이제 다시 대화를 하는 거죠 그럼
너는 학교에 몇 시에 가니이 친구
지각한 적이 없어요 장점이네요 내가
볼 때 네가 더 소심하다 하지만 그럼
나와이 코칭 시간 한번 늦진 적이
없다 우리가 자아가 형성될 때 자꾸
외부에서 해 준 말들이에요 너는 그래
너는 그래 그럼 그를 나는 루쿠 하러
가는 거 이상한 사람들 만나서 날를
아프게 했는데 내가 잘못됐나 문제를
그렇게 접근하면 잘못된 걸 떼버리면
끝나는 거야 이게 나만 비판하면 끝이
나 버리죠 잖아 정말 좋은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있었어 어 내가 좀 약하고 감정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관계로 신경을
쓰기보다는 나는 이쪽 영역으로 사람을
더 만나려고 노력해야 되겠구나 지금은
또 명상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보편화
했으니까 내 스스로가 나를 숨쉬고
있구나 내가 지금 걷고 있구나 내가
지금 발을 땅에 딛고이 있구나 이런
나를 내가 알아 차려야죠 그게 하나씩
하나 쌓이면 그게 메타 인지력과
메탈사가 생기는 거
자 그러면 제가 또 삐딱한 질문을
하나 또 드려보겠습니다 제가 가끔
인간관계가 인생 살면서 제일 중요하고
이런 내용에 영상을 올리면 거기에
댓글 달리는 것 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야 다 필요 없더라 돈만 많이 벌면
인간 관계는 다 따라오더라 돈이
최고다 돈을 정말 이제 많이 벌고
나면은 결국 나 때문에 있는게 아니라
돈 때문에 있는 사람인 거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돈과 내가 동의 시할
정도로 될 거 같으면 그분은 아마
관계에서의 행복은 아 모를 거예요
내가 오늘날 돈 안 쓰면 바로 싫어할
걸요 결국은 사람 때문에 돈의
필요성을 느낀 분이기 때문에 그
관계만 만족이 안 되죠 그럼 그렇게
계속 돈만 쫓는 삶은 어떻게 되나요
잠을 못 자요 예 왜요 좋은 침대
샀을 텐데요 잠을 못 자요 공허함
때문에 제가 그러잖아요 사람을 얻고
싶어서 돈의 필요성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은 알죠 그사 나를
10시간 만나고 내 옆에 웃고 가도
나를 좋아한 건 아니구나 그 허무함이
결국은 잠이라고 하는 혼자의 시간
안에서는 해결이 안 돼요 거의 마치
썰물이 들어왔다가 그냥 할 순간에
나가는 감정이 확 와 버리기 때문에
공황장애 우울증 불면증으로 가고
그다음날 눈을 떴을 때 다시 거기
집착하게 되죠 아데 너무 슬픈 건
지금이 영상에 댓글이 예상이 돼요
그런 공허함 느껴봤으면 좋겠다음 본
엄청 벌어서 그런 공허함 느끼고
저렇게 나 공허해요라고 말해 봤으면
이런 댓글 달릴 것 같아 그 공허함을
알아차리지 없을 정도로 지금 내가
진짜 아프고 힘든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소리니까 그걸 돈으로만 보고
있다는 거잖아요 허무해지고 공함을
채우기 위해서 도파민에 빠져야 되고
어리석은 거죠 마치 촛불에 나방이
뛰어드는 거와 같은 그건 이제
인지력이 저하되는 거죠 다양한 삶
속에서의 행복한 면을 보여 줘야
되는데 우리 사회가 그걸 자꾸 보여
주기보다는 그 위에 것들만 보여
주려고 하면은 같이 이제이 공동체가
아파지는 거죠 우리는 그걸 깨워 줘야
되는 거죠 신무 님은 어떻게 보세요
돈을 쫓는 삶 돈이라는게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갖고 있고 싶다고 해서
계속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이제 그게 하나만 목표가 됐으면
돈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되잖아요
그거를 깨닫지 못하면 너무나 슬픈
거죠 그게 그 한국 사회의 중년
남성은 돈과 직장을 잃는 순간 거의
대부분 인간관계가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 공허함이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되게 신기한 거는 특히 천주
교회에서 남자분들이 언제 세례를 많이
받냐는 그때 세례를 많이 받습니다
은퇴 그러니까 왜냐면은 이제 세상에는
내가 돈이 없잖아요 직업도 없고 근데
이제 성당은 거기서 좀 자유로워질
수가 있는 거니까 그럴 때에 많은
남자분들이 성당을 많이 옵니다 불교도
맞잖아요 남성분들이 딱 40대
후반부터 50대를 넘어가면서 이제
불교에서 이제 들어와서 이런 대화를
합니다 그전까지는 다 부인을 보내지
본인이 안 오거든요 신민의 전나이
사회 돈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피는 이미 다 안다
갑자기 생각나는데 신부님들은 수입은
어떻게 됩니까 수입은 이제 교구에서
정해진 월급이 있고요 근데 이제 그게
일반적인 삶의 기준으로 택도 없어요
처음에 서품 받으면 세전으로 150만
원이고데 그게 제 소위 얘기하는 일반
사람들 생각할 때 월급이 150만
원이고요 그 월급이 1년에 2만 원씩
올라갑니다 30년까지 그것도 30년이
지나면 안 올라가요 그럼 30년 되면
300만 원 되는 거 그렇죠 맥시멈이
300만 원이고 그리고 이제 생활비
럼 나온 는 돈이 60만 원이 있어요
예 그니까 그러니까 이제 150만
원에서 60만 원 더 하니까 새신부
때 210만 원을 받는 거죠 근데
이제 210만 원이 택도 없는
가격이거든요 일반적으로 근데 이제
저희는 관사 같은 곳에서 사니까 공가
금에서 좀 자유롭고 이제 아무래도이
의료비가 이제 보통 대부분의 분들도
누가 아프면은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빠져나가게 되는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성모병원에 가게 되면은 차재 공제
협의라는 걸 만들어서 병원비는 거기서
나가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는 실질적으로
큰 돈이나 계획이 없는 돈이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까 210만 원이라는
돈이 적을 수도 있지만 부족하진 않다
그리고 이제 뭐 속된 말로 저희는 돈
없으면 안 나가면 됩니다 왜냐면 사장
관에 있으면 밥은 다 매겨 주니까
근데 일반 분들은 관계도 있고 저
이제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러면 또
자유로 수 있는 거죠 스님들은 어떤
가요 급여가 있나요 보시금이라고 해서
종단에서 책정이 돼 있어요 그리고
저희들도 승리 복지 기금이라는 저희가
받는 금액에서 일정 부분을 기금을
모읍니다 그럼 이제 각 교구 본사
별로 그 기금을 모아서 어디 아프다
그러면은 개인의 부담금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데 65세 넘어가면 이제
교구에서 부담을 해 주고 제가 처음에
출가 있을 때 30만 원을 받았는데
쓸 수가 없어요 뭘 나가야 쓸 거
아니에요 이거를도 나가지를 못하는데이
돈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냐 세한
테라도 좀 주시 야 한번 더 물어라
야 그리고 그때 공동체 생활에 들어가
버리게 되면은 먹고 자고 그 모든
스케줄 자체가 그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그나마 지금은 이제 인터넷
쇼핑이라도 최근 가능해진 거지 과거
같으면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니까
실제로 인터넷 쇼핑이 됐을 때
스님들은 야 우리의 세상에 열렸다 안
내려가도 된다 이게 이제 정말 그래도
숙식이 되고 의료라는 노우라 하는
부분들이 마련된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거죠 대신 이제 그만큼 굳이 다른
거에 흔들리지 말고 그렇게 하기 위해
조건을 주는 거거든요 너희들이 뭐
삶을 걱정하고 이렇게 살면 뭐 얼굴
보일 거 아니겠어요 그래가지고
어떻게이 삶속에는 분들에게 잠시에
돌아을 줄 수 있느냐 앞서서 돈에
관한 질문을 드리긴 했지만 사실 돈만
그런게 아니라 만족을 하는게 참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해마다
해외 한번 가자 못 갈 때는 그것도
너무 귀한데 그 한 번씩 다니기
시작하면 두 번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욕심도 욕망도 한계가
없이 계속 커져 나가거든요 왜 우리는
이렇게 늘 부족함에 시달리고 있을까요
그건 이제 어쩔 수가 없는게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안전한 존재기 때문에 무
로 자기를 채워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욕심이나 욕망
자체가 나쁘다고 얘기하지 않거든요
왜냐면 욕심이나 욕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꿈이 있는 거고 근데 이제
문제는 그 욕심이나 욕망이 스스로를
사로잡고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면 나쁜
거지 그 자체가 나쁘다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불교도 그 욕구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자체를 잘못되었다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당연히 추구 욕이 있으니까 그 욕구를
이제 채워 나가면서 삶을
발전시키겠다고 하는데 이제 나는이
욕구를 왜 채우려고 하는가 여행이
욕구나 그게 아니에요 여행을 통해서
얻어지는게 뭐냐 같은 여행을 가도
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여행을 가는
선택하 보게 여행이 좋은 거 같아
여행을 못 가면 다른 대체를 할
겁니다 왜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근데여 행이 멋있어 보여
라고만가 있으면 당연히 이제 왜
가는지가 사라질 것이고 욕망으로
바뀌어 버리는 거죠이 안에는 진정
내가 원하는게 뭐였니 사라져 있는
거죠 문 자기를 잃어버리는 거죠 내가
이게 왜 필요한지 우리는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행하기 때문에
쉽게 거기서 흔들려고 비교되고 하는
거죠 그리고 내가 그걸 따라간다면 왜
우리가 그걸 따라가야 하는지를
찾아야죠 남들한테 따라갈 때
따라가더라도 따라간다는 걸 알고 가라
지금 못 가는 상황에서는 그래 그러면
저분에 관게 있으니까 따르게 이게
우리의 삶은 상황과 조건이 내의
뜻대로 되는게 아닌게 당연한데 그거
어떡할 거예 그럴 때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서 힘들어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번 인생을 생각해 봐라라고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나에게만 나만이라도 생각은 좀 안
하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누구에게나 누구나 다
이런 거를 겪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
되는 거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지 왜 나만 이런 거를 해야
되지라는 생각보다는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생길 수 있다 단지 그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거고 지금 저 사람은
안 겪고 있는 것뿐인 거지 긴 인생을
봤을 때는 누구나 다 비슷한 경험은
하게 되는거다 그게 일찍해서 나쁠
수도 있지만 일찍해서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 생각을 해야 되는 거지
나에게만 만이라는 생각만 좀 안
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 나쁜 일에
대해서도 좋은 일에 대해서 다 마찬
그렇죠 마찬가지인 거죠 사람이 왜
그런 얘기 하잖아요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되고 못 나갈 때 주의를
둘러봐야 된다 뭐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일일 때 너무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면 그 기운이
오래 못 가잖아요 시샘이 많아지다
보니까 근데 좋은 일 때도 겸손해지며
그게 나의 좋은 운은 떨어졌을 수도
있는데 그동안에 베푼게 있는 그
사람들의 운으로 계속 연결될 수 있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나쁜 일도 이게
나만의 문제고 그걸 때문에 사람들을
공격적으로 대하고 그러면은 그게
원래는 끝났어야 되는데 스스로 수렁
속에 있으니까 이게 점점 길어지게
되는 거잖아요 나쁜 일을 겪게 됐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해야 되는 걸 해 준다 보면은
오히려 나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그게 짧게 끝날 수도
있는 거죠 스님 계산 그 선택이라는게
우리의 삶은 늘 있잖아요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실패냐 성공이냐 아고 하는
전제 속에서만 자꾸 선택을 놓아
버리면 그 불안감과 두려움은 못 떨쳐
버릴 거예요 즉 우리가 뭐 햄릿에서
사느냐 죽느냐 사실 이렇게 탁
던지지만 그 중간이 있거든요 그
제삶의 대안은 늘 존재한다는 거죠
내가 그 성공이냐 실패냐를 놓고
보니까 답이 두 개로 보이는 거죠 그
성공이냐 실패가 아닌 우리의 삶은 늘
존재하는데 즉 삶에는 모든게 의미
있다 나의 선택은 실패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 것이고 성공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단 그 의미를 내 내가
부여해 놔야지 실패를 해도 그것을
다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그거를 남에 의해서 너 이렇게 하면
될 거야 이렇게 따라가면 그 삶은 늘
불안할 거라는 거 신무 님께서도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5년을 맞아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삶일까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충분히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만 제가 보 있지 않으신다면
누구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네 제가 앞으로 남은 생을
잘 산다면 오늘 두 분께 얘기를들은
덕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정말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이 두 분의
말씀을 듣고 조금이라도 여러분 삶에서
느끼고 있는 괴로움이 좀 줄었으면
행복이 조금이라도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자 지식인 초대석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음악]
고맙습니다 LA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