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들 중 누가 가장 무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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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도포기 이영입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27명의 왕들 중
누가 가장 무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뭐
아마 크게 두 명으로 추해지지 않을까
하는데요 어 일단 14대 왕 선조가
있고 16대왕 인조가 있을 것
같은데이 둘 중에서 또 굳이 한 명만
골라라라고 하면은 아마 16대왕
인조가 많은 표를 받지 않을까 싶어요
최악의 군주로서 일단 두 왕 치세에
각각 임진 회한과 병적 호랑이라는
거대한 전쟁이 있었죠 그런데 14대왕
선조 같은 경우는 그 책임을 회 피한
군주였고 16대와 인조 같은 경우는
전쟁의 원흉이 되었던 왕이었던 자
일단 그 병적에 대한 얘기 하기 전에
당시 조선의 국제 정세가
어땠느냐 자 조선이었다 있었고 여기
여진족이 있었습니다이 여진족은 후금을
세웠죠 후금을 세워서 명나라와이
요동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자 이때 인조는
어떻게 해서 왕해 됐습니까 선대
왕이었던 15대왕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 반정으로 왕이 된 왕이 인조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야당이었던서
여당으로 집권을 하게 어 되는 거죠
그런데 어 인조가 몰아냈던 그 15대
왕 광해군 같은 경우는 일단은 물론
우효 곡절이 좀 많긴 했지만 어쨌든
그 누르하치의 그 여진족 후금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고요 그러면서도 혹시모를이
여진족 후금군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서이 북방의 국방력을 굉장히
강화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자 그런
상태에서 광해군의 외교와 정치를
비난하면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조는
광해군의 외교 정책을 부정을 해야 만
했기 때문에 여진 족에서 후금에 대한
적대적인 관계를 노골적으로 비추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훨씬 더
강화를 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이제
누르하치가 죽고 누르하치의 뒤를 리은
어 홍타이지가 1627년에 침입 한계
정묘호란이 물론 인조도 광해군만큼
북방의 국방력을 강화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이 정묘 호란이
터지기 전에이 서북쪽 국방을 담당했던
이갈이는 사람의 반란을 일으키면서 그
반란 자체는 진압이 되었죠 지만
반란군 상당수가 만약에 후금 군이
내려올 경우에 가장 먼저 마가 싸워야
될 병력으로 반란을 일으켰었죠 그래서
이과의 난 때문에이 서북 쪽의
국방력을 그렇게 강화하게 놓았던
것들이 한순간에이 초토화가 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1927년
정묘호란의 발발을 했고 여기 이제 그
방어 선들은 다 그냥 우후죽순 막
쓰러지다가 어 결국은 강화 조약을
체결을 하면서 크게 뭐 커지지 않고
마무리가 됩니다음이 당시의 강화
조건으로 만약에 후금이 명나라와
전쟁을 버리 시에 조선은 명나라를
지원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으로 전쟁을
대충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후금
군대는 돌아가요 근데 그 돌아가는
과정에서 어디를 지나치게 됩니까
황해도와 평안도를 지나치게 되죠 그
당시에 평안도와 황해도에 있었던 그
관리들이 조정에 올린 장기를 보면은이
돌아가는이 여진족들이 너무나도 끔찍한
짓들을 많이 한다 너무 많이 우리
조선 백성들을 살인하고 몹쓸짓을 너무
많이 한다라는 그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조선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달리 없 없었죠
뭐 돌아가는 길에 어 살려 달라는
말과 포로로 붙잡혀 가는 사람들은 난
가고 싶지 않다라는 통곡 소리로 가득
찼다고
하는데요 자 그리고 훗날 홍타이지는
몽골 족까 이제 통합을 한 이후에
국호를 청나라로 바꿉니다 자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고 홍타이지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용골대
마부대 아는 사신을 보내서 인조에게
황제의 지규식 동참을 하라라는 서신을
보냅니다 자 그런데 인조가 어느
생각부터 갑자기 정신에 회까닥 돌기
시작합니다 처 1627년에 정묘 호라
당시에 강화조약을 체결하면서
마무리했다고 했잖아요 그 강화 조건
중에 하나가 조공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공을 하고 또 무역
시장도 열겠다고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조공의 양을 인조가
줄이기 시작하고 그 무역 시장도 막
제대로 안 여는 등이 홍타이지
입장에서는 얘 뭐지 하는 짓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인조가 그 청나라의 그
당시에는 후금이 있는데 홍타이지
보내는이 왕의 친서에 굉장히 그 여진
족들을 비하하고 도발하는 내용들 로
가득했다고 해요 정신의 가닥 돈 거죠
그러면서 뭐 전쟁 날 테면 나 봐라
어 내가 직접 나가 싸우겠다 뭐
인조가 이런 망언 같은 걸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이 용골대 마부대 아는
청나라 사신이 와 가지고 어 이제
조선 정부도 홍타이지 황제 등극에
동참을 해라라고 했을 때 거부를 했고
거부한 수준이 아니라 그 당시 용골대
마부대 인조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갑니다 이거를 이제 홍태이
입장에서는 결코 좌시할 수만은 없었고
결국 한 번 더 친고 하니 그게 바로
병자호란이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구는
모든 방어선을 다 공격하지 않고 전부
다 우에서 수도였던 한양으로 지공을
합니다 인조 같은 경우에는 강화도로
넘어가려고 그랬어요 그래서 왕족들을
먼저 강화도로 피신을 해 놓고 왜냐면
얘네는 유목 민족이니까 뭐 섬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라고 판단을 했나
보죠 그리고 인족 본인도 강화도로
가려고 하는데 청나라 군이 너무 빨리
내려와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이 다
차단된 거예요 그래서 인조가 대안으로
도망갔던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 왜
남한산성이 있냐고 하면은이 인조가
옛날부터 이제 등급 왕으로 등극한
이후부터이 후금에 대한 여진 족들에
대한이 적대적인 입장을 계속 표명을
하면서 뭔가이 전쟁의 기운이 돌고
있으니까 국방력 강화 차원에서 만약
북방이 여진족이 쳐들어왔을 시에 대한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매뉴얼을 만들어
놨었는데 북방에서 올라오면 남부 있는
우리 그 삼남지방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여기에 군사들 다 모아 가지고
위로 올라오는데 각자 오면은 각게
격파가 될 수 있으니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군사들 이 집결하는 장소를
세워 두기로 해요 그거를 남한산성으로
정해 놨었습니다 그래서 매뉴얼이
이렇게 올라오면 남지방 있는 모든
군사들이 탁과 같이 북상해서
남한산성에서 만나는게 매뉴얼이 있는데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버린 거죠
그래서 어쨌든이 삼남 지방의 군사와
병사들이 남한산성에 있는 인조를
구하러 올라옵니다 그리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7일 간을 버티며이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3년 지방의
조선군의 활약상을 기대하고 있었죠
하지만 어떻게 됩니까 바로 경기도
광주까지 왔는데 데 경기도 광주의
쌍령이라는 골짜기에서 쌍령 전투에서
삼남지방 군사들이 전멸합니다 조선군이
지죠 그까 더 이상 인주에게 희망이
남지 않았었던 거고 그리고 강화도에
있었던 왕족들도 다 포로로 잡힙니다
인질이 돼요 결국 더 이상 항전할 수
없었던 인조가 항복을 선언했고 남한
산성에 나와서 청나라 황제였던
홍타이지게 그 굴욕적인 절을 하면서
쟁쟁이 끝이 나죠 이게 단순히 어떤
자존심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 인조 한 사람은 자존심 상하고
끝나면 되잖아요 이게 아니라 그이
전쟁의 패전으로 우리 조선 민간인들
백성들이 그 감내해야 되는 고통과
부담감은 너무나도 거고요 그 인조가
이제 남한 생성에 나와서 이제 다시
어 한양으로 돌아가는데 그 돌아가는
과정에서 그 광경이 너무나도 먹겠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이 사건을 두고이
인조의 삼전도의 구력의 사건을 두고
참 그 인조와 서인 정권의 그
답답하고 너무 융통성 없는 그
사대주의 그리고 실리를 추구하지 못한
외교에 대해서 맹 비화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우리가 조금
객관적으로 좀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이 사건 뿐만이 아니라이
역사적으로 역사는 절대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 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지금 우리가 사는이 세상도이
사회도 언젠가는 역사가 되겠죠 그니까
현실이라는 뜻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그 당시에 우리 지금의 우리는
모르는 그 당시의 어떤 분위기와
딜레마라는게
있습니다 예시를 한번 들어 볼게요
어디까지나 예시입니다 그렇게 되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어 굉장히 외교가 중요한
국가죠 지금 대한민국도 그렇고 중국과
미국이 있습니다 근데 중국이
어마어마하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다라고 예시를 둡시다이 중국
기업들이 세계 모든 시장들을 다 섞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국의 기업들은
다 도산하고 있고 미국은 그냥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경제적으로
이렇게 쳤을 때 두 국가가 동시에
한국에 투자금을 좀 지원해 달라라고
요청이 옵니다 한 국가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 중국에다 투자를 하면은
우리나라 경제력이 막강하게 올라갑니다
몇백배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대요 하지만 미국에게 투자를 하면은
한국도 같이 무너집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대한민국은 투자금을
줘야 될까요 아니 당연히 중국에게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이익이 있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연 우리가 선뜻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한국의
대중의 어떤 그 여론이 너무나도 선뜻
당연히 중국 선택해야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줬던 우방국인 미국을 버리고
625 때 우리나라를 공격했던 그
중국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맨날 허구나
우리 거 가지고 지내 거라고 우기는
그 중국을 쉽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을까요 그 당시에는 지금 한국이
중국을 싫어하는 것보다 조선은
여진족을 굉장히 미개하게 여겼고 지금
우리가 미국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조선은 훨씬 더 크게 명란의 의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조는 어떻게
왕해 됐습니까 광해군을 무너뜨리고
왕이 됐어요 그러면은 인조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반드시 전 정권과는
반대되는 정책과 입장을 고수를 해야
돼요 왜냐하면은 전 정권을 비난해
가지고 자기가 왕이 됐으니까 그래서
만약에 어 현 대한민국의 정권에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그 예시 상황에서
중국을 선택했다고 칩시다 아마
어마어마한이 국민들의 저항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번 선거 때 그
정권은 무너지겠죠 그리고 다른 정권이
교체가 됐습니다 그럼 그 교체된
정권은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은 본인들이 정권을 유지하게
된 그 명분이 전 정권을 부정하면서
됐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이
그냥 망해 가는 꼴에 나라에 투자를
하고 같이 망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인조가 딱 그랬던 거죠 인조와
서인 정권이라고
몰랐겠나 화를 당할 거라고 물론
본인들이 그렇게 굴욕적으로 절을 하고
뭐 그랬을 거라고는 예상은 못
했겠지만 신조와 서인 정권 입장에서도
딜레마라는게 있었고 선택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뭐
지금 제가 서인 정권이나 인조를 우호
아고 이렇게 두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도 비난을 할 겁니다 근데
여러분들께서는이 인주와 서인 정권의
잘못된 외교 정책에 대해서 비난만 할
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 때 있었던 그
어떤 그 딜레마의 본질 그리고 그
현실을 잘 파악을 해서 이게 혹시
현대에서 되풀이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한번 고민해 보시는게
어 또 좋 좋은 역사적인 공부
접근론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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