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을 끝내는 미국의 화력, 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까? 태평양 전쟁 11부 최종화

역사돋보기
152 팔로워
채널에 가입하여 혜택을 누려보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vsJc7Xq0m_TdSs-YGfPg1Q/join
태평양 전쟁 11부. 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까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일본
#미국
#태평양전쟁
#2차세계대전
#전쟁사
#세계사
#역사
#역사이야기
#역사다큐멘터리
도서 리뷰 및 기타 협업 제의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email protected]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태평양
전쟁사 마지막 11부 있니다 이제
태평양 전쟁을 끝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필리핀까지 달아난 후 미군은
1945년 2월부터 3월까지 미육군
주도로 이오지마 전투를 끝냈고
이오지마의 이어 이번엔 해군 주도로
4월부터 오키나와를 탈나기 위한
전투를 치렀습니다 이오지마에서 그렇고
오키나와에서도 그렇고 미군의 피해가
그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상륙후 오키나와의 슈리
선까지 진군하는 5월 말이나 되어서야
능선 두 개를 겨우 돌파해 냈죠
미군의 피해가 컸던 것은 맞지만
일본군의 피해는 훨씬 더 컸고 미군은
예상보다 시간이 더 지원되기 했으나
오키나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죠 하지만
일본은 오키나와를 지키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병력을 증파 아니 바로 일본
전함의 자랑 야마토 전함이 오키나와를
구하러 향합니다 일본은 규슈 섬에
있던 비행장에서 항공기들을 출격시켜
오키나와를 지원해 주고 있었습니다 단
일본의 항공기들이 미군 전투기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지 못한
대본영은 이대를 카미카제를
활용하였습니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
운영했던 카미카 작전을 기쿠스이
작전이라고 하죠 일본 육군 항공
대책에서 먼저 가미카제의 작전을
내놓자 육군에게 질 수 없다며 일본
해군도 똑같은 가미카제 작전을
펼치기로 합니다 단 비행기가 아닌
배로 말이죠 야마토 특공 작전은
야마토 전함이 미함대 포위를 모두
뚫고 오키나와 해안가에 상륙한 다음
모래밭의 전함을 쓰러뜨리고 고정
포대로 쓰겠다는 것으로 전함을 고정
포대로 활용하기 위해 배와 배안의
승조원들을 모두 희생하겠다는 정신나간
작전이었습니다 애당초 야마토 전함으로
그 많은 미함 대 포위를 뚫는 것도
말이 안 됐죠 일본 해군의 실질적인
목표는 미 해군도 죽음을 불쌍하고
싸웠다는 걸 대내외적으로 설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지도층이 무능하고
정신 당한 결정으로 일본 내부적으로도
모두가 아닌 걸 아는 상황에 별수
없이 출전을 해야 할만 했으며
야마토의 출전 날짜와 경로를 다
파악하고 있던 미해군은 항공모함에서
117대 함재기들을 출격시켜 야마토를
집중 공격했습니다 결국 야마토 전함은
오키나와 해안가에 가보지도 못하고
격침되고 받던 중 고정 포대를 위해
준비해 온 11708 주포탄을 유폭
있는 바람에 엄청난 화약 폭발 사고가
일어나 격침 아주 처참한 격침이
있습니다 승조원 3,000명 중에
270명 제외 전원 사망했죠 세상
쓸데없는 특공 직전이었습니다 야마토
특공 직전의 실패가 있고서 일본은
가미카제의 특공 작전 기쿠스이 작전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4월 6일부터
6월 22일까지 약 두 달이 약간
넘는 기간 총 차례의 가미카제 작전이
펼쳐졌고 가미카제 자살 특공만으로
침몰된 미 함정은 척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가미카제로 이른
일본 항공기들은 무려 144에서
1800기 되었죠 5월 말부터는
미육군이 오키나와의 최종 목표
지역이었던 슈리성의 무한한 화력을
퍼부었고 슈리성으로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미 슈리성에 있던 일본
지휘부는 남쪽에 키한 반도로 도망간
상태였습니다 사실상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난 상황 이제 키아 반도로
도망친 일본군을 소탕하는 단계였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의 참상이이 키한 반도로
둘러싼 전투에서 나타납니다
오키나와에는이 현지인을 비롯한 일본인
민간인들도 전부 남쪽 쪽으로 피난을
와서 키암 반도의 각종 석회동굴
곳곳에는 민간인들과 일본 군들이
뒤섞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미군은 키암
반도의 잔존 일본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도 수도 없이
휘말렸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본
지휘부의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했고 때문에 미군은 민간인들에
대해서도 너 그럴 수가 없었죠 여기에
동굴에 같이 숨어있던 일본군도
잔혹함의 끝을 보이고 마는데요
동굴에서 미군에게 항복하러 가고 싶은
민간인들은 다 나가라고 한뒤 진짜로
동굴을 나가면은 기관총으로 쏴 주
였습니다 그리고 겁을 먹은 오키나와
민간인들 그리도 동굴에서 서로 죽이는
집단 자살 사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키나와
전투는 군인들보다 민간인 사상자 수가
훨씬 더 많은 최악의 전투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6월 22일
오키나와 전투는 끝이납니다 남은 일본
지휘부는 할복하다 미군의 성조기가
오키나와에 개량되었습니다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은 오키나와의 미군정을
실시하였고 1972년이나 되어서야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게
반환하였습니다 오키나와까지 점령했으니
이제 다은 일본 본토
[음악]
있습니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은
이미 오키나와 전투 이전부터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지상군 투입이
아니라 폭격기들을 통한 공습이 있죠
에당 2 미육군이 오키나와 전투 전에
이오지마 고집했던 이유도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었죠 이오지마의 중간 기착지로
한 b29 폭격기들의 일본 본토
폭격은 미육군 소속의 항공대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은 전후
미공군의 대표적인 매파 가 되는
인류를 섞기 시대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자신하던 커티스 르메이 중령이 있죠
커티스 르메이 정밀 폭격이 아닌 전략
폭격을 지향했습니다 전략 폭격은
적국의 모든 전쟁 의제를 깎아
내리겠다는 목적으로 굳이 산업 시설이
아니더라도 민간인 지역에도 폭탄을
투하해 엄청난 민간인 피해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심겠다는
폭격이었다이가 한 유명한 말이 있죠
전쟁 중에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더군다나 르메이 이때부터 폭격에 쓴
폭탄은 화염의 점성을 넣어 쉽게
꺼지지 않고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이탄이 있죠 일본의 가오의
대부분 목조 건축이었다는
치명적이었습니다 1945년 3월 9일
폭격기 b29 총
334번가길니다이 334개의 탑재한
소이 텐의 양이 무려 2,000톤
3월 9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새벽이 엄청난 규모의 폭격기들이 일본
도쿄의 하늘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소이탄 32만 발을 투화 일본
본토에선 지옥이 열리게 됩니다 바로
도쿄 대공습 이었죠 도쿄 대공습
집중된 스미다강 인근엔 민간인이 무려
75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인구 밀집 지역이라 미군에 애초부터
공습 타깃 지역으로 삼았던 거죠
미군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아니
르메이 예상 그 훨씬 이상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목조건축의 소유한 불이붙어
아무리 물을 끼얹 져도 꺼지지 않은
채 옆에 불이 붙었고 하필 바람까지
불자 순식간에 용암 같은 불이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었죠 일본인들은 집을
지킨다고 나오지 않고 집에 가만히
있다가 죽은 경우가 허다 있고요이
새벽이 놀라 집 밖으로 나온 도쿄
시민들이 스미다강 다리로 많이
모이면서 이곳에 엄청난 혼란 상태가
되어 버렸고 강에 뛰어든 사람들은
강물에 쪄 죽습니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사상자 8만 명 이상 부상자 4만 명
이상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이 중 1만 명은
조선인이 그요 스미다강 1때는 아예
벌거숭이 동네가 되어 버렸고 일본의
수도 도쿄는 이날 죽어 버렸으며 이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을 포기하지 않기로 합니다
하지만 1945년 6월 오키나와를
점령하면서 미군은 이제 지상군의 일본
본토 직전을 계획합니다 일본 본토
침공 직전의 작전명은 몰락이 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가 한창이던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망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이
미 33대 대통령으로 승계하였다
1945년 5월에는 독일이 패망했다
6월 오키나와 전투까지 끝난 뒤
7월에서 8월 연합군의 수상들이 독일
베를린의 근교 있던 포츠담에서 만나
회담을 가진 뒤 일본에게 마지막 최후
통첩을 던졌습니다 이포 치담 회담이
오고 갈 때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
하나가 올라옵니다이 보고를들은
트루먼은 일본 본토의 상륙 직전이었던
몰락 작전을 취소하자이 보고는 바로
원자폭탄 실험 일명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했다는
[음악]
보고였습니다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기점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에
초 극비리에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원자
폭탄 개발을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1942년부터 시작한이 매탄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는 다들 아시다시피
오펜하임 였죠 그렇게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핵폭탄 연구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자 1945년 7월
16일 포츠담 회담 하루 전날
뉴멕시코주의 엘러 모고도 사막에서
원자폭탄 실험 결과 성공이 실험이
트리니티 실험입니다 자 그러면
어디다가 떨어뜨리는 문제도 논의를
해봐야겠죠 원자 폭탄 실험이 성공하기
몇 달 전에 이제 거의 완성이 눈앞에
보이던 시점이었던 1945년 4월
목표 선정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회의
결과 교토 히로시마 니가타 기타큐슈
요코하마 등 다섯 곳을 정하였는데이
중 가장 최우선 폭격기는 히로시마와
교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쟁부
장관이었던 헨리 스킴스 장관은
교토에는 문화재가 너무 많다며
빼버렸죠 7월 교토 대신 들어간게
나가사키 있고 최종적으로 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네 곳이
선정되었습니다 미국의 메라톤
프로젝트는 심지어 미군 육해군 측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원자폭탄 리틀
보이와 팩맨이 일본 본토 폭격 비행단
기지가 있던 티니안 제도로 후송이 되
는데 공습을 총괄하던 커티스 르메이
차 작전의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 치사는 포츠담
선언을 무시하고 1억 총옥쇄 이따위
소리를 계속 해대고 있었죠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의 비 199 폭격기에
원자폭탄 리틀보이 실습니다 1945년
8월 6일 몇 십대 몇 백대시
출격하는 그간의 b29 폭격 기와는
달리 이번엔 고작 한대의 B 29가
출격했습니다 하달된 목표 지점은
히로시마이지만 날씨 상황에 따라
수정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때마침 히로시마는 매우 날씨가 좋았고
에놀라 게이는 히로시마의 리틀 보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반경내 모든 생물체들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수준이랍니다 빛의 온도가
태양의 온도의 반이에요 리틀 보이로
인해 히로시마에서 단 한 번의 폭발로
약 6만 명이 동시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방사능을 뒤집어쓴
검은 비가 내렸죠 히로시마 원자
폭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너무
답답했는데 일본은 자체 원자력
연구자들의 히로시마의 번에 확인
시켰는데 이들은 누가 봐도 원자
폭탄을 맞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보는 해쉬를 부정했습니다 언론을
통지하고 원자 폭탄 사실을 비밀에
붙였습니다 히로시마의 원자 폭탄을
맞고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군은
계획했던 한 발을 더 쓰기로 합니다
이번엔 펜맨이었습니다 1945년 8월
9일 이번에 복스카 아는 이름의
폭격기가 팬만을 싣고 출격했습니다
복스카 목표는 고쿠라 있는데 기상
상황이 안 좋다면 다른 곳으로 목표
지점을 바꿔도 좋다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하필 고쿠라 날씨가 좋지
못했습니다 복스카 선회하여 나가사키로
향했고 나가사키의 두 번째 원자
폭탄을 투어하자 폭탄 투화 중 바람이
불어서이 목표 지점보다 몇킬로 떨어진
인적이 없는 곳에 투하되었다 나가사키
지형상 폭탄의 여파가 주변에 산에
가로 막혀 피해의 규모는 히로시마다는
적었는데 그래도 3 4만 명이
사망했으며 역시 도시 전체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두 차례의 원자 폭탄으로
일본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음을
판단하였고 1945년 8월 15일
히로이 토 대우는 무조건 항복을
라디오로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태 평년
전쟁도 마무리되었고 2차 세계대전도
끝이 났던 거죠 그럼 역서 도박이었다
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 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