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십자군 전쟁(1202~1204)

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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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십자군 전쟁의 조성배경과 전쟁결과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입니다. 본 영상의 자막은 AI기반 자막프로그램인 vrew의 도움으로 제작되었니다.
참고서적)
- 십자군 전쟁. 토머스 매든
-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 위키백과. 나무위키
00:00 인트로
00:05 1. 베네치아 조약
05:44 2. 자다르 점령
07:28 3.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격
11:31 4.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격
12:43 5. 라틴 제국
지금 보시는 표는 십자군 총괄
표인데요 첫 시간에 보여 드렸던
표인데 그 제 4차 십자군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외국 군대를
끌어들였다가 망해버린 비잔티움
제국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제 3차 십자군에 당시에 리차드
1세와 살라딘이 조약을 체결한게
언제냐 1992년 있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약 6년 간
1998년까지는 대체로 어 뭐
국지전이 있긴 했지만 평화롭게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이 1998년에 당시에
30대로 아주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인노첸시오 3세가 주의하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그
인노첸시오 3세가 주기한 다음에 제일
먼저 했던게 뭐냐라고 하면 당시에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2세가 전쟁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들을 이 십자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휴전 시키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니까 그 정도로
십자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교황이었던 휴전을 하기로 했는데
당시에 리처드 1세가 먼저 석궁에
맞아서 사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십자군 원정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다음에 개승 분쟁도
일어나고 내부 권력 다툼이 심해지니까
잉글랜드는 제 4차 십자군에 출전하지
못하겠어 이런 상황이 돼 버린 거죠
그러니까 프랑스 입장에서도 덩달아서
어 출전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입니다 왜냐면 이제
잉글랜드 뒤를 냅두고 마약에 십자군을
떠났는데 뒤통수 맞게 될 가능성이
많았죠 그래서 잉글랜드가 출전을 안
하니까 프랑스도 같이 출전을 못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성로마 제국 마저도
당시에 하이니 6세가 사망하거나
그러면서 내부 권력 다툼 문제가
신성로마 제국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에
3차 십자군의 주역이었던 세 나라
잉글랜드 프랑스 신성로마 제국이
몽땅다 출전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발생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
4차 십자군 을 이끌었던 인물이
누구냐 그러면 몬페라토 몬페라토 지금
현재의 피에몬테 지방입니다 여기
보면은 이제 뭐요 정도 됩니다 대략
정확하진 않습니다요 피에몬테의
보니파시오 1세라 인물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다른 지도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기가 이제 몬페라토요 가운데 주도인
이제 토리노가 있겠죠 그래서 여기에
있었던이 귀족들 이탈리아에 있었던
귀족들이나 프랑스 북부에 있었던 일부
조그만 귀족들만이 출전을 하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이들이 회의를 했더니
우리가 어떻게 공격하는게 낫겠네
당시의 최고의 세력이 바로 이집트
있거든요 여기에 누가 있었냐면
아이유브 왕조가 있었죠 아이유브 왕조
무너뜨리면 예루살렘을 먹는 것은
시군중 먹이니까 이집트를 먼저
공격하자 이제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해로로 가서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렇게 내려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왕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함대가 없었다는게 이제
문제였죠 함대가 있어야 배타고 가서
공격을 할 텐데 제 3차 같은
경우에는 리처드는 필리프는 모두 다
각국의 왕이었으나이 사람들은 함대가
있지만 여기요 귀족들은 함대가 없
없었습니다 함대를 운영할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당시에 함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왕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었거든요데 왕들이 잘 허락을 안 해
주죠 그래서 방법은 어 어떤 다른
함대를 보유한 국가와 계약을 체결해서
그 배들을 이끌고 공격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곳이
바로 베네치아인 거죠 당시에 베
치아는 어 희한하게 신성로마 제국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공화국 상태로 어 이어져오고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베네치아가 왜 오랜
시간 동안 공화국으로
유지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
베네치아가 공화국으로 신성로마
제국으로 포함되지 않은 상태로 왔기
때문에 이들은 함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규모 함대를 꾸릴 수
있는 능력이 됐었죠 그래서 당시에
베네치아의 도재이 사람들은 왕이
없으니까 이태리 말로 그 최고
지도자를 도재랑 했거든요 그래서 도재
엔리코 단돌로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4차 십자군이 베네치아로
가서 엘리코 단돌로 협상을 시작한
것이죠 그게 120년 있니다 자 다음
지도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십자군이
발생하는 1202년 다 1년 전인
120년에 베니 베니스라고 돼
있네요이 베니스와 이제 협상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십자군이이
베니스에 8만 5천 마르크의 돈을
주는 대신에이 베니스가 십자군에게
충분한 식량과 기사 5,000명
그리고 보병 2만 명 그리고 이들을
이집트까지 수송할 수 있는 선박을
제공하기로 합의를 합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함락하고 나면 전리품을 나눠
갖기로 하는 것까지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가죠 그런데 요태까지
정확히 말하면 협상을 한 거는
보니파시오 1세가 아니고 쌍파 유의
티보라 사람인데이 티보가 협상을
하다가 죽거든요 그 협상까지 해놓고
실제로 출발을 할 때는 보니파시오
1세가 총사령관이 되어서 이제 출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베네치아는 그때부터 약 1년 동안
십자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식량도 비축하고 선박도 정비하고
하면서 그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십자군이 출발할 수 있는 그런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십자군이 모여
들거든요 이제 다 베니스에 모여
가지고 출발을 해야 되는데 십자군은
그 돈을 격추하기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모인 사람은 다
모이기로 한 수에 1밖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1 밖에 못
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출항
준비에 차질이 발생한 겁니다 그니까
베니스는 돈을 안 주니까 우리는 갈
수가 없다 렇게 된
거죠 시간이 지나도 제 4차 십자군이
해결할 수 있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베네치아가 역으로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당시에 베네치아에 대들고
있었던 옆나라 자다르게 이제 자라라고
써 있는데이 자라는 이태리 였고요이
크로아티아 말로 하면 자다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있는 도시입니다이
자다르 아는 도시가 우리 베니스에
덤비고 있으니까 얘네들을 좀 같이
가서 정리하자 그리고 나서 그
전리품으로 우리가 나머지 1을 채우면
되는게 아니냐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근데 이제 문제는이 자라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이었죠 심지어는 당시에이
자다르 왕이 십자군 서약까지 하고
십자군을 같이 출발하기로 한 그런
왕이었습니다래 차막 공격을 할 수가
없었는데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자라로
출발을 해서 실제로 자라를 함락을
합니다 그게 1202년 11월입니다
그래서 1202년 11월에 요렇게 제
4차 십자군이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이 자라가 함락됐다
사실이 로마 교황에게 들어가게 되죠
그러니까 교황이 노발대발 하면서 제
4차 십자군을 모조리 파문에 버립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십자군을 갈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제 4차 십자군이 급하게
사절단을 보내 가지고 교황 테 해명을
하고 설득을 합니다 런 요런 경우가
있어 가지고 돈도 없고 해가지고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자라를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러니까 교황이 이제 다 듣고 나서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제 너희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성지 탈환을 해야
되니까 그런 대의 명분이 있으니까
내가 요번 한 번만 파문을 철회해
주겠다 하면서 봐줍니다 그러니까 다시
제 4차 십자군이 출발할 수 있는
동력이 일단 마련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다르 점령했지만이
자다르 약탈해 가지고는 베니게 주기로
한 돈을 다 모으지 못했다라는 거죠
그러면서 시간이 계속 지나가게 되는
겁니다 1202년이 넘어가고
1203년이 되었죠 그런데이
1203년 봄에 갑자기 비잔티움에서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떤 사건이냐
당시에 비잔티움을 지배하고 있었던
사람이 이사키오스 이세라는 사람인데
이사키오스 이세가 친형인 알렉시오스
3세 쿠 타에 의해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쫓겨날 때 이사키오스 2세가
자기 아들인 알렉시우스 4세를 데리고
요렇게 배를 타고 렇게 지중해로 나와
가지고 아드리아 해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 4차 십자군이 돈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요렇게
가서 첩보를 얻은 다음에 제 4차
십자군 테 그러면 우리는 사실 여기
돈이 많아 근데 뺏겼어 돌아가서
숙부인 알렉시우스 3세를 물리치고
아버지를 보기 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러면 제 4차 십자군이 어 겪고
있는 작은 문제를 우리가 몽땅다
해결해 줄게 그리고 이토로 가는
군사지도 우리가 모두 다 지원해 줄게
이렇게 약속을 합니다 그러니까 또 제
4차 십자군이 솔깃 하는 거죠 교황이
파문을 해서 경고했는데 또가 가지고
기독교 국가를 공격해야 되나 요런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돈이
없으니까 또 어쩔 수가 없어서
받아들이고 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123년 4월에 제 4차 십자군의
함대가 요렇게 자라를 출발해서 이렇게
지중해를 타고 넘어 들어가서
콘스탄티노플에 언제 도착하냐 2개월
후인 1203년 6월 달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6월부터
도착하자마자 바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진 않았습니다 좀 상황을 보고
그러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 시민들이
이사키오스 이세 편을 들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싸웠는데 사실 군사 수소
비잔티움 제국이 더 많았고 알렉시우스
3세가 적극적으로 싸웠다면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적극적인 싸움을 하지
않고 수세적으로 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비잔티움 제국이 동요하고
쿠데타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이 알렉시스 3세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모든 재화를 들고
토입니다 어디로 토끼냐 요렇게
트라키아 쪽으로 이제 현재 그
불가리아 쪽으로 렇게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을 먹게 된 거죠
제 4차 십자군이 그렇게 해서
이사키오스 2세를 보기 시키고 아들
알렉시우 4세를 공동황제로 주기
시킵니다 왜냐면 이사키오스 2세가이
형과의 권력 다툼에서 눈이 멀거든
이제 당시에 비잔티움 제국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이쪽 사람들은 형벌
중에서 시력을 멀게 하는 이런 형벌들
되게 많았습니다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어쨌든 공동황제로
주기하고 난 다음에 십자군 테 돈을
줄 상황이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알렉시우스 3세가 트라키아 쪽으로
도망칠 때 몽땅다 돈을 들고 도망쳤기
때문에 제 4차 십자군에게 줄 수
있는 전리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이제 세 금을 왕창
부과해 가지고 그 돈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제 4차 십자군에게 돈을
주려고 하니까 민중이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쿠데타가 또 다시
일어나면서 그때 당시에 민중봉기를
이끌었던 인물이 알렉시우스 두카스
무르치 플루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르치 플루스 불린 이유가 짙은
눈썹을 이었거든요 그래서 무르치
플루스 쿠데타의 성공을 하고
알렉시우스 4세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그렇게 되니까 제 4차
십자군 어쩔 수 없이 무르치 플스와
협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어쨌든 돈을
내놔라 우리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했다
알렉시스 3세 쫓아 냈으니까 우리는
돈을 받아야 되겠다 근데 무르치
플로스는 뭔 소리냐 그거는 알렉시스
세랑 한 약속이고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난 너희한테 돈 못 준다
이러면서 협상이 깨지게 됩니다
결국에는 그러니까 무르치 플루스
알렉시오스 4세를 그냥 죽여
버리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제 4차
십자군은 어 그래 그렇게 나왔어 그럼
너네 한번 죽어 봐라 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제 2차로 다시
공격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공격을 시작한게
1204년 4월입니다 4월에 제 4차
십자군이 두 번째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이제
초반에만 잠깐 비잔티움 군대가
유리했다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무르치 플스도 또 알렉시우스 새처럼
똑같이 트라키아 쪽으로 요렇게
도망을칩니다데 무르치 플로스는
도망치다 잡혀 가지고 죽거든요 그
알렉시오스 3세는 잡히긴 하지만 죽진
않습니다 처용 당하진 않고요 그래서
어쨌든 그코 콘스탄티노플의 귀족들
남아 있는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하게 되는 겁니다이 보니파시오
1세에 그렇게 해서 이제 결국에는 그
비잔티움 제국이 일단 무너지게 된
거죠 그리고 이때부터 드디어 전리품을
획득하기 위한 아주 심한 약탈이
역사상 가장 잔혹한 약탈이 펼쳐지게
됩니다이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인이
나무 있다고 하는데요 교회까지 막 다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유물과 그 뭐 문화유산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이때 많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 제가 읽은
책에 따르면 그 이때 동유럽인이서
유럽인에 가지고 있었던 배신감과
분노가 아직까지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감정의
골이 있다 요런 것까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약탈이 끝난
다음에 십자군은 비어버린요
콘스탄티노플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로 합니다 그래 가지고
1204년 5월에 볼로뉴 출신의
보도행태가 라틴 제국의 초대 황제로
지휘하면서 어 제국이 건설되었습니다
당연히 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로
하고 나머지 그 기타 다른 그
비잔티움제국의 그 뭐 보시면은요요
색깔 보라색 위주로 그 바스스 하면은
요게 이제 봉신들요 국가들을
말하거든요 렇게 주변 국가들 요렇게
차지했다 요렇게 아시면 되겠고 그러면
비잔티움 제국은 어떻게 되느냐 그요
색입니다 여기 비잔티움 엠파이어의
석세서 계승자들 대표적으로 니케아
그리고 트레비 joh 그리고 에피루스
렇게 세 개로 예 나뉘네요 그렇게
해서요 비잔티움 개승 국가들이 라틴
제국과 이제 경쟁을 펼치게 되는
것이죠 그 라틴 제국이 훗날 57년
정도 존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에이
사람들의 출신이 그 요쪽 동부가
아니라 서부 출신 제 4차 십자군이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결국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 비잔티움
후생 국가들에게 먹히게 되는데 그게
1961년에 당시에 니케아 제국의
황제가 미카엘 8세 팔라이올로고스
아는 인물이 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렇게가 가지고 콘스탄티노플을
탈란면서 라틴 제국은 무너지게 되고
이제 비잔티움 제국이 부활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때부터는 비잔티움
제국이 팔라이올로고스 망조가 시작되게
됩니다 이상 마치고 다음 시간에 제
5차 십자군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