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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가 있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너무 잘해준다.
라고 하면 경계를 해야 된다.
이런 불의의 사람들은
자기의 먹잇감을 정확히 선택을 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몇 마디의 추약이 돼 있는
그 안에 힌트가 있을 수 있어요.
한국 사회가 외국하고는 좀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연구자에 의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신구조,
세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구성이 된다.
나라는 존재와 너라고 하는 존재.
이건 평등한 존재죠.
그리고 나보다도 좀 위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님이라고 불러요.
사장님, 회장님 이런 식으로.
우리보다 좀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뒤에다가 놈이라는 걸 붙여요.
그것은 경멸하거나 무시하거나 이런 것이죠.
우리 한국 사람들의 진취적인 계향은
위를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겠다라고 하는
그 과정에서 나보다도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나보다도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무시하는 그런 게 아니겠죠.
지금 현재 2024년에 있어서의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것은
불안한 거죠.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죠.
저 집 잘 산다는데
저 집은 못 사는 집안이라는데
불행히도 잘 산다 못 산다의 기준은
저 집은 빌딩이 몇 개 있대.
좋은 차를 탄대.
불을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일관적이죠.
그런 과정에서 이제 알게 모르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발생되는 감정이 있어요.
그건 모멸감입니다.
그 모멸감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요.
통상 아내를 살해하거나
아내에 대해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런 남성들의 심리의 기저에는
나를 무시한다.
나를 무시한다라고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이제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는
갑질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갑질이라고 하는 것은
갑 혼자만 있어서는
갑질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을이라고 하는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나보다도 형편이 좋지 않거나
상황이 어렵거나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우의적인 힘 또는 권력
이런 것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그 대상에 대해서 상처를 주면서까지
발생되는 이것을 우리가
갑질이라고 했을 때
언론에서 보도가 될 때도
갑질과 관련된 보도가 되는
많은 사람들이 공분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죠?
그 사람들이 만약에 갑이 됐을 때
또 갑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모멸감이라든가
갑질이라든가
이런 어떤 상처를 주고받는
그 과정에서
나를 무시한다라는 것과 연관돼서
범죄가 이루어지고
폭행이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발생이 된다는 것이죠.
연쇄살인이라든가
이런 것들과 연관해서
반사회적 성격장애
사이코패스
이런 것들이 많이 등장을 했었죠.
이 사이코패스 같은 용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
아는 그런 일상적인 용어가 됐습니다.
거기에서
나르스시스트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기로 하죠.
이 나르스시스트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이제
자기애성 성격장애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치속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거예요.
이 나르스시스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어떤 성취감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되는 대상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조작하고
또 그 사람을 착취하고 하는
이런 것들과 연관돼서
많이 등장하고 있고요.
특히 이제 헤이즐우드라고 하는
뭐 이런 그
범죄심리학을 지필한
이런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오히려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라든가
이런 용어도 중요하지만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극단적인 살인범죄라든가
연관될 수 있는 용어 중에서
나르스시스트라고 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의 어떤
공감능력이나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조연들이죠.
자기는 주연이고
그런 나르스시스트들도
많은 반면에
특히 이제
키키꼬몰이라고 하죠.
이전 같은 경우는
아이들을 많이 낳다 보니까
형제들 자매들이 많았었어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적절하게 타협을 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가 양보하고 하는
이런 과정들이 있었다는 거죠.
지금은 통상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
이제는 자기가
이 집의 어떤 일원으로서
부모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것들은 다 자기 거예요.
자기 방도 있고
나하고 경쟁자가 없다는 거죠.
거기에다가
컴퓨터 환경 좋아졌죠.
SNS 같은 것도 있죠.
집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 어떻게 활동하고 있다.
또 누구는 지금 휴가를 갔다.
사진이라든가
이런 것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는 거죠.
그러나 중요한 것을
하나 빼먹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말을 한다는 겁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언어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원시 시대에 있어서
그 당시에는
미래가 불확실하고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늘상 가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냥을 나갔다가
오히려 그 맹수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
내가 먼저 공격을 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을 당할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불안감 같은 것이
늘 존재한다는 거죠.
내가 상대에 대해서
공격 의사가 없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악수나 경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안한 그런 사회가
구축이 될 수 있었죠.
그런데
혼자서 안에 있으면
제일 먼저 시작이 되는 게 뭐냐면
소통이 없어져요.
직접적인 소통.
그리고 인간과 인간 간에 있어서
접촉에서 발생될 수 있는
그런 감정의 유발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상당히 없어집니다.
그리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언어는 쓰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본인도 그 안에서
기본적인 것
밥 줘
이런 정도의
소통 이외에는
직장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하고 부딪히거나 하는
이런 소통들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야말로
은눈용 외톨이
희귀 꼬몰이가 된다는 거죠.
원시 시대로 돌아갔다는 것은
자기가 SNS라든가
인터넷을 통해서 바라보는
그런 여러 가지 어떤 시각들에 대해서
보편타당한 생각이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판단하고
본인 스스로가 거기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고
옳다라고
판정을 내려 버리는 것이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어떤 분노
이런 것들은
고스란히 자기 내면으로
축적이 되는 겁니다.
자 그러다 보니까
최근에 발생됐던
신립역 사건이라든가
분당서연력 사건
이런 경우들도
사실은 그 사람들이
희귀 꼬몰이
즉다시 말해서
운돈형 외톨이로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든가
이런 것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잘못된 위기감
분노
이런 것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모든
운돈형 외톨이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운돈형 외톨이더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하고
소통을 하고 있지 않더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하고
소통을 하지 않게 된다면
독단적인 그런 어떤
사고방식 체계가
성립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한 어떤 극단적인 사람들은
이상동기범죄를
저지르는 그런 경향이 있고
그렇지 않고
요즘 사회에서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교제살인이라든가
데이트폭력이라든가
뭐 이런 것들이
많이 보도가 됐었죠.
노원구에 있는
세모녀 살인사건이라든지
신당 옆 살인사건이라든가
오산에서
오피스텔에서
어머니와 딸을 공격했다가
딸은 사망하고
어머니가 중상 입은
그런 사건들
그런 것들은 뭐냐면
특히 남성들 같은 경우에
추정 큰데
어렸을 때
사랑을 받아야 되는
그런 대상
주로 어머니가 되겠죠.
그런 사람들로부터
거부를 당했던
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부모가
갈라진다든지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의 특질은
보통 우리가 사람들이
남녀가 사귄다라고 하면
서로의 어떤 선택권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자기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쪽에서 봤을 때는
사귀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그게 반대의 입장에 대해서
상대가 나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봤을 때는
결혼까지 가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라고 생각해서
그건 선택의
어떤 폭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부재살인이라든가
데이트 폭력이라든가
이런 식의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자기가 처음에
그 사람을 봤을 때
전력 투구를 합니다.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인데
여성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너무 나한테 잘해준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크게
아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
이렇게 생각을 하실 필요가 없어요.
결혼하고 난 이후에
그런 식으로
평생 동안 잘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잘해줘요.
그리고 이제 거기에서
조금 조짐이 어떤 조짐이냐면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화를 내고
얼굴 표정이 달라져요.
조금 더 지나면
언어적인 폭력 같은 거
이 사람에게는 상당히 잘해요.
왜?
잘해야 될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데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게 굉장히 폭력적이 된다든가
소위 언어적인 폭력이
조짐이라는 게 있다는 거죠.
이런 것들이 점차적으로
가게 되면
나중에 결정적으로
아 나는
더 이상 사귀는 것이
곤란하겠다라고
통보를 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본인이 수용을 하지 못한다는 거죠.
내가 이전에 당해봤던
그 거부의 악몽이
이 사람으로 인해서
다시 살아나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
그 대상에 대해서는
나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되겠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파괴하겠다라고 하는
그런 심리가 있다는 거죠.
내가 어떻게
저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
내가 가지지 못하면
나는 차라리 이 여자에 대해서
생명을 끊겠다
라고 하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게 되는 거예요.
이 집착을 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
본인이 받아야 될
사랑이라든가
돌봄
이런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발생되는
애착장애의 결과로서
집착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어떤 심리가 나오느냐 하면
내가 처음에
그렇게 잘해줬는데
나를 이렇게 배반해?
라고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분노에
불을 지피고
증폭을 시킵니다.
처음에는
주로 어떤 얘기를 하냐면
내가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무릎을 꿇고 빈다든지
운다든가
하는 이런 모습을 보여요.
그것은 뭐냐면
거꾸로
바꿔서 얘기한다면
네가 정말로 나를 떠나게 된다면
내가 죽는 게 아니라
너를 살해하겠다라고 하는
그 메시지가 있다는 거죠.
이 정도 선까지 가게 된다면
상당히
힘들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어떤 남성을 사귈 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봅니다.
너무 잘해준다
라고 하면
경계를 해야 된다.
그렇게 잘해주기가 어렵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잘해준 것이
나중까지
취속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과연
확신이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아주
깊게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우리 시청자분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경험적 요소와
세상을 살아왔던
과정이라든가
이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런 방법을 쓰게 되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얘기가 있죠.
열길 물수고 나라도
한길 사람수고 모른다.
사실은 살다 보면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뭐 친구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어?
정말 이런 면이 있었을까?
라고 하는
그런 사안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건 이제 어떤 사안이냐면
아주 어려운 사안이 된다든지
평온한 상태에서
자기를
포장을 해서
남들에게 보여준다든가
착한 척을 한다든가
하는 그런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 사람의 경륜이나
이런 걸 봤을 때
착한 척을 하는 것을
금방 잡아내는 사람이 있고
아 정말 착한가 보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인간 본성에 대해서
또는 책을 읽고
또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어떤
경험들 듣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사람의 진실을
또는 본성을
구분할 수 있는
그런 개인적인 능력은
각자가 배양을 해야 되겠죠.
마르시스트라든가
이런 불위의 사람들은
자기의 먹잇감을
정확히 선택을 합니다.
전화로 사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10통 20통
100통을 합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 걸려드는 게 아니에요.
예 근데
전화로 해서
아 사장님
지금 좋은 땅이 있는데요
라고 한다면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 그 좋은 땅이 있으면
정말 가까운 형제나
이런 분들한테
얘기를 하세요.
그거는
저는 거기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돌려서 말씀을 드리는 거죠.
아무래도 이제 그것은
삶의 경험이라든가
또는 축적이라든가
이런 건데
뭐 20대 같은 경우
삶의 경험이
20년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20몇 년 밖에
그렇다면 어떻게 그걸 갖다
보완할 수 있을까요?
착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이 착하다고 하는
이 선과 악의 개념하고는
좀 다른 게
어수룩하다라고 봐야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단순히
착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문 이설에
꼬득김을 당할 수 있는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죠.
자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타견해 나가야 되느냐
굉장히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비교적
싼 방법입니다.
그리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책을 사서 읽는다.
그럼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요약되어 있는 책을
사서 보느냐
그건 아닙니다.
다양한 형태의 책을 보면
그 책에서
이런저런 힌트가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은 소설이라도 좋고
에세이라도 좋고
심지어는
시집이라도
시집은
더 좋죠.
왜 그러냐면
몇 마디의
추약이 되어 있는
그 안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되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방법 몇 개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접할 수 있는
사항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양한 사항에
적절하게 대처를 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책들
소설도 좋고
교양서도 좋고
본인이
어떤 사항에서
어수룩하게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대단히
간접적이지만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입니다.
사실 이제
관상은 과학이다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직관적인
그런 표현입니다.
인상이 좋다
인상이 나쁘다
이제 이런 식으로
결국에 표현을 하는데
그것도
직관적이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은 상당히 큽니다.
왜냐면
이 사기범들 중에서
번드르르하게 생겨서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선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눈
그중에서도 눈빛이 있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고 하는 것을
굳이 비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눈빛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동일한 사람이라도
어떤 내면적인
심리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눈빛이 다 달라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
화가 났을 때
마음이 편할 때
이렇게 해도
다 달라질 수가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관상은 과학이다라고 하는
얘기를 갖다가 하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너무
맹신을 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경륜과
사람을 많이 상대를 하다 보면
나름대로 자기가
독자적으로 느끼는
어떤 촉 같은 것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판단하는 것이지
그냥 뭐
우락부락하게 생겼다라고 해서
아 저 사람은
범죄자일 것이다.
이렇게 단정을 짓는 것은
또 다른 실수를 할 수 있는
대단히 유의해야 할 점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