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 이전 한국에는 어떤 나라가 있었을까? 한편으로 몰아보는 당신이 모르는 한국의 고대사 통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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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한국의
역사에서 국가들을 나열해 보자면
고조선 고구려 백지 신라 가야 바해
고려 조선 정도만 나올 거 같습니다
하지만 고구라 백지 신라 3국이
정립되기 전 흔히들 말하는 원삼국
시대에는 훨씬 더 많은 고대의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 거의
들어보시지 못했을 만한 한국의 고대
국가들을 소개해
[음악]
드리겠습니다 이번 편은 오늘 날의
경기 충청 전락을 분포해 있었던
마한의 국가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하는 특정 국가명이 아니라 경기
충청 전라권 산재해 있던 여러
소국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연맹체
이름입니다 고대 한반도 중남부에 마한
진난 변환이 있었는데이 중 마한의
연맹체 그은 고조 선계 유민들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받은 정치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시죠
가장 먼저 익산에 있던 건마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한의 연맹체 중 가장
국력이 강하고 큰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로 흔히들 목지국 생각하시는데
목지국 이전에는 건마이크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 나라를 빼앗기고 고조선의
2차례 정착한 곳이 익산의 건마
추정하고 있습니다 준왕이 이끄는
고조선 유민들 덕에 고조선의 선진
문물이 유입될 수 있었고 건마구인
세력을 불릴 수 있었던 거죠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익산 건마의 인구밀도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건마구인 목지국
이전까지 마한 연맹체의 연맹국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익산에서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의 토광묘는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토광묘는 땅을 파서
시신을 두거나 시신을 치 목관을 묻는
매장 방식으로 고조선에서 널리 쓰인
묘지라고 합니다 토광묘 형태의 무덤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긴 하지만
익산에서 발견된 토광묘에서 당시
한반도 남부에서 절대 출토될 수 없는
유물들이 출토된다 합니다 대표적으로
철기가 있는데 아직 청동기 시대였던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가 나왔다는 건
북방에 선진화된 민족이 익산의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거든요 중국측 기록
삼국지에는 조선 후 준이 참람 되게
왕이라 일컫다 ka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준은 그의 의 근신과 궁인으로
거느리고 바다로 달아나 한 지에
거처하며 스스로 한 왕이라 칭했다고
나오고 후한 서에는 당초 조선왕 준이
위만게 패했을 때 나은 물이 수천
명을 이끌고 바다로 달아나 마한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한왕이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주앙과 그 후손들은
스스로를 한왕이 칭했다는 그렇다면 한
번도 남부에서
건마이크 국가였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목지국게 마한의
주도권을 빼앗깁니다 고고학적인 증거가
있는데 어느 생각 토광묘가 사라지고
경기 충청 토착 묘제 있던 지상의
시신을 매장하는 분구묘 형태의
무덤들이 출토되기도 그리고 역시
중국측 문헌에서도 그 뒤 준의 후손은
절멸되었거나
사람이 있다 혹은 준의 후손이
절멸되었거나
6에서 목지국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4세기 백제의 근초 고왕 때 백제의
영향권에 편입되어 간접 지배를 받다가
5세기 백제의 중진 시대 때 백제의
직접 집배 형태로 전환되었고 다른
마한의 국가들과 달리 익산의 건마구인
백제에게 반기를 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백지 정부로부터 나름 대우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유는
고조선의 후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해석하고 있습니다 훗날
의자왕의 아버지 백제의 무왕은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자
익산으로 천도를 시도하는데 천도 지로
익산을 정한 것도 익산을 수도로 삼을
정도의 터전이 이미 구어져 있었다는
뜻이었죠 익산의 옛 순 우리말 지명이
금마저 있데 건마의 건마가 금마로
확장된 거랍니다 현재이 영상을 보시고
계신 익산 분들이 있으시다면
여러분들은 고조선에 직접적인 후회
들이십니다 건마 외로도 익산에는
가해국 있었습니다 가해국 3세기까지
존재했던 고대 국가로 중국측 기록에
따라 충남 홍성군의 금마면 있지
아니면 옛 지명이 금마이 전북
익산인구 익산 하여 그에는 공개라는
지명이 있는데이 공개가 감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남 홍성군 금마면 그래도 대감
계면이 있어 여기서 감개가 해국을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죠 중국측 기록에는 마한의 소국들
가운데 감해 비리도 있는데 감해 비리
6이 홍성의 대감 개면 가해군 익산
하면의 공개를 가리킨다는 절충설
있습니다 익산 입점리 고분군에서
독특한 금동 관모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확실히 익산은 독립된 고대
국가의 존재감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익산 외 전북 지역에는 여러 소국들이
있었는데 다른 전북 지역의 마한
소국들은 김재 평야를 근 거지라고
했던 벽 비리 국이 있습니다 벽비후
벽비후 관계 시설이 있는 김재의 벽
고래 어원이며 실제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김재 땅에는 벽성이라는
행정국은 설치했는데 벽 비류국 벽골
벽성 세 지명의 벽이 같은 곳을
가리키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죠 전부
고창에 모로비리국 있었는데 훗날이
지역까지 병합한 백제는 오늘 날 전부
고창에 모량 불이라는 지명을
명명하는데 비슷한 발음이기에 전북
고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전북 고창 지대에서 분구묘 그곳에서
나온 청동기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서
모로비리국이 고창에 있던 소국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창에
청동기 시대부터 조직체가 있었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고창에서 출토된
토기 중 고창 봉덕리 출토 소호 장식
토기가 있는데이 독특한 양식 토기가
중국과 일본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창의 소국은 국제적 교류도 왕성
있음을 알 수 있죠 전북 부안군에
집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측 기록에는 4 세기경 지방국이
백지 근초 왕에게 항복했다고 합니다
불사 분야 2이라도 있었는데 백지
시대의 비사벌이라고 불렀던 전주 혹은
마찬가지로 백제 시대의 부사 현이라고
불렀던 순천으로 비정되는 있습니다
고압 그도 있었습니다 고압 그의
고압은 오느 날 전북 남원이 있던
백제시대의 지명
고룡군협전고 있습니다 의외로 소국들이
많이 집중되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난 전북
정읍인구 2국 점리 이국 천루 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백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전남 지역에는
더 많은 소국들이 더 오래도록
자주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남
지역의 고대 국가들은 대부분 4세기
근초 고황 때 백제의 간접 지배를
받다가 6세기 성황 때 백제의 직접
지배를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남 나주의 불미 6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시대의 전남 나주 지명이 발라
그이였던가
중국측 기록에 나오는 불미 6의 불미
혹은 파로이 같은 발음의 고대 순
우리말이라고 추정하고 있죠 불미 6이
나주에 있던 고대 국가 있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도 나주에 6세기까지 백제의 간접
지배만 받을뿐 자주성을 갖춘 고대
국가가 있기는 했습니다 국립 나주
박물관 근처에 가시면 마한 시대의
고분군이 발견되는데이 독무덤 양식은
백제의 무덤 양식과는 다른 것이고
3에서 6세기까지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6세기 이후 나주 고유의 무덤
양식이 사라져 백제의 직접 지배를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죠 그리고 그
이곳에서 출토된 나주 신촌리 구호
무덤 금동관이 있는데이 금동관은
나주에 있던 고대 국가의 수장이 썼던
것이랍니다 또 구사 5단 국이라고
있는데 백제시대 때 전남 장성에 구사
진해라온치과 since 열의
비례국회의원이 이응 불리한 이었죠
만약 열리
비례국회의원
있는 화순의
고인돌들꽃학습원 열래 비리 국이
화순이 아니더라도 화순의 대규모
고인돌들꽃학습원
다른 고유의 무덤 명식이 나타나는
전남 고흥에 초리군 진도에는 초산동
비리 6이 있던 것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초산동 비리 6은 전북
정읍이 설도 있는데요 정읍에 초산이라
산이 있고 조선시대 지리서 신증 동국
여지 승남도 도 정읍을 옛날에는
초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이
고대 국가에는 비리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나죠 비리란 뜻은 황산 벌 설라
벌에 벌과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전남
해남에 신미국 있었고 강진에는 구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측 기록에는 전남
강진의 고해진이 있었는데 여기서
고해가 구회 6의 구해라는 거죠 만약
구회 6이 있던 곳이 전남 강진이
맞다면 구회 6과 해남의 신미국 해남
강진이 있던 친미 다래가 됩니다 친미
다래는 특정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해남 강진일 때 분포하던 작은
국가들을 통칭하는 말인데요 강진의 옛
지명이
탐진이엔지 가는 나루가 있다는 뜻으로
백진 시대 때 탐라 즉 제주도로 가는
한구가 강진에 있었고 그래서
탐진이엔지 아기도 했다고
[음악]
합니다 경기 충청 전략과의 산재 있던
여러 소국들을 통칭해서 부리는
연맹체를 마한이 불렀는데요 지난편에
이어 아직 속개 해드리지 못한 마한의
국가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천안에 있던 목지국 있니다 천안의
향토 사학자 분들은 온조가 내려와
정착했던 백제의 첫 수도 위래 성이
천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말도
안 되죠 하지만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의 고대 유적지와 유물이
있는데요 백제의 초기 수도 위래 성이
천안이 있다는 말은 조선 시대에도
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대왕은
천안에 온조의 사당을 세우기도
했거든요 즉 천안에는 백제 초기
왕도라고 착각할 정도의 고대 국가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마한의 국가들 중
가장 유명한 목지 국입니다 익산의
건마구인 고고학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고조선의 준왕이 내려와
정착한 곳이 천안의 목지국이었다고
믿었을만큼 목지국의 입지가
남달랐습니다 삼국지에는 조선 후 준이
참람 되의 왕이라 일컫다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주는 그의 근신과 군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달아나 한 지에
거처하며 스스로 한 왕이라 지냈다 그
뒤 준의 후손은 절멸되었거나
지금 한인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고 나와 있으며
후한서에 당초 조선왕 준이 위만의
패했을 때 나무 물이 수천 명을
이끌고 바다로 달아나 마한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한 왕이 되었다 주의 후손이
절멸되었거나
어느 생각 세력이 위축되었고 목지국의
국력이 건마를 능가해 버렸죠 후한서에
나오는 진왕은 목 지국의 왕을
가리킵니다 원래 한반도 중남부 통틀어
왕을 칭하는 고대 국가는 한 왕을
자칭했던 건마이크 준의 후손이 끊기고
목지국의 국가 수장이 진왕을
자칭하면서 목지국의 진왕이 유일한
왕호를 사용한 고대 국가였습니다
중국적 기록에 따르면 목지국의 마한
전체의 왕이며 또 어떤 기록에는 마한
진난 변한 사한 전체의 왕이었다고도
합니다 약간의 과정이 있는 것 같은데
목지국의 마한 연맹체의 맹주국이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대체 어떻게
목지국의 건마의 능가 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건마 6에선 모종이
이후로 중앙 후손들이 대가 끊겨
버렸고 고조 선계 다른 유민들이
목지국의 들어와 목지국 선진화 시켰던
것으로 추정만 할뿐입니다 고고학적으로
목지국 토착 문화가 강하긴 하지만
고조선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기원전 20년 신라의 박혁거세가
신하였던 호공 마한 왕에게 보냈는데
마한 왕이 진난 변하는 우리의 속국인
근년에 공무를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어찌 이유와
같은가라고 꾸짖었다 합니다 여기서
마한 왕이 목지국의 왕이로 보이며
이로보아 목지국 진한과 변환을
통틀어서도 가장 강한 국가였고 다른
연맹체를 한들 목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되죠 백제도
처음 건국되어 때는 목지국의 한참 못
미치는 작은 고대 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목지국 언제 마한의 주도권을
백제에게 빼앗겼을 그요 세기경 백제의
8대 구왕 고이왕 때입니다 고이왕은
재위기 있던 246년 한반도 중
중부에는 낙랑군 대방군이라는 중국의
괴 정부가 있었습니다 낙랑군 대방군이
지난해 8개국을 병합하려고 했으나
이것이 마한의 8개국을 병합한다
마한에 잘못 전해진 겁니다 분개한
목지국의 국왕이 마한 연합을 끌어모아
대방군의 기리 영을 공격합니다이
전투가 기리영 전투인데 중국측
기록에는 지난해 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고 했는데 통역사가 말을 다르게
전하자 신지가 격분하고 한인들이
분노하여 대방군 기리 영을 공격하였다
이때 대방태수 궁중과 낭랑 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일을 벌
하였는데 궁이 전사하였으며 이군은
마침내 한을
멸하였은즉 6은 이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국력이 쇠락에 계를 컸습니다
반면 백제의 고위 왕은이 기리영 전투
때 마한 연합 일국으로 참여를 했어도
소극적으로 나왔거나 혹은 참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백제가
마한에서는 마한 전체를 통합하게
됩니다 4세기 근초 고항 때 목지국
백제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으나 백제
정부는 목지국의 지배 층들을 상당히
우대했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백제가 고구려에게 당해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충청도는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지대 특히 고구려의 공격에
초토화가 되었는데 자연스러 목 지국은
해체되었고 그 지배 층들은 백제의
중앙 기적으로 흡수되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목지국 외 다른 마한의 국가들도
보겠습니다 훗날 백제의 두 번째
수도가 되는 공주에는 부른 국이
백제의 세 번째 수도가 되는 충남
부여에는 고포 국이 백제시대 지명이
고라이 있던 충남 청양에 구로 국이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명명한
행정지명 지심 이였던 충남 예산에는
지침 국이 충남 아산의 온양 면에는
염로이 그리고 대전에는 신흥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제시대
대전의 유성쪽 지명이 진현이 데
신흥국의 시흥과 발람이 비슷하죠
신흥국과 더불어 대전에는 네비이
있었습니다 서해안을 끼고 있는 충남의
거대 국가들을 보자면 충남 보령에
말로 국이 태안에는 신 소도 국이
있었는데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마한의
종교적 구역이었던 소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태안의 신 소도 국은
훗날 소테라 행정 명칭으로 발전합니다
충남 서천에 비미국 아림 치리 국국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서천에 고대 국가가 세 개나 있었다는
건 통합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뜻이고
훗날 백제 멸망전에서 소정방의 당나라
수군이 서천을 통해 충청도로
들어오는데 이때 당나라와 싸우지 않은
것으로도 딱히 단합력이 좋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충청도의 고대
국가들은 대부분 3세기 경에 백제의
영향권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경기도로가 보겠습니다
경기도 화성에는 상회 국이
평택에는고해 국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성에는 신 분활 국이 있었는데 화성
평택 안성 모두 천안과 지리적으로
가깝죠 목지 국가 직접적으로 교류를
맺고 있었으며 특히 경기남부 고대 의
국가들이 기리영 전투에 많이 참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안성의 신
분할이 기리영 전투에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실질적으로 기리영
전투를 주도하고 목지국 부추긴 건 신
분활 2이란 설도 있습니다 뭐 기리영
전투의 패전으로 다 같이 몰락해
버리지만 이외에 경기도 고대 국가로는
경기도 2천의 자리모아 노람
govern 경기도 김포의 송로
불사고 경기도 부천과 서울 구로구
일때는 우휴 모탁 국이 수원에는
모수국 있었습니다 백제는 모수국
모수석 두었는데 고구려에서는
매홀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실제 고대
순우리말 발음은 모수의 모와
고구려에서 불렀던 매홀 사이였을 텐데
아마 무에 더 가까웠을 겁니다 그래서
훗날 통일신라 시대에 순우리말 지명을
한역 하면서 무을 한자 수로
표기했다가 오늘날에 수원으로 정착한
거죠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마을이
조성되게 환경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경기도 양평에는 고리국
고탄저지 화국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석 사국 소석
사국이라는 고대 국가도 있는데
조선시대 지리서 신증 동국 여지
승람는 경기도 양주의 석산 3이라는
오래된 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석 사국 소석 사국
둘 중 하나가 경기도 양주라는데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백제의
개로왕이 중국 북위에 보낸 국서에
우리 백제의 서쪽 끝에 소석산방
아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소석산방
3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백제의 서쪽
끝에 바다를 끼고 있는 소속사는
강화도 밖에 없으며 대석사 국과 소석
4국이 대화로 구분 할뿐 국명이 같은
걸로 봐서는 강화도가 대석 사국이고
강화도의 교동도가는길
아니더라도 어쨌든 강화도에는 그토록
크고 많은
고인돌들꽃학습원 확실하지 않습니다
문헌상 기록된 백제국의 한자 백제국
우리 삼국 시대의 백제의 한자 백제가
살짝 다르거든요 그래서 백제와
백제국의 다른 나라라고 하는 주장도이
고대순 우리말을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표기법이 겹칠 수도
있기에 같은 나라라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에는 총 54개의 소국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54 개를 모두
소개해 드리지 못했는데 그 정도로
경기충청 전라권 있는 수많은 고대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기록된 것만
54개 실제로는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마한이 왜 마한 있지는
밝혀진 바가 없고 마한 사람들 중
일본과 가까이 즉 남해안과 사람들은
일부 문신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사람들은 씩씩하고 용맹한 젊은이들이
건물을 지을 때 등 가죽을 뚫어 줄을
깨고 큰 나무를 매달고 힘 있게
외치며 일하는 것을 강건함으로
여긴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강원 경상권의
고대국가 연맹체 진한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원래 고대 한반도
중남부의 고대 국가 전체를 진이라고
불렀고 그 중심지는 경기 충청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조선
준왕이 이끄는 유이민 집들이 내려오며
진의 중심지를 빼앗았고 진의 중심
세력이 경상권에서 넘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에서도 진한은
옛날에 진국이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부 중국측 기록에는 어이 없게도
진한이 진시황이 진나라의 망명 집단이
정착한 곳이라고 적혀 있기도 합니다
진하는 늙은 노인이 스스로 말 하기를
진나라 명인인 힘든 노역을 비해
한국으로 왔을 때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지난해 어느
노인이 대대로 전해지는 바을 말했는데
옛날 망명이이 진내 사역을 비해
한국으로 왔고 마한이 그 동쪽 당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고 나와 있는데 뭐
적당히 걸러서 들으시면 됩니다
기록에는 지난해 12개의 소국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 12개의 소국은
큰 나라의 경우 4천에서 5천 가구
작은 나라는 600에서 700
가구였다 하는데 큰 나라의 경우 대략
2만 명 정도 작은 나라는
3,000명 정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나라가
신라가 되는 경주의 사로국이 사로국
경주와 그 인근의 여섯 개 마을과
박혁거세가 이끄는 외지 집단이
연합해서 만든 국가입니다 신라의수도
서라벌의 서라가 사로 국에서
유래했으며 뭐 사실 신라 서라 사로
세탁 같은 말입니다 그저 고대순 누리
말을 표기할 글자가 없어서 중국어
기준 들리는 발음대로 중국 글자인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여러 표기법이
나오는 겁니다 박혁거세와 그의 세력
출신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각종 신화와 전설만 무하지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은 고조선
준왕의 유민들게 중심지를 잃은 진
출신의 파라는 설과 준과 다른 계열에
고조선 계 유민들이 설이 있습니다
뭐가 됐든 확실한 건 박혁거세의
집단이 전투 집단이 아니라 무속
집단이었다 겁니다 초창기 신라의
우두머리를 부르던 명칭들 거서간
처형은 제사장을 뜻하는 단어들입니다
박과의 칭호가 거서간 그의 아들 남
의 친구가 차차웅 이었죠 이미 다른
지역에 일치감치 재정 분리 사회가
자리를 잡았는데 사로 국만 여전히
재정 일치 사회였다는 건 박혀 거세의
집단이 종교적 집단이었다 걸 알 수
있죠 혹은 진한이 중국으로부터 가장
떨어지고 높은 산맥 넘어 한반도 끝에
치우쳐져 있기에 사회 발전 속도가
느렸을 수도 있습니다 신라는 박격
것의 외지 세력과 경주 토착 세력이
연합한 후로 석탈해가 이끄는 외지
세력 그리고 김알지가 끄는 외지
세력까지 함께 흡수하여 여러
선진문화를 수용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기말 이의 외지 세력이 왕실을
독차지한 후로 신라는 지난 12개 국
중 유일하게 중앙 집권에는 국가로
발도르 하죠 고대시기 출토되는 유무를
보면 유독 경주와 대구에 위만 조선계
청동기와 철기이범석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그나마 지난에
가장 빨리 철기와 같은 선진 문물을
수용 있게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를 두고 박격 거세가 가
위만 조선계 파라는 주장에 힘이
실려고 있죠 사로국 외에 울산으로
추정하는 여해구 경북 구위로 추정하는
여담 울진 혹은 포항으로 추정되는
우유군 창녕으로 추정되는 불사고 경남
사천으로 추정되는 군민이 있습니다
석탈해가 울산 출신의 대장장이
집단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석탈해가 염해 출신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외 위치를 추정할 수 없이
문헌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진난
소국으로 기저귀 금계국 남미리 동국
호로곡 주성국
마연구회 그런데이는 중국측 기록인
삼국지의 기록입니다 훗날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정리한 삼국시대 역사삼국
사기에는 더 다양한 소국들이
등장하는데요 대구에는 다벌국 경산에
압독국 김천에는 감문국 영천의 골국
의성의 소문국 삼척에는 실직국 청도에
이서국 합천에 초파 있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울산에 있던 소국은 염해 6이
아닌 우시산국이라고 가르키고 있으며
창녕에 있던 소국도 불사이 아닌
비지국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 대구에
가시면 블루동 고분군이 있는데이는
신라 지배층의 무덤이 아닌 대구 현지
고대국가 다벌국 무덤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벌국 혹은 달벌이라 불렀던
곳이 통일 신라 시대에 순우리말
치명을 한용화 하면서 대구로 정착한
거죠 그리고 신라의 통일 전쟁 영웅
김유신이 경산에 부임했을 때 관직이
압량주 군주였습니다 이로 보와 경산에
옛 명칭이 압량 혹은 압독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천의 감문국 보자면
조선시대 질의서 동국 여지 승려에
김천의 감문국 의 우두머리였던 효왕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김천에는
감문면이라는 지명이 있고 김효
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습니다
창녕에 있었다던 비지국 우리가 비화
가야라는 가야 연맹의 하나의
일원입니다 그러나 비화 가야라는
명칭은 잘못되었고 비지국이 가장 맞는
국명 있니다 훗날 창녕을 완전히
병합한 신라의 진흥왕은 창령 땅에
창령 첫 경비를 세우죠 울산에
있었다는 우시 산국은 삼국지에
기획되어 있는 염해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같은 국가를 다르게
표기한 건지 아니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소국이 공존했지만 정확히 모르죠
석탄의 출신지가 아마 염해 혹은
우시산국 중 하나였을 텐데
삼국사기에는 석탈해가 이사금이 있을
때 우시 3국을 정복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신석기 혹은 청동기 시대에
제작되었던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그린 주체 역시 염해 혹은 우시
산국의 조상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국적 기록과 우리의
기록이 차이가
[음악]
날까요 한에는 12개가 있었다는
중국적 기록은 추정치에 불과하고
국주의 저자 진수가 직접 한 번들로
와서 답사를 하고 쓴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12개가 있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아마 더 많았을 겁니다
누락된 국가 중 일부가 삼국사기에
그나마 더 많이 나오는 거고
삼국사기조차도 누락한 소국도도 많았을
겁니다 지난 사람들의 풍속을 역사서의
기사를 발표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결혼할 때 우마를 타고 예속의 남녀의
구별이 있다 장사 지낼 때 큰 세의
깃털을 쓰는데 죽은 자가 날아
오르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 풍속이
음주가무를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돌로 누르는데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려는 것으로 지금 진한 사람들은
모두 편두 그 풍속으로 길 가던
사람이 서로 마주치면 모두 멈추어
길을 양보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더불어
마한과 동일하게 일본과 가까이했던
남해 아과 남자들은 일부 몸에 문신을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중국측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진한이 중국인 망명 집단이
내려온 것이고 진한 사람들의 언어가
진시왕의 진나라 언어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 마한과 지난을 구분하기
지난을 멀리 거리를 두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분명히 흘러 들어와 산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중국에서 가장 먼 경상도에
중국인 망명 집단이 정착을 했는지
고고학적으로 중국의 유문이 등장을
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런 낭설이
생겼는지는 아직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서기 20년에서
23년 사이에 지한인 중 염사치
불리는 자가 한반도 중부에 있던 중국
괴를 정부 낭군의 망명을 한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지난해는 중국인
포로들이 있었는데 염치가 낭군의
사신이 되어 지난후부터 포로 천명과
죽은 500명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왔다는 기록이 있죠 염사 치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염사 아는 지역의
치 즉 우두머리였다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염사 치의 직책도
정확하게 기록이 명시되어 있는데
지난해 우거스 있다고 합니다 우거
수가 뭔지는 정확한 결론이 나질
않았으나 어느 한 종교 집단의
우두머리 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고전 용어 사전에 따르면 우거스 사만
시대 각 음락의 우두머리 중에 하나
사만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각 소국의
정치 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소규모
집단들은 우세한 집단들에게 통합되었고
그 과정에서 거수의 개층 분화가
이루어졌으며 우거스 그 과정에서 생긴
명칭으로 생각됨이라고 나오는데요
이처럼 지난해는 정말 다양한 성격의
조직체들이 수도없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난해 정확히 어떤
국가들이 몇 개가 있었다고 대답
내리기는 힘들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전라권 경상권 그
사이에 있던 마한과 진한의 영향을
모두 받으면서도 토착의 색채를 뛰고
있던 변환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변하는 마한과 진한 사이에 껴 있던
이유에서인지 마한은 백제로 진한은
신라로 통합이 되었으나 변하는
마지막까지 통합되지 못했습니다 어
가야로 통일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는 중앙집권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변한의 맹주국 역할을
했을뿐 변한 전체를 통합하지 못하고
결국 변한은 백제와 신라에게 찢기게
됩니다 중국측 사서에는 변환을 변진이
적기도 합니다 아마 마한에 중심지를
빼앗긴 진의 일파가 남부 변환
쪽으로도 유입된게 아닐까 합니다
사서에 적힌 기록들을 먼저 볼까요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변지은 진한과 잡거 하는데 성광
의복이 모두 같고 언어와 풍속에 다른
점이 있다 그 그 사람들의 형체가
모두 장대하며 머릿결이 곱고 의복이
청결한 형법은 엄중하다 그 나라는
외와 가까움 문신한 자가 약간 있다
변한의 국가들은 중계 무역업으로 크게
성장합니다 특히 무역의 주요 품명이
바로 철이 있는데요 울산의 대장장이
집단을 이끌던 석탈해 변한의 고대
국가 중 김수로에게 밀렸다는 걸
봐서는 당시 한 번도 남부에서 철
생산과 무역은 변한의 국가들이
압도적이었다 봅니다 일단 낙동강
내륙의 강가와 남해 한을 끼고 있기
에 지리적으로도 무역의 종사하기
유리하죠 낙동강에서 우수한 철이
생산되었다고 하며 변환의 국가들은
철을 일본의 기섬 낙랑군 등 한반도
중북부에 있던 중국의 군현 한사군
그리고 동해 이르기까지 철을
수출했다고 하죠 사서에는 철이
산출되는데 한예 외에서 모두 와서
취한다 시장에서는 모두 철을
사용하는데 중국에서 전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한 군에도 공급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한 나라씩
차례로 보겠습니다 경남 밀양에는
미리미 동국이 있었습니다 미리미
동국의 미리가 미량의 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 고대 한국인들이
만든 저수지 세 개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요 제천의 의림지
김재의 벽골제 그리고 미량의 수산제
있습니다 2000년도 더 된 저수지인
미량의 수산제 바로 미리미 동국
사람들이 만든 저수지 있죠 경남
하만에 안야국이라고 있었는데 우리가
여섯 가야 중 아라가야 아고 부르는
고대 국가입니다 하만에 마리산
고분군이 있는데 고분군의 주인이 바로
안야국 지배층 있니다 하만에
접도이라고도 있었 며 훗날 이름을
포국 바꿉니다 김천에는 주조하고 감로
있었습니다 지난 영상을 보신 분은
김천의 고대 국가는 진한이 아니었나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김천의 일부는
진한 일부는 변이었다 것으로 보입니다
이래서 중국측 기록에서는 변한과
진환이 잡고 했고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경남 사천에는 고순신 국과 국미이
있었고 하동에는 앙로 국이 창원에는
미오야마 국이 부산에는 동로구
있었습니다 동로 부산의 동네로 비
정하는데 동로 동래로 확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로구 부산 동래가 아니라
거제도라면 주장도 있으며 부산에는
동로구 외에도 거칠산국 장산국 등도
있었습니다 장산이 지명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신라 시대 때 동네를
거칠산국 위치는 확실하지 않으나 두
국가는 확실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남 고성에는 고자이 동국 혹은
고자이 있었습니다 아마 곳을 가리키는
단어인 듯합니다 경남 고성도 곳에서
지이 탈락한 것으로 보이고요 우리가
소가야 아고 부르는 곳이 바로
[음악]
고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슨무슨
가야라는 고대 국가들이 대부분 변한
연명의 소국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난
연명의 소수도 있었지만요 그렇지만
무슨무슨 가야라는 명칭이 다 잘못된
겁니다 흔히들 육 가야라는이는 후대의
사람들이 명명한 것이고 가야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김해의 금관가야 당시의
사람들은 무슨무슨 가라고 부르지
않았고 다 고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입니다 비화가야 아닌 비지국 아라
가야가 아닌 안야국 소가야 아닌 고자
이렇게 말이죠 그저 금광과 아를
제외한 나머지 소국들을 부르기 편하게
무슨무슨 가야하고 나중에 이름을 갖다
붙인 겁니다 변한 지역의 소국들은
마한과 지원과는 다르게 단 한개의
국가로 통합되지 않아서 꽤 오래도록
소국들이 이어졌으며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늘 줄타기를 했습니다 이걸
그저 우리들은 가야 연맹이라고
부를뿐입니다 변환이 통합되지 못하고
연맹 단계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연맹
맹주국 역할을 했던 국가가 있었으니
유일한 가야 바로 경남 김해의 금관
가야 전신이 되는 국가
구야국이었습니다 가야라는 말이 바로
구야국 구야 발전한 거죠 아까 변화는
철을 생산과 수출로 성장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변화는 소국들 중에서도
가장 철 생산과 수출 규모가 컸던
고대 국가가 바로 구야국이었습니다
김해라 말 자체가 쇠가 바다처럼
풍부하다는 뜻이잖아요 가야의 건국시조
수로의 성식 김씨가 쇠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며 수로 역시 시 쇠의
고대 수누리 말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구야 국은 거북이를 토템으로 하던
토착 부족과 김수로 등 외지 세력이
연합하여 형성된 고대 국가였습니다
김수로는 주문과 박효 거처럼 난생
설화를 가지고 있는데 김수로의 출신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이후
김해의 구야국 계속된 철 생선과
수출로 크게 번창했고 세상 사람들은
구야국 가라고 불렀고 변한 연맹에서
이어진 변한의 기타 소국들
연명하니이를 전기 가야 연맹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하지만 신라가 금
가야와 경쟁하며 같이 성장했고 4세인
경부터는 신라가 금관가야를 국량
면에서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4세기에 금관가야
철 수출의 주요 바이어였던 낭랑 분이
한반도에서 고구려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도
4세기가 되면
가야보철 실라 사이에서 전쟁이
격화되었고 주로 물자의 움직임은
바닷길다는 내륙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내륙에서 멀리 떨어진 금관가야는 더
쇠퇴할 수밖에 없었겠죠 대신에이 내륙
지방의 소국들이 성장했고이
가운데에서도 백제 비호를 받던 경북
고령 지역의 소국이 있던 변한 연명의
또 다른 국가 반파국이 주도권을
주었습니다 5세기가 되면 낙동강을
주름잡던 금관가야 영광은 어디로 가고
더 이상 가야 연맹을 이끌어갈 국제적
지위를 이어갈 수가 없었죠 이렇게
전기가 연맹은 해체가 되고 경북
고령의 반 파국이 후기 가야 연맹을
이끌어갔습니다 하지만 가야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이 있어서 반파국 ES
가야라는 명칭을 뺏어 왔고 반파국이
바로 대가야 있니다 따라서 가야는
오직 김해의 금광 가야가 유일한데
그나마 다른 가야가 있었더라면
가야라는 이름을 뺏은 대가야 아지가
전부인 겁니다 대가야의 성징 배경에
백제가 키워 준 것도 있었는데 백제가
고은 장수에게 호되게 당하고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뒤로는 대가야가 중국의
독자적 이름으로 사신도 보내는 등
홀로서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이내
회복한 백제의 간접 지배를 계속
봤다가 이번엔 백제의 성황이 신라와
싸우던 중 전사하고 다시 백제가
쇠락하다 후견인이 없던 대가야는
신라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따라서
변한의 연명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6세기 경이고 한반도에 고그의 백제
신라 딱 새 나라만 남은 기간은
그래봤자 100년에서 200년 밖에
안 됩니다 이처럼 마한 지난 변한
사만을 나누어 설명드렸습니다 분명 새
연맹체가 고유의 색깔이 있고 각기
다른 문화권인 지라 차이점이 분명히
있지만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한반도
중남부와 그렇게 크질 않아서 기후와
환경이 동일해 살아가는 상활 방식은
대동 소유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그들은 농경 기반의 국가들로 제천의
의림지 김재의 벽골제 미량의 수산제
등 마한 진한 변함 모두에서 고대
저수지들이 만든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죠 제천 행사를 10월 한 번만
했던 한국의 북방 고대 국가는 달리
만에서 모두 5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씩이나 재천 행사를 했고이는 딱
따뜻한 기후대의 농경이 잘되다 보니까
가능했던 겁니다 더불어 사마는 정치체
똑같았습니다 정치권과 종교권이 분리된
재정 분리 사회였는데 정치적 부족장들
대군장 경우 신지 혹은 견지 소분장
경우는 불의 혹은 읍차 불렀습니다
정치권과 종교권이 분리되어도 종교권
대한 존중과 사회적 위치는 매우
컸습니다 사만 땅에서는 공통적으로
제사장을 천군이 불렀고 천군이
위치하던 제사를 진행하는 곳을
소도고기 워낙이 신성한 지역 라
범죄자가 들어와도 잡지 못했다는
문화적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소도에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달아서 신성한 권역 이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소대
문화가 바로 사만의 소도에서 유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대사에 대해 북방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데 남방 쪽의 고대사
흥미진진한 요소들 투성이고 아직 더
연구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분단된
지금에서도 남방 고대사 연구가 북방
고대사 연구보다 조건들이 더 유일하니
북 만큼이나 난방 고대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으면 하네요 그럼 역서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