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00:21 “살아온 이유를 모르겠어요.” 50대가 되면 급격히 불행한 이유 04:24 상담 40년만에 알아낸 나이 들어 말을 줄여야 하는 이유 08:41 나이 50 먹고도 날 괴롭히는 ‘어린 시절의 나’의 정체 13:37 중년 이후 남은 인생을 위해 정리해야 할 ‘1가지’
중년이라는 것은 자기가 지금까지 옳다고 살아온 삶이 있잖아요.
근데 현상은 변하잖아요.
사람들이 이럴 때 자기가 옳다고 하는 걸로 변화를 막으려고 해요.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될 것은 뭐냐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개 주위에서부터 약간 따돌림 당하시는 분들의 특징은
중년이 자기를 돌아보고 평가하는 식이라고 그랬잖아요.
근데 그 평가의 가장 핵심이 뭐냐면
이 삶이 네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이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야?
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식이거든요, 중년이.
근데 내가 이제 어느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사회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취업을 하거나 일을 하는데
그때 정말로 내가 하고 싶고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셨어요.
아니면 급여를 많이 준다거나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는다든가
이런 것 때문에 그 일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를 요즘 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특정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과외를 시킨다.
그러니까 그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 살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는 충분히 제가 이해가 되는데
자식의 입장을 한번 보게 되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자기가 어떤 직업을 앞으로 가져야 된다라고 하는 거를
부모로부터 듣고 자라나서 과연 그 직업을 가졌다고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할까요?
저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인정받고 있다라고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분들이
중년을 넘어가면서 삶의 허물을 느끼고
부부간의 갈등이 많아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을 많이 봐요.
남미 부러워할 정도의 삶을 사는데
그분이 마지막에 실토하는 게 뭐냐면
나는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식의 질문들을 의외로 많이 해요.
그게 바로 우리가 젊었을 때 직업을 가지거나 이럴 때
공부하고 싶었던 거는 이런 분야였는데
성적이 안 돼서 내가 여기를 갔어.
뭐 이런 얘기들 다 많잖아요.
그것이 젊었을 때는 돈 벌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하는 이 과정에서
정당화가 되는데
이제 중년이라는 게 자녀도 좀 떠나고
사회에서 내 나름대로 올라갈 수 있는
이런 것도 올라갔다고 할 이 때는
다시 한번 질문을 하게 되죠.
한 번밖에 내가 안 사는 인생인데
이거를 내가 계속해야 돼?
그래서 이때 중년에 크게 흔들리는 게
두 가지 영역이 있는데
하나가 결혼.
그래서 이혼이 높아지고요.
또 하나가 이직.
내가 열심히 일해봐야
회사에서는 이제 나이가 내가 들었다고 해서
슬슬슬슬 나가라고 하는 압력이 오는데
내가 정말로 내 청춘을 다 바쳐가지고
회사에서 일했던 대가가 결국 이건가?
그리고 바라보니까 결국은 내가 남 좋은 일 시켰구나.
뭐 이런 식의 느낌들이 자꾸 드러나니까
이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할래
하고 나오는데
준비를 제대로 안 하고 나오셔가지고
남들이 하는 걸 다 하다가
결국은 안 되는 거죠.
그거는 잘못된 거고
정말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거
앞으로 길어지는 우리 삶이니까
그래서 중년에 갈등이 있다라고 하는 거는
있을 필요가 있으니까 있는 거예요 그게.
그렇기 때문에 그 갈등을 피하려고 하시지 마시고
이제는 내가 정말 나로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하는 시기구나.
그러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지?
대개 중년 여성들 만나서 상담을 해보게 되면
이제는 편하게 사세요. 하고 싶은 거.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애 키우고 산림하는 데만 했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럼 제가 이제 그런 질문을 해요.
엄마는 여고 시절에 무슨 꿈을 꿨어요?
그러면 갑자기
아 진짜 그 시절 다 잊고 살았네요.
아 진짜 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걸 이제부터 하세요.
화가로 거기서 돈 벌어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도 아니니까
얼마든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은
우리 주위에 찾아보면 너무나 많으니까
근데 진짜로 한 1, 2년 뒤에
전혀 몰라볼 표정으로 오는 분들 많아요.
피곤하고 약간 짜증스러운 이런 표정이었는데
아주 환해져가지고 온 거죠.
정말 예뻐져요.
이런 게 중년이죠.
꼰대라는 게 이제 나이 들었다고 젊은 사람들한테
지가 살아온 게 옳다고 자꾸 얘기해주는 게 꼰대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지금까지 옳다고 살아온 삶이 있잖아요.
근데 현상은 변화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럴 때 제일 먼저 적응하는 방법이
자기가 옳다라고 하는 걸로 세상의 변화를 막으려고 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한테 나 때는 이랬는데
이러면서 자꾸 본인의 시대의 삶을 자꾸 얘기를 하는데
한 가지 아셔야 될 것은 뭐냐면
본인이 젊었을 때에도
자기 윗세다가 얘기하는 걸 굉장히 듣기 싫어했다는 사실이야.
이거를 자꾸 잊어버려요.
그러니까 당신들 세상하고 내 세상은 변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얘기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란 말이죠.
그런데 하나가 다른 거는
지금 중년들은 나이 많은 분들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도
그냥 참고 있었다는 뜻이고
지금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그러는 거 차이지
똑같은 마음이잖아요.
젊은 사람들한테 존경을 받으려고 하면
젊은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줘야 돼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을 쌓으셨으니까
그 경험을 굉장히 값어치 있게 쓰셔야 되는데
값어치 있게 쓸 때는 거는
상대가 그 경험을 필요로 할 때 주셔야
그 경험이 값이 있는 거지
상대가 그 경험을 필요 없는데
자꾸 그 경험을 주게 되면
내가 살아왔던 나의 삶의 경험 자체가 아주 값싸진다고요.
그래서 지혜가 있는 분들은 필요할 때 해주는 건데
이 필요한 때를 어떻게 알아내느냐의 문제잖아요.
지혜는 듣는 마음이거든요.
이 젊은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때
이 사람이 지금 굉장히 필요로 하는 거구나
할 때 해줘야 되는 거고
또 하나는 해주기 전에
얼마나 네가 힘들고 답답하고 초조하냐
하는 이 마음을 한번 읽어주는 것부터 시작을 하면
자기 마음을 읽어주고 필요할 때
자기한테 경험을 이렇게 편하게 나눠주는 선배가 있는데
왜 이 선배를 싫어하겠어요.
중년이라는 거는
옛날보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적 자원이라든가
경제적인 거라든가 이런 것들이
자꾸 이제는 없어져간다는 걸 느끼는 거잖아요.
그럼 자꾸 잡고 싶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걸 자꾸 드러내려고 하고
아직까지도 내가 젊었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하려고 그래요.
예를 들면 나이가 한 40에서 50 정도 되는
이 교수들이 많이 하는 게
대학원 학생들하고 자꾸 농구 시합하는 거거든요.
대학원 애들은 지금 바빠가지고
빨리 집에 가서 공부도 해야 되고
또 간단하게도 좀 돌봐야 되는데
교수가 자꾸 농구하자고 그러니까 안 할 수 있어요.
그건 왜 그러냐면
내가 몸은 늙어간다는 거를 자꾸 느끼니까
마음으로 젊었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가지고
바쁜 애들 데리고 자꾸 농구 시합하는 거거든요.
그럼 얘네들은 또 선생님이 왜 해달라는 걸 아니까
아 선생님 진짜 여전하십니다 뭐
우리보다도 아직도 더 힘이 더 좋습니다
이러면 또 진짠 줄 알고
또 자꾸 내일 한 번 더 할까 막 이런단 말이에요.
이러면 안 되는 거죠.
대화라는 거는 듣고 말하기잖아요.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듣기를 먼저 하셔야 돼요.
근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개 주위에서부터
약간 따돌림 당하시는 분들의 특징은
말하기를 먼저 한다는 거예요.
말하기는 주어를 나로 하는 거고
듣기라는 거는 주어를 너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너로 하되 그 사람의 마음을 한 번 읽어주는 거예요.
너도 참 잘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안 되지
그래서 좀 많이 답답하겠다.
이야기를 먼저 해야
밑에 있는 사람들이 요러 요러한 거가 안 돼서
좀 답답해요 라고 자기 답답한 걸 얘기할 거 아니에요.
그럴 때 나는 그때 이렇게 하니까 좀 쉽게 풀리던데
이렇게 얘기를 해야 이게 훨씬 더 오는데
그것 때는 이렇게 해 이렇게 하고 말이 먼저 나가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내가 지금 잘 일을 못한다고 나를 무시하나?
이런 느낌으로 이게 탁 오기 때문에
관계가 잘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이 드셔가지고 존경받고 싶으면
없는 돈 자꾸 지갑 열지 마시고
너를 주어로 너의 마음을 먼저 들어주시는 대화를 하는 게
돈 하나도 안 들고 오랫동안 젊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지림길이라는 걸 꼭 아셔야 돼요.
우리 마음 속에는 어린 시절의 나를 계속 가지고 있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 어린 시절의 나가 충분히 인정을 받고
하기 전까지는 계속 내가 어리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물농력하다가
이런 분들이 가끔 이제 많이 오는데
한 40대 정도 된 분이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이분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직급이 위에 있는 분 앞에 가기만 하면 어른 거예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다 잘하고 브리핑도 잘하고 연습을 했는데
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가기만 하면 말이 잘 안 나오고
준비하고 빨리 얘기해.
이렇게 한 번 지적을 받으면 그때부터 얼어서 아무것도 못 하기 때문에
능력이 발휘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상담을 받다 찾아낸 게 뭐냐면
어렸을 때 아버지하고 관계가 찾아졌어요.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뭔가 어린 아이가 조금만 해갖고 나면
그걸 가지고 칭찬을 안 해주고
이 자식아 이게 해왔다고 해왔냐 이런 식의 무신을 계속하니까
이때부터 이분은 나이가 많은 사람, 남자 특히 가게 되면
또다시 질책받을까 봐 굉장히 떨린 거예요.
내 마음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한테
꾸중받던 내가 아직도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얘를 갖다가 키워줘가지고
당당하게 만들어 놓으면 회사에 가서도
당당하게 할 수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요새는 이런 거를 조금만 같이 노력을 하면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근데 이거를 모르게 되면
한평생 내가 이걸 가지고 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운동이 아플 때 하나요? 건강할 때 하나요?
사실은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고
아플 때 하는 운동은 우리가 운동이라고 안 그러고 재활이라고 그래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건강할 때
계속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굉장히 좋은 거지
이미 건강에 병 들었다면
그때는 빨리 가서 치료를 받으셔야 돼요.
근데 이 마음이 건강하게 계속 유지한다는 게 뭐냐면
내 마음속에 있는 아픔들, 슬픔들
이런 감정들을 빨리 털어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 그 자리에 긍정적인 게 들어가는 거니까
빨리 이거를 없애버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이게 사실은 우리 잘 사는 거니까
지금 이렇게 보시게 되면 머리로 알아요.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우리 자녀들하고도 내가 이렇게 관계하면 안 되는데
이런 분일수록 내가 마음속에 그게 안 되는 게 뭐가 있을까
이걸 막고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거예요.
우리 사실 한국 가정에 대화를 해야 되는데 안 되는 게
아버지하고 아들 사이에 대화가 안 되거든요.
대화를 좀 하셔라 하고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드리면
제일 먼저 나오는 얘기가 뭐냐면
자식하고 있을 때 무슨 말을 해줘야 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언뜻 보면 맞잖아요.
그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왜 자녀들에게 꼭 무슨 말을 해주려고 그러세요?
자녀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그러면 자녀들도 아버지에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즐겁고 좋은 시간이 되겠어요.
말씀하시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중년을 거치면서 제가 한 고민을 두 가지로 요약을 해보게 되면
하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하고 싶지 않은 거를 계속 해야 될 건가?
하는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고
또 내 개인적으로는 왜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거를 하지?
이걸 내가 왜 못하나?
왜 내가 그러면 그걸 못 버리는가?
버리면 되는데
근데 그때는 내 개인적인 아픔이 있어요.
제가 삼형제 중에 둘째인데
둘째의 슬픔에 대해서 공감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희 큰형은 존재 자체로 사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제 동생이 있는데
얘는 막내니까 얘도 또 존재 자체로 인정을 받는 것 같은데
저는 가운데 껴가지고
내가 어떤 업적을 보여야만 부모가 나를 인정하는 것 같다는
이런 느낌을 받아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뭔가를 잘해야 돼.
하는 압박을 굉장히 내가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근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거는
공부를 좀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인정을 받으려면 이거를 내가 해야 돼.
그러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할 수도 있겠구나.
그게 내가 중년기 때 굉장히 힘들었던 건데
물론 그 이후에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금 해서 이제 여기까지 저는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 중년이라는 게 나한테는 그렇게 힘들게 왔어요.
중년이라는 게 갈등을 한다는 게 뭐냐면
남길 거는 남기고 버릴 거는 버린다는 의미예요.
제가 한 20년 살았던 집을 옮겨서 이사를 했는데
정말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이사를 한다는 게 나는 짐을 옮기는 걸 줄 알았는데
짐을 버리는 거더라고요.
그러니까 10년, 20년 동안도 안 쓴 것들이
여기저기 그렇게 들어가 있더라고요.
내가 이거를 왜 가지고 있지?
지금 버리자.
그래가지고 이제 버리는데
그게 또 간단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그때
지난 3년 동안 사용 안 한 거는
일단 버리는 걸로 분류를 하잖아.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짐을 한 반 정도는 줄였어요.
그랬더니 새로 이사간 그 집이
넓이는 같은데도 넓게 공간을 쓸 수 있더라고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죠.
우리 마음도요.
한 30년, 50년 살다 보면
정말 버려야 될 것, 잡다 한 게
우리 마음에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 있어요.
근데 이걸 크게 버리는 시간이 두 번 있는데
하나가 청소년 때 이걸 버려야 되는데
어린애 같아서 더 이상 내가 어른으로는
안 쓸 것들은 버리는 과정
그리고 어른으로 써야 될 거는 남기는 과정이
심리적인 갈등인 거고
그다음에 10대에서부터 한 50대까지
한 30, 40년을 여기저기 쑤셔 넣었던 것들이
중년이 되면 그걸 가지고는 노년으로는 못 간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또 한 번 정리하는 게 중년이니까
다 버리셔야죠.
그 버릴 거에 정말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잡다하게 맺어놓은 인간관계들을
끊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심리학에서는 이런 얘기를 해요.
미성숙한 사람은
한 번 볼 사람을 천 명을 알고 있고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천 번 볼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래요.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정말 기쁜 일이었는데
그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게
그분의 소설이 많이 팔린 거 가지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언뜻 보면 이해를 못할 것 같은 어려운 소설이지만
그거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게 좋은 작품이 평가되는 거잖아요.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어떤 사람을 사귄다는 게
잡다하게 많은 사람을 아는 걸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 나를 알고 내가 그 사람을 알아서
깊은 관계를 내줄 수 있는 걸로 정리를 해야죠.
당연히.